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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반은 여자인데... 6.25전쟁 역사에서는 실종"

[인터뷰] 6.25전쟁 속에서 ‘여성’ 찾는 대학생 동아리 ‘자주’

등록|2018.06.25 07:23 수정|2018.06.25 07:23

대학생 동아리 자주6.25 전쟁 속에서 여성 역사 찾는 대학생 동아리 자주 ⓒ 대학생 동아리 자주


6.25전쟁 안에 '여성'은 없다. '태극기 휘날리며', '포화 속으로' 등 전쟁을 다룬 영화 속에서도 '여성'의 존재는 보이지 않는다. 간호 장교가 아니면 전쟁에 참전하는 남자 주인공의 약혼자나 어머니 정도로 다뤄질 뿐이다. 포탄이 오가는 6.25전쟁 속에서 총을 들고 싸웠던 여성은 한 명도 없었을까.

6.25전쟁 68주년을 앞둔 가운데 6.25전쟁 속에서 '여성'의 존재를 찾는 이들이 있다. 대학생 봉사동아리 '자주'다. '자주'는 대학생 이영우씨가 중심이 돼 만든 대학교 연합 동아리로, 생긴 지 3개월밖에 안 됐다. 6.25전쟁 속에서 여성 찾기 프로젝트인 'herstory'는 자주의 첫 번째 기획이다. 20일 오후 4시 2호선 신촌역 인근 카페에서 대학생 동아리 '자주'의 회원 이영우, 이소영, 김지원 학생을 만났다.

"교과서에는 여성이 없었다"

이들이 전쟁 역사 속 '여성'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교과서도, 책도 아니었다. 6.25 참전영웅에 대한 기사였다. 자주 동아리원인 이소영씨는 "역사에서 잊혀진 '것'들에 대해 찾아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라며 "그러던 중 6.25전쟁에 참전하신 할머니들이 생활고와 질병에 시달리고 계신다는 기사를 봤다"라고 했다. 이씨는 "그런 분들이 계신지 그때 처음 알았다"라고 말했다.

새내기 대학생인 김지원씨도 "가장 최근까지 학교에서 한국사를 배웠다"라며 "교과서에 나와 있는 사진, 기록에는 남자들만 있을 뿐 여성들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영우씨는 "인구의 절반이 여성이다"라며 "전쟁이 일어나면 당연히 여성도 (중요한)역할을 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여성이 남성과 마찬가지로 전쟁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지금까지 여성의 '실종'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는 깨달음이 자주가 6.25 참전 여성을 위한 프로젝트인 'herstory'를 시작한 이유다.

여성의 역사를 발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소영씨는 "대학생인 우리가 열람할 수 없는 자료가 많았다"라며 "국가보훈처에서 발행하는 책이나 자료에서도 여성 관련 서술은 한 페이지에서 세 페이지 정도밖에 없었다"라고 했다. 이영우씨도 "자료가 소실됐다기보다는 아예 기록되지 않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없었다"라며 "사막에서 바늘 찾는, 무작정 땅을 파는 심정으로 자료조사를 했다"라고 털어놨다. 그렇게 찾은 결과 6.25전쟁 당시 참전했다고 기록된 여성들만 2400여 명이 넘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군복 주워 입으면서 싸웠지만... 현실은 열악"


대학생동아리 자주구월산 유격대 이정숙 대장의 아들 김광인 선생과 만난 대학생 동아리 자주 ⓒ 대학생동아리 자주


이들은 국가보훈처 홈페이지를 보다가 '구월산 유격부대 이정숙 대장'을 발견했다. 구월산 유격부대는 6.25전쟁 당시 황해도 일대에서 기습, 매복 등 게릴라전을 펼쳤던 자생적 무장 조직이다. 그 부대를 이끈 인물이 이정숙 대장이다. 그녀는 6.25전쟁이 시작되자 남녀로 구성된 무장대원 70여 명·농민군 400여 명을 이끌고 북한군과 싸웠다. 정규군이 아니어서 제대로 된 군복, 무기도 없이 싸웠지만 2015년에서야 국가유공자로 등록됐다. 이정숙 대장이 가난과 영양실조로 숨진 지 56년 만에 이뤄진 국가적 대우였다.

이들은 그녀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듣고 싶었다. 이영우씨는 "동아리원이 이정숙 대장님의 아들이신 김광인 선생님의 블로그를 발견했다"라며 "당시 그 친구가 신나서 동아리 카카오톡 채팅방에 '가즈아', '됐다'라고 썼었다"라고 회상했다. 그는 "김광인 선생님께 연락이 왔을 때는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은 느낌이었다"라고 밝혔다.

"김광인 선생님이 저희에게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은 '20대들은 관심이 없을 줄 알았다'라는 말이었다."

이정숙 대장의 아들, 구월산 유격대 전우회를 만나고 온 김지원씨는 "구월산 부대가 정식 부대가 아니어서 군복이나 총 같은 지원이 전혀 없었다"라며 "북한군을 습격해서 총을 뺏거나 미군의 옷을 주워 입었다고 하시더라. 여자한테는 미군복이 너무 크니까 여기저기 잘라서 누더기 같이 입고 전쟁에 임했다고 하셨다"라고 설명했다. 3주 전에 만났지만 아직도 생생한지 김씨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듯 술술 구월산 유격대에 대해 말했다.

김씨는 "그렇게 힘들게 싸웠지만 현실은 열악했다"라며 "국가유공자라 나오는 생활보조금이 있지만 몇십만 원이 전부이고 전쟁으로 얻은 지병 때문에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 하는 분들이 많았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야 알게 된 것이 너무 죄송했다"라며 "많은 이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나라를 지키는데 남녀가 따로 있겠나"... 여성도 기억하는 역사로

구월산 유격대구월산 유격대 ⓒ 대학생 동아리 자주


생활고 해결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이들은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 모금을 시작했다. 이영우씨는 "6.25전쟁 참전 여성의 이야기를 처음 듣는 분들은 생소하실 것 같았다"라며 "그래서 목표액을 30만 원으로 잡았다"라고 설명했다. 이씨는 "비트코인 하듯 하루에도 수십 번씩 텀블벅을 새로 고침했다"라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다행히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많았다. 펀딩은 빠르게 목표액을 달성했다. 330만원이 넘는 금액이 모였다. 펀딩은 오는 25일 마무리된다. 후원자들에게는 구월산 유격대 참전 여성들의 모습을 본 뜬 그림이 새겨진 에코백과 무궁화를 새긴 손거울과 귀걸이캐쳐 등이 제공된다.

이영우씨는 "모금액의 절반은 구월산 유격대 홍보에, 그 외는 구월산 유격대에 기부할 예정이다"라며 "모금액을 전해드릴 때, 후원자 분들이 저희에게 남겨주신 글을 참전 여성분들께 전해드리고 싶다"라고 했다.

"전쟁역사 속에서 여성을 기억하자는 기획의 시작은 저희 6명이었다. 지금은 프로젝트를 후원하는 300여 명이 함께하고 있다. 이 기획이 마중물이 돼서, 많은 분들이 기억하면 교과서도 남성 중심에서 남녀가 함께 서술되는 것으로 바뀌지 않겠나. 그렇게 조금씩 역사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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