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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고, 가슴으로 또 한 번 쓴 '기억전쟁'

16년 간 2000여곳 마을 누비며 기록한 '충북 민간인학살 보고서'

등록|2018.06.25 10:39 수정|2018.06.25 10:51

▲ 충북지역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보고서 '기억전쟁' ⓒ 심규상


충북지역 2000여 곳 마을에서 6000여명을 만나 정리한 한국전쟁 당시 충북 민간인학살 보고서가 나왔다.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52). 그는 최근 <기억전쟁-'충북지역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영동 고자리서 단양 느티마을까지'>(기획출판 예당)를 펴냈다. <오마이뉴스>에 연재해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던 글을 묶었다.

440쪽 속에는 16년간의 땀방울이 배어 있다. 그는 지난 2002년부터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해 충북지역 마을 전수조사를 시작했다. 그가 다닌 마을만 2000여 곳, 만난 사람만 6000명에 이른다.

청원군 1054개 자연마을은 물론 영동군, 충주시, 단양군까지 민간인학살이 있었던 곳은 열일을 제치고 다니며 유가족과 목격자의 증언을 채록했다.

책에 담긴 내용은 주제 못지 않게 묵직하다. 1부 '기억전쟁'에서는 각 지역별 보도연맹사건에 대한 유가족과 목격자들의 기억을 실었다. 45편의 정제된 글 속에는 '독립운동가 집안에서 7명이 학살된 사연', '성 폭행 당한 딸, 화병에 죽은 엄마', '총살 직전 보도연맹원 40명 목숨 구한 시골 지서주임' 등 전쟁이 남긴 상흔을 현장의 목소리로 묘사했다.

'한 노병의 참회, '죽기 전에 고백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는 그가 이뤄낸 '가해자의 최초 공개증언'이기도 하다. 전쟁 당시 6사단 헌병대 소속이었던 가해자는 강원도 원주와 경북 영주, 충북 오창에서 민간인 총살에 참여했다고 증언했다. 또 보도연맹원에 대한 학살 명령이 '헌병사령부를 통해 대통령 특명이라는 무전지시를 직접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박 대표가 가해자를 거듭 만나, 고백을 통해 '트라우마'에서 벗어나도록 권유한 결과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마을 돌며 찾아내 복원한 민간인학살 '피해자 명부'

▲ 지난 20일 열린 '기억 전쟁' 출판기념회에는 책 속에 등장하는 유가족과 목격자들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 심규상


2부에서는 사건의 이해를 위해 충북지역 민간인학살의 발생 배경과 유형별 민간인학살, 피해자 현황을 수록했다. 특히 100여 쪽에 걸쳐 담아낸 '피해자 명부'(2575명)에는 박 대표가 찾아내 복원해 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는 빠르다. 피해자의 기억을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편성했다. '발로 쓰고, 가슴으로 또 한 번 썼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전쟁 당시 보도연맹사건으로 아버지를 잃은 유가족이자 민간인학살사건 연구자인 신경득 전 경상대 교수는 "사건의 진실을 캐내고 기록한 보석 같은 책"이라며 "충북 지역 민간인학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박 대표의 '기억 전쟁'을 반드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 종군 실화로 본 민간인학살'의 저자인 신 전 교수는 현재 '조선 전초(戰初) 종군 문학연구'를 준비 중이다.

신경득 전 경상대 교수 "사건의 진실을 캐내고 기록한 보석 같은 책"

▲ 박만순 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 ⓒ 심규상


최용탁 소설가는 "학살 흔적을 찾아 아무런 대가 없이 외롭게 현장을 누비고 다니며 파헤친 진실의 기록이자 인간에 대한 불멸의 선언"이라고 말했다.

지난 20일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100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대부분은 '기억 전쟁'에 소개된 유가족과 증언자다.

한국전쟁 68주년인 25일 박 대표가 말하는 '기억 전쟁'은 치유에 맞춰져 있다.

"전쟁의 아픈 기억을 소개한 것은 과거의 상처를 건드리자는 게 아닙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인권과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자는 의미입니다. 이 책에 수록된 충북 지역 내 2500여 명의 피해자 중 1600여 명이 아직까지 미신고 유족입니다. 하루 속히 '진실화해법'이 제정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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