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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전략공천 꺾고 DJ 고향에서 세 번째 무소속 당선

[광주전남 화제의 당선자 인터뷰 ②] 박우량 전남 신안군수

등록|2018.06.26 07:42 수정|2018.06.26 08:48
더불어민주당 압승으로 끝난 6.13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냥 치러지는 선거는 없다. <오마이뉴스>는 이정우 더좋은자치연구소 연구실장과 함께 광주전남지역 화제의 당선자를 만나보았다. 이 실장은 kbc광주방송 ‘시사터치 따따부따’에서 깊이 있는 시사비평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이정우가 만난 두번째 당선자는 박우량 전남 신안군수다 [편집자말]
연이어 무소속으로 당선(2006년·2010년)됐다. 2014년에는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의 권유로 입당해 공천을 받았지만 중도에 출마를 포기했다. 시한부 암투병 중인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서였다. 대략 1년 뒤인 2015년 10월 아내와 이별했다. 친형제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아내의 부고를 알리지 않았다.

세월호 사건에 연루돼서, 혹은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해 공천장을 버리고 잠적했다는 등 소문이 무성했다. 박우량의 '귀환'이 불편한 경쟁자들이 근거도 없이 퍼뜨린 소문이었다. 야인으로 지낸 4년 내내 소문은 부풀려지고 널리 퍼졌다.

민주당 전략공천 꺾은 박우량의 '귀환'

무소속 박우량 세 번째 당선당선 직후 지지자들과 함께 ⓒ 박우량 선거사무소


지지자들과 지역 정치권의 권유, 정부여당이 갖는 장점 등을 고려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공천경쟁을 준비했다. 그런데 중앙당은 박 예비후보를 컷오프 시켰다. 지역민들이 잘 알지도 못하는 '젊은' 후보가 민주당의 전략공천을 받았다. 그럼에도 박우량은 끝내 '귀환'했다. 세 번째 무소속 당선이었다.

"신안군민들은 도지사, 국회의원, 도의원과 군의원까지 압도적으로 민주당에 표를 몰아주었습니다. 그런데 군수 하나만 족집게로 뽑듯이 저를 지지해 주었습니다."

1위를 차지한 박 당선자뿐 아니라 2위도 무소속(현 군수)이었다. 민주당 후보는 3위에 그쳤다. 그나마도 4위와 차이가 나지 않는 3위였으며, 2위의 절반에 그치는 득표였다. 김대중의 고향 신안에서 추미애 대표가 전략공천한 민주당 후보의 초라한 성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김대중의 고향인데도 민주당 후보가 힘을 못 썼다고 하면 틀린 말입니다. 50년 가까이 김대중 대통령을 길러낸 군민들이기 때문에 지역에 필요한 후보를 엄격히 선택하고, 잘못된 공천을 심판할 수 있는 역량이 있었던 것입니다. 당에게 힘을 실어줘야 하는 부분에서는 확실하게 민주당을 선택했구요."

박 당선자는 현직 프리미엄과 민주당 프리미엄이라는 두 개의 산을 넘고 당선된 셈이다. 이처럼 놀라운 결과를 가능하게 한 근거를 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길러낸 신안군민"들의 빼어난 정치의식에서 찾았다. 그렇다면 신안군민들은 박 당선자의 어떤 점에 높은 점수를 줬을까.

박 당선자는 8년 동안(2006~2014) 신안군정을 이끌어 온 '전 군수'이기도 했다. 짧은 선거 기간 동안에 내 놓은 몇몇 공약보다, 그 이전 8년간의 군정에서 그를 다시 선택할 근거가 있었다고 추측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신안군에는 총 73개의 유인도가 있습니다. 임기 8년 동안 한 섬에 평균 세 번, 200번이 넘게 열심히 다니고 했는데도 어의도와 포작도 두 군데를 가보지 못했습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충분히 갈 수 있는데, 바람 불면 못 가고 안개 끼면 가지 못하는 게 섬입니다. 1/3은 군수실을 지켜야 하고 1/3은 중앙정부에서 일을 봐야 합니다. 큰 섬은 몇 차례 더 가야 합니다. 나머지 1/3의 시간을 가지고 자동차도 아닌 배를 타고 섬을 찾아다니는데 결국 두 군데를 못갔더라구요."

그만큼 '섬 군수' 업무는 특별하고 힘들다. 그래서였을까, 역대 신안 군수들의 군정 수행 방식은 박 군수와 달랐다. 크고 작은 섬들의 '유지'들을 목포로 불러 내 민원사항을 듣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장차 있을 선거를 대비해 이권을 나누고 공사를 배분하는 '밀실정치'도 이루어진다. 군민들의 세세한 삶을 개선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먼 행정이고 정치였다.

이권 배분보다 군민 기본권에 집중한 군수

박 당선자는 매 선거 때마다 군민들에게 필요한 공약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섬의 현실을 뼛속 깊이 아는 사람만이 내 놓을 수 있는 정책이었다. 당선되고 나서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고, 상당부분 실현했다. 대표적으로 섬 교통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사례가 있다.

민선5기 재임 시절 박 군수는 노무현 대통령과 중앙정부를 설득, 법을 개정해 100년 만에 전국 최초로 야간 여객선을 운항할 수 있도록 했다. 육지에 나왔다가 섬에 못 들어가면 불필요한 숙박비·식비가 들었다. 일을 못해 날아가는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주민들은 엄청난 불이익을 당해왔다. 그런데 야간에 배가 다님으로 해서 주민들의 삶이 획기적으로 달라졌다.

야간에도 배가 다니다 보니 대중교통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전국 최초로 버스 완전 공영제를 실시했다. 민간업자와 협의해서 5년 동안 14개 읍면에 있는 14개 버스회사를 군이 사들여 직접 운영했다. 65세 이상 어른신들은 무료로 이용하고, 또 일반 군민들은 도시처럼 거리에 관계없이 1000원만 부담토록 하는 정책이었다.

군민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개선한 사례는 더 있다. 섬사람들이 목욕을 한 번 하려면 목포까지 나와 1박2일, 2박3일을 허비해야 했다. 박 군수는 면에 목욕탕을 하나둘씩 순차적으로 지어 직영으로 운영했다. 여름철 폭염에도 마을회관에는 에어컨 한 대가 없었다. 2년에 걸쳐 360개 노인정에 에어컨을 설치했다. 4년 뒤에 정부 정책으로 에어컨 지원이 시작됐다. 이 때 받은 정부 돈으로는 에어컨 대신 김치냉장고를 하나씩 보급했다. 화장실도, 대합실도 없는 선착장들이 많았다. 전수 조사를 통해 시설을 마련했다.

그동안 군수들이 해 온 '유지정치'는 군민들이 받는 고통에 관심이 적었다. 도시 및 내륙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누리고 있는 권리조차 섬에서는 오랜 세월 무시되어 왔다. 박 군수는 '기본권'의 관점에서 군정을 펼쳤다. 혈세 투입의 근거가 여기에 있었다. 백년 만에 다니는 밤배나 버스 완전공영제는 헌법이 보장한 이동권을 신장시키는 것이었다. 목욕탕, 에어컨, 대합실, 화장실 설치 또한 헌법이 포괄적으로 보장하고 있는 건강권에 관한 것이었다.

▲ 박우량 신안군수 당선자. ⓒ 최성욱


기본권 실현은 '권리 그 자체의 확보'에 그치지 않았다. 버스 완전공영제의 경우 준공영제를 했을 때보다 운영비용은 30%가 절감됐고, 이용객은 네 배 많아졌다. 공영버스제가 시행되고 목욕탕이 들어서자 면 소재지 경기가 활성화됐고, 복지시설 이용률이 획기적으로 증가해 운영 효율성이 높아졌다. 또한 군민들 간의 활발한 접촉으로 유용한 정보교류가 활기를 띠었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조성 기반도 튼튼해졌다.

"문제도, 그 문제를 푸는 정책도 현장에 있습니다.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들으면서 함께 머리를 맞대면 해결책이 나옵니다. 진정으로 주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려 한다면 유지들을 만날 필요도 없고, 또 만나서도 안됩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민선7기 박 당선자의 정책 중심은 '소득'이다. 기본권을 실현하는 복지는 현재 거주하는 분들에게는 꼭 필요하지만 젊은이들이 돌아오고 사람이 늘어나는 데 미치는 영향은 한계가 있다. 소득을 증대하는 정책을 도입해야 인구감소 현상을 막고, 섬을 사람의 활기로 채울 수 있다.

"복지정책과 소득정책을 동시에 추진했지만 복지인프라가 원채 부족해서 복지 부분에 좀 더 집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전히 (복지)인프라 확대는 필요하지만 기본적인 부분이 어느 정도 충족됐기 때문에 이제는 희망에 역점을 두고자 합니다. 그것이 소득증대입니다."

연간 소요되는 수산물 양식장 사료값이 350억 정도인데 '군 보증 공동구매' 방식으로 구입하면 70억이 절약된다. 전국의 70%를 생산하고 있는 신안 왕새우의 경우 홍수출하(11월초~12월 중순)로 가격 파동이 늘 문제다. 100평짜리 급속냉동창고 20개를 마련하면 적정가격을 유지해 홍수출하 염려를 없앨 수 있다. 또 지금은 버리거나 헐값에 파는 파지새우를 가공시설을 만들어 '깐새우' 형태로 시장에 내 놓으면 더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이처럼 박 당선자가 계획하고 있는 소득증대 정책 또한 복지 정책과 마찬가지로 매우 구체적이고, 실현 가능성을 신뢰할 수 있는 근거와 논리가 가득하다.

"농가의 주 빚은 농기계입니다. 트랙터 하나가 7천만원입니다. 그런데 7천만원 주고 산 트랙터를 7년 밖에 못 씁니다. 해마다 감가상각비 1천만원이 날아갑니다. 창고가 없어서 이 트랙터의 90%가 비를 맞고 있습니다. 비만 안 맞아도 2~3년 더 씁니다. 전문가가 조금만 관리해줘도 2~3년 더 씁니다. 고압세척기 하나 마련해 그때 그때 흙이나 오염물을 털어내기만 해도 조금 더 씁니다. 관리만 잘해도 7년~10년 더 활용해 감가상각비를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창고를 짓고 고압세척기를 설치하는 지원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너도나도 모두 해줄 수는 없습니다. 농업에도 규모의 경제가 필요합니다. 400-500마지기당 트랙터 하나가 타산이 맞습니다. 그래서 그 정도 짓는 농가에 한해 창고시설을 지원해 규모를 늘리도록 유도할 계획입니다. 트랙터 하나만 가지고도 이렇게 소득개선을 할 수 있는데 이양기나 비료살포기를 비롯해 농기계 종류가 아주 많습니다. 군의 기초적인 지원과 유인정책만으로도 비용을 줄이고 소득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자료를 전혀 참고 하지 않고도, 박 당선자는 각 정책에 대해 세부적인 사항까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이처럼 확신에 찬 어조로, 이처럼 구체적인 수치를 동원해 질서정연한 논리로 정책을 풀어내는 박 당선자의 열정과 실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바다를 포함하면 신안군의 면적은 서울의 21배입니다. 또 (신안군의) 북과 남의 기온차이는 2도가 나고, 동서 거리가 150km에 이르고 흑산도에 가면 흑산도 특유의 사투리 때문에 통역관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현장을 시시때때로 들여다보고 주민들과 대화하고 스스로 공부하고 연구하지 않으면 좋은 정책을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자체의 자율성이 최대한 보장되어야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한 연방제 수준의 자치분권이 꼭 필요합니다. 좋은 인물을 뽑는 주민들의 정치의식, 뽑힌 단체장의 끊임없는 노력, 이런 것들이 잘 맞아야 지역의 미래,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을 것입니다."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 맞지 않다"

▲ 박우량 신안군수 당선자. ⓒ 최성욱


흔히 전남을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말한다. 두 가지 면에서 옳지 않다. 첫째, 유권자를 수동적으로 규정한 '텃밭'이라는 표현의 비윤리성 때문에 옳지 않다. 둘째, 실제 선거 결과를 들여다봐도 호남은 민주당의 텃밭이 아니다.

정당귀속성 투표경향이 상대적으로 약하게 작동하고, 인물 구도가 좀 더 강하게 부각되는 선거 단위가 기초단체장 분야이다. 그래서 기초단체장 선거는 민심의 구체적인 흐름을 살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전남의 기초단체장 선거구는 모두 22개이다. 이 중 2010년 7곳, 2014년 7곳, 2018년 8곳에서 전남 유권자들은 '비민주당 후보'를 당선시켰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 바람이 태풍급으로 불었다. 그럼에도 전남의 유권자들은, 서울과 경기는 물론, 충남보다도 '더 적게' 민주당 후보를 선택했다.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 때는 전남이 민주당을 지키는 구심지였으나 이제는 민주당의 오만을 견제하는 구심지로 변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이 점은 전북도 마찬가지이다.)

전남의 유권자들은 함량미달의 민주당 후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또한 빤히 보이는 사사로운 목적으로 지역민을 속이려는 '민주당'의 공천 행위도 용납하지 않았다. 어느 곳보다 김대중을 오랫동안, 그리고 많이 지지했던 신안군민들은 세 번에 걸쳐 '무소속 박우량'을 선택함으로써 전남 유권자들의 선택기준이 무엇인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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