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사건', 익명의 권력 남성들 낱낱이 밝혀야
사건 해결은 미투운동의 진정한 취지에 부합
▲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 등 시민단체회원들이 지난 2009년 4월 3일 오전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고 장자연 문건에 대한 경찰의 신속한 수사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서울중앙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홍종희)는 26일 '장자연 사건'과 관련하여 <조선일보> 기자 출신 A씨를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장자연 사건은 2009년 3월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신인 탤런트 장씨가 기업인과 유력 언론사 관계자, 연예 기획사 관계자 등에게 성 접대를 했다고 폭로한 문건이 공개됨으로써 불거진 사건이다.
2009년 경기도 성남 분당경찰서는 장씨 등의 술자리에 동석한 여배우 B씨의 진술을 바탕으로 A씨를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지만 수원지검 성남지청은 B씨 진술의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불기소 처분했다. 이에 비난 여론이 일자 검찰은 문건에 언급된 재벌 그룹의 총수, 방송사 프로듀서, 언론사 경영진 등 10여 명을 수사한 끝에 모두 무혐의 처분을 하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2018년 들어 일어난 미투운동에 힘입어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장자연 사건', '장자연 리스트' 등으로 불리며 각종 의혹이 불거지고 논란이 일어났다. 사건 재수사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어섰다. 마침내 서울중앙지검이 공소시효를 2달여 앞둔 가운데 재수사를 결정한 바 있다.
이번에 불구속 기소된 A씨는 2008년 8월 5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가라오케에서 장씨와 장씨의 전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씨 등과 술을 마시던 중 장씨를 자신의 무릎에 앉히고 신체 일부를 만진 혐의를 받고 있다.
장자연씨는 죽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받아줄 만한 여러 기획사를 수소문했다고 한다. 그는 자살 당일에도 함께 제주도에 가기로 한 지인에게 갈지 말지 망설이는 태도를 비쳤다. 이로 보아 그의 죽음은 그가 원했거나 계획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장자연씨는 목숨을 끊기 3일 전 새벽 소속사 매니저와의 통화에서 두려움을 호소했다.(2009년 3월 29일 MBC <뉴스데스크> 보도) 그는 "김 전 대표가 나를 죽여 버린다고 했다"고 말했다. 또한 그의 한 측근은 "(장씨가) 평소에 지나가는 말로 그렇게 얘기했어요. 자기네 사장님(김 전 대표)은 무서운 사람이라고 했어요"라고 증언했다.
2009년 당시 장자연씨의 죽음은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추모되지 않았다. 추모는커녕 오히려 그녀의 행실을 문제 삼는 발언들이 공개적으로 발설되기도 했다.
한국의 주류세력이 장자연 씨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2009년 3월 30일 자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위원의 칼럼 '장자연이 박연차를 만났다면'을 읽으면 알 수 있다. 김 논설위원은 장자연을 말하면서 난데없이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적 후견인 역을 했던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을 불러냈다.
"만약 고인이 생전에 박씨를 만났더라면 안타깝게 목숨을 끊는 일은 없었을 거라는 망상이 치민다. 노무현 전 대통령 '빽'에다 돈으로 모든 걸 살 수 있다고 믿는 박 씨가 힘없고 나약한 신인 여배우 하나 못 도와줬겠는가."
김 논설위원은 장자연의 죽음 원인을 이토록 터무니없이 왜곡했다. 그는 장자연이 (박연차 같은) 확실한 '빽'을 잡았더라면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고 자의적으로 추론했던 것이다. 요컨대 그녀의 죽음은 유력언론의 논설위원에 의해서 '유일한 무기인 몸까지 바쳤지만 성공하지 못해 비관한 나머지 이루어진 것'이라고 규정되었다.
<조선>과 한편인 <동아>의 김순덕 논설위원은 여성이다. 여성인 그는 한 여성을 죽음으로 내몬 권력 남성들의 술 접대, 성 접대 강요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말하지 않았다. 요컨대 여성의 죽음 뒤에 숨은 남성들에 대한 문제의식을 전혀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관점은 한국에서 이른바 성공했다는 남성 다수의 것일 수도 있다. 이것은 원래 여성혐오는 같은 여성에 의해 시작되고 그것이 2차로 남성들에게도 확산된다는 일본인 여성학자 우에노 치즈코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 사건의 본질은 여성 연예인 장자연 뒤에 익명으로 숨은 남성들에게 있다. 그들은 '유력한 신문사 사장' 으로 대표되는 남성들이다. 장자연씨는 억울하게 죽었을 뿐 아니라 그 죽음의 실상조차 왜곡되어 알려졌다. 흔히 '두 번 죽는다'는 것은 장자연씨 같은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거듭 말해서 사건의 본질은 장자연씨를 죽음으로 내몬 권력 남성들의 불법적인 욕망과 횡포에 있다. 이번에 경찰이 무엇을 수사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2009년 당시 경찰과 검찰은 본질적인 수사는 하지 않고 문건 작성과 입수 경위 등의 딴전 수사로 시간을 끌거나 피상적인 시늉 수사에 그쳤다.
억울한 죽음은 신원(伸冤)되어야 한다. 또한 약자에 대한 성적 횡포는 근절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장씨의 죽음 뒤에 익명으로 숨은 권력 남성들이 기명화 돼야 할 것이다. 덧붙여 이것은 미투운동의 진정한 취지에 부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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