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주의에 저항하는 병역거부, 더 나은 사회로 내딛는 발걸음
병역거부자 처벌이 위헌 결정되길 기대하며
▲ "대체복무제 개선하라"지난 2002년 9월 13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약 10여명의 대학생들이 양심적 병역거부권 인정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치다 끌려나오고 있다. ⓒ 권우성
나는 한국 사회를 갉아 먹고 있는 군사주의 체제에 저항하고 군사 행위가 독점하지 않은 평화를 모색하기에 2014년부터 예비군 훈련 거부를 했다. 그 탓에 현재까지 경찰서와 법원에 수차례 출석해오고 있다. 내게 편성된 훈련은 처벌로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적으로 부과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끝나지 않는 경찰 조사와 법원 재판, 벌금과 항소의 뫼비우스 띠에 묶여 일상을 살고 있다.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오는 법원 소환장은 내 일상에 작은 파문을 일으키고, 이로 인해 몸부림칠수록 더 깊이 빠져드는 늪에 갇힌 느낌을 받곤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조금씩 분위기가 바뀌어 왔다. 언론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에게 무죄가 선고되었다는 소식을 전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런 기사는 이제 흔해서 언론에도 잘 나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더딘 변화를 체감하기는 쉽지 않았다. 무죄 소식은 두꺼운 유죄의 벽에 나는 실금 같았지만 씁쓸하게도 나는 견고한 현실의 벽 앞에 우두커니 서 있을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나는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가 어떤 변론을 하더라도 재판부는 이미 정해진 목적지를 말하는 지하철 안내방송처럼 판결을 되풀이했다.
재판부는 병역을 거부하는 개인의 양심의 자유는 국민 전체의 안전을 보장하는 국방의 의무 곧 병역 의무와 충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휴전 중인 한국에서는 군사 행위만이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것이자, 군사력이 아닌 방식의 평화를 도모하는 개인의 신념은 국방이라는 헌법적 이익을 훼손한다는 판결이었다. 결국 두 가치가 충돌할 경우 개인의 양심의 자유는 제한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국가 안보와 개인의 양심의 자유는 충돌할 수밖에 없을까? 그렇지 않다. 한 해 약 600명에 불과한 병역거부자로 인해 국방이란 헌법적 법익이 훼손되긴 어렵다. 이미 사회복무요원 등 비전투 병역복무자가 수십만에 이르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두 가치는 대체복무제를 통해 상호 공존할 수 있다.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개인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도 사회 구성원의 안전을 도모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토록 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가치를 충돌시키고 있는 것은 병역거부자가 아니라 대체복무란 합리적 제도를 도입하지 않는 국가다.
국가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국회에는 이미 3가지의 대체복무 입법안이 제출되었다. 그런데도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판하는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한 판결을 마냥 미뤄왔다. 그런데 얼마 전 대법원에서는 14년 만에 전원합의체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병역법 위반 재판을 심리하겠다고 발표했다. 며칠 지나지 않아 헌법재판소는 28일 종교적, 정치적 신념 등 개인의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 제1호 조항에 제기된 위헌제청 등에 대해 선고를 한다고 26일 공지했다.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미 변화의 조짐이 싹트고 있었다. 하급심 무죄는 2004년 이후 모두 89건이었고 올해만 28건의 무죄판결이 나왔다. 이뿐 아니라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루는 다수의 재판부가 헌재의 결정을 지켜보고 결정하는 취지에서 잠시 심리를 중단하는 '추정'을 결정하기도 했다. 내 경우에도 2016년 열린 재판이 1년 동안 추정되었고, 최근 항소심 또한 추정되었다. 다수의 판사가 입법으로 합리적인 대체복무제가 도입 가능한데도 병역거부자를 처벌하는 것을 꺼렸던 것으로 추측된다. 개인의 모든 기본권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헌법에 반하는 판결을 하기가 불편했던 것 아닐까.
휴전 상태인 한국에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기에 개인의 종교적, 평화적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는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기존 헌법재판소의 입장이었다. 남북 관계는 평화협정을 바라볼 만큼 화해 분위기에 접어들었고, 대체복무제를 찬성하는 국민들은 70%를 넘었다. 그 어느 때보다 보편인권을 확대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장할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었다.
28일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수많은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합헌이든 위헌이든 어느 쪽의 결론이든 사회적 파문이 일 것이다. 합헌이라면 무수히 중단된 양심적 병역거부를 다루는 재판이 진행되어 수백 명의 범법자가 발생할 것이고,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보편 인권과 이에 기반한 삶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가장 좋은 기회를 다시 한번 놓치게 될 것이다. 위헌이라면 대체복무 도입 전까지 법률의 공백기가 발생할 것이다. 하지만 대체복무 도입 속도만큼 줄어들 일시적인 공백기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혼란이자 충격파일 것이다.
나 또한 병역거부자로서 기대하고 있다. 병역거부의 정당한 사유에 군사 행위가 아닌 방식의 평화를 추구하는 생각과 삶이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사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군사주의에 독점되지 않는 평화를 마음껏 이야기할 수 있는 사회가 열려, 생각과 삶의 다양성이 존중되고, 대체복무를 통해 사회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이 기대를 현실로 만들고, 더 다채로운 평화로 사회를 채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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