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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 맞은 것 같은 고추밭, 조금 보살폈더니

자연의 복원력이 놀랍습니다

등록|2018.07.02 10:01 수정|2018.07.02 11:53
우리 동네는 엊그제 장맛비가 기상청 예보보다 훨씬 많이 내렸습니다. 태풍급은 아니라도 그와 맞먹는 바람도 세차게 불어 닥쳤습니다.
비온 다음날 아침, 아내와 함께 텃밭에 나왔습니다.

▲ 사흘 전 세찬 비바람에 고추밭이 폭격을 맞은 듯 쓰러졌습니다. ⓒ 전갑남


"여보, 고추밭이 폭격을 맞았네."
"간밤에 폭우가 억수로 쏟아지더니만 기어코..."

아내가 걱정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

"한쪽으로 쏠리고 축 처져있는데, 뿌리가 흔들려서 잘 자랄 수 있을까?"
"이 정도 가지고는 괜찮을 거야!"

고춧대가 큰 비바람에 요리저리 휩쓸리고 쓰러졌습니다. 아내 말마따나 마치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고추말목 쪽으로 몰려서 쓰러진 게 많습니다. 말목에 세 차례나 줄로 고춧대를 유인해준지라 부러진 것은 없습니다.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으켜 세우고 끈으로 중간 중간 붙잡아주면 꼿꼿이 다시 설 수 있을 거야. 한 사나흘 두고 보자고!"

그간 애써 가꾼 것을 생각하면 고춧대가 쓰러져 혹여 잘못될까 걱정하는 아내를 안심시켰습니다.

▲ 아름답게 핀 고추꽃. 요즘 한참 많이 피어납니다. ⓒ 전갑남


▲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풋고추. 붉어지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 전갑남


▲ 우리 고추밭에 자라고 있는 피망. 제법 굵어졌습니다. 우리 고추밭에는 일반 고추외에 청양고추, 꽈리고추, 오이고추 등도 자라고 있습니다. ⓒ 전갑남


요즘 들어 고추 자라는 게 놀라울 정도입니다. 가지도 여러 갈래로 뻗고, 꽃도 엄청 많이 피어납니다. 꽃이 진 자리에 달린 아기고추는 어느새 굵어졌습니다. 주렁주렁 달린 것도 숱합니다.

▲ 고추말둑에 띄운 줄 사이 사이 쓰러진 고춧대를 세워 묶어주는 데 사용한 금속끈. 단단히 붙잡아 줄 수 있었습니다. ⓒ 전갑남


▲ 쓰러지 고춧대를 일으켜 세워 금속끈으로 묶어주었습니다. ⓒ 전갑남


나는 조심스레 쓰러진 고춧대를 일으켰습니다. 그리고선 붙잡아 준 줄 사이 사이에 작은 금속끈으로 묶어줍니다. 축 처지고 한쪽으로 쏠린 고춧대가 어느 정도 바로 섰습니다.

자연의 놀라운 복원력

장마전선이 남부지방으로 내려간 사흘 후, 내 예측이 들어맞았습니다. 손을 조금 보태서 추슬러 준 고추밭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것처럼 제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고추밭을 둘러본 아내가 놀라 묻습니다.

"아니 이럴 수가! 당신 손이 마술 손인가?"
"이 사람, 무슨 소리! 내 손이 마술을 부린 게 아니고, 자연의 놀라운 복원능력인 거지!"
"당신도 고맙고, 알아서 잘 자라는 자연도 고맙고!"

▲ 손을 보고 난 사흘 후, 완전히 제모습을 되찾은 우리 고추밭. 언제 쓰러졌나 싶을 정도입니다. ⓒ 전갑남


직장생활을 하느라 농사는 나몰라라 하는 아내가 오늘따라 농사꾼처럼 이야기합니다.

"태풍이 올라온다던데, 고춧대 또 묶어 줘야하는 거 아녀요?"
"그렇지 않아도 묶어줄 참이네요!"

▲ 태풍에 큰 비가 온다하여 다시 네 번째로 줄을 띄었습니다. ⓒ 전갑남


고춧대가 내 배꼽만큼 키가 자랐습니다. 나는 고추끈을 찾아 고춧대를 묶습니다. 벌써 네 번째로 묶는 것입니다. 붙잡아 맨 고추밭이 이발을 한 것처럼 단정해 보입니다. 이제 어지간한 비바람에는 견딜 듯싶습니다. 일하고 난 뒤 이마에 흘린 땀이 참 소중합니다.

아내가 기분 좋은 말을 꺼냅니다.

"냉장고에 막걸리 있으니 풋고추 된장에 막걸리 한 잔 하시구려!"

아내가 따라주는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이 기가 막힙니다. 풋고추가 매콤하게 맛이 들었습니다. 막걸리 안주로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먹는 맛, 모르는 사람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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