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알 4개로 본 '국격', 한국-캐나다는 달랐다
[산 강과 죽은 강⑤] 물떼새의 천국, 모래톱 위에 서다
▲ 지난 6월 22일 공주 공산성 앞 모래톱에서 발견한 아기 물떼새 ⓒ 김종술
<"새알 4개를 보호하라" 캐나다의 분투>
지난 6월 28일자 조선일보가 인터넷 판에 올린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이 지난 6월 21일부터 7박 8일간 4대강을 탐사취재하면서 본 수많은 새알들이 떠올랐다. <조선>은 기사 첫머리에 세 개의 사진을 올려놓고 이런 설명 글을 달았다.
"음악 축제의 메인 무대가 들어설 곳 바닥에서 어미 새가 알이 든 둥지를 지키고 있다(위). 축제 준비위 측은 이 둥지를 정밀 촬영해 복제하고(가운데), 어미가 새 둥지에서 계속 알을 품는 것을 확인하고 20분마다 1m씩 옮기는 작업에 들어갔다(아래). /CBC 화면 캡처"
[두 개의 시선] 이명박과 <조선>은 캐나다와 너무 달랐다
▲ 지난 6월 22일, 공주 공산성 앞 모래톱에서 발견한 물떼새 ⓒ 정대희
이 기사의 골자는 캐나다 최대 음악 축제인 '오타와 블루스페스트(Bluesfest)'가 새알 때문에 난관에 부딪혔다는 내용이다. 매년 30만 명이 몰리는 이 축제의 주 무대가 들어설 곳에 철새보호법상 보호종인 물떼새(killdeer) 알이 발견됐다. <조선>은 "물떼새는 지난 40여 년간 개체 수가 계속 줄어 캐나다 연방법은 정부의 승인 없이 둥지를 훼손하거나 건드리는 것을 금한다"는 규정을 덧붙여서 설명했다.
결국 행사 주최 측은 캐나다 환경·기후변화부에 둥지 이전을 요청했고 축제 준비위는 무대 설치 작업을 미루고 한 번에 1m씩 옮기는 작업을 벌였다. 이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인공 부화기도 준비했다. <조선>은 물떼새 알을 바라보는 캐나다 정부의 따뜻한 시선에 주목했지만, 이 기사를 보는 나의 시선은 달랐다.
이명박 정권은 물떼새 한 마리가 아니라 수천 수만 마리의 새 둥지인 4대강의 모래와 자갈을 불도저로 밀어버렸다. 포클레인과 수중준설선을 앞세워 수심 6m까지 파냈다. 얕은 물에 사는 철새의 낙원을 완전히 없애 버렸지만 4대강 살리기 사업의 홍보 영상에는 '철새가 돌아오는 4대강 사업'이라는 글귀까지 넣었다. 캐나다 정부와는 너무 달랐다.
<조선>도 이런 이명박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4대강 사업을 찬양했고, 정권에 화답을 하듯 반대자들을 몰아붙였다. 2011년 9월 14일자 조선일보는 '4대강 난리 난다던 사람들의 침묵'이라는 데스크 칼럼에서 "4대강 반대가 약해졌다"며 이는 "좌파의 치고 빠지기"라고 색깔론까지 뒤집어 씌웠다. 나는 <조선>의 이 기사가 너무 뻔뻔했다.
[모래 강의 추억] 환경 재앙의 흔적 위에 튼 둥지
▲ 지난 6월 22일 공주 공산성 앞 모래톱에서 발견한 물떼새 알 ⓒ 정대희
4대강 독립군이 탐사 취재 이틀째인 지난 22일 찾아간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공산성 앞의 모래톱이었다. 예전에는 뭍과 이어져 있어서 아이들과 어른들이 뛰어놀았지만 4대강 사업 이후 완전히 수몰됐던 곳이다. 공주 사람들의 추억이 담긴 모래톱이 공주보 수문 개방 이후 다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투명카약을 타고 노를 힘차게 저었다.
"와~~"
모래톱 위에서 내리자마자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터졌다.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따구와 실지렁이들이 점령했던 펄을 씻어내고 모래가 돌아왔다. 재퇴적된 모래톱의 첫 방문객을 맞은 새들은 여기저기서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지르며 멀리 물가 쪽으로 피했다.
4대강 독립군은 탐사를 시작했다. 전날 보았던 세종보 하류의 하중도 모래톱보다 깨끗하진 않았다. 이곳 모래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상대적으로 상류에 있는 하중도보다 펄이 덜 씻겨나간 탓이다. 한 발짝 뗄 때마다 얇게 깔린 모래 속의 펄이 드러났다. 맨발에 끈적끈적하고 미끈한 감촉이 느껴졌다. 4대강 환경재앙의 흔적이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모래톱 위에 자갈이 수북한 곳에는 어김없이 꼬마물떼새가 튼 둥지가 보였다. 쌀 한 톨만 한 자갈을 끌어 모아 만든 안식처가 뜨거운 햇볕을 받고 있었다. 4대강 독립군들은 모래톱 위를 제대로 걸을 수가 없었다. 새알을 밟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 흩어져서 조심스레 새알을 찾기 시작했다.
"아, 여기도 있네요."
서너 곳에서 물떼새 알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제주도의 오름처럼 살짝 솟은 자갈밭에 메추리알보다 작은 알이 3~4개씩 놓여 있었다. 7~8개의 빈 둥지도 확인을 했다. 상황이 악화되지 않는다면 8월까지 번식은 지속될 것으로 보였다. 4대강 독립군들이 탐사를 하는 동안 어미 새로 보이는 물떼새가 소리를 지르며 주변을 날아다녔다.
[어린 생명] 4마리의 희망
"쉿! 조용히!"
모래톱을 탐색하던 김병기 기자가 검지를 입에 댔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이다. 4대강 독립군들은 그가 가리키는 곳을 말없이 살폈다. 자갈 둥지에 갓 태어난 꼬마물떼새 4마리가 숨을 죽인 채 앉아 있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녀석들은 인기척을 느끼고 둥지 바깥으로 나와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내 가운데 손가락만한 키였다.
한 녀석은 쭈뼛쭈뼛 둥지를 나와서 김 기자의 발뒤꿈치에 숨었다. 김 기자는 녀석을 밟을까봐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또 다른 한 마리는 1m 남짓 되는 거리를 뒤뚱거리며 뛰어갔다. 녀석은 발목을 물속에 담그고 정지했다. 하얀 솜털에 밤색 털이 채 마르지 않은 꼬마 물떼새였다.
"삑~삑~삑~"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던 녀석은 물속에서 두발로 딱 버티고 서서 소리를 냈다.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숨을 멈추고 카메라 렌즈를 당겼다. 작은 솜털까지 적나라하게 카메라에 담긴 꼬마는 영락없이 찬란한 새 생명의 모습이었다. 공주보 수문을 열었기에 이곳에서 태어난 생명체였다.
낯선 방문객의 침입. 어미로 보이는 꼬마물떼새 한 쌍이 낮게 날아다니면서 우리를 위협했다. 3~4미터 가까운 모래언덕에 앉아 날개 죽지를 파닥이며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안간힘을 썼다. 둥지를 보호하려는 모정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어미 새들이 뜨거운 햇살 아래 둥지를 오래 비우면 알이 상할 수 있다. 날개깃에 물을 축여서 알을 식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4대강 독립군들에게 말했다.
"이젠 빨리 빠져 나가죠."
우린 주변에 새알 둥지가 있는지를 살피면서 새들의 천국인 자갈밭에서 서서히 퇴각했다.
[첫 번째 기록자] 위대한 복원의 현장
▲ 금강의 모래톱이 돌아왔다. 물길을 가로막고 있던 콘크리트 장벽이 완전히 누우면서 강이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사진은 공산성 앞 모래톱이 되돌아온 모습 ⓒ 김종술
8년 전인 지난 2010년 이곳에서는 살육전이 벌어졌다. 드넓게 펼쳐진 모래 웅덩이에 살아가던 물고기들은 4대강 공사로 떼죽음을 당했다. 이명박 정부는 아이들이 뛰어놀던 금은 모래를 불도저와 같은 중장비로 파헤쳤다. 대형 덤프트럭으로 퍼날랐다. 강바닥 깊은 곳까지 준설해서 지난 2014년에는 공산성 붕괴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수문을 열자 주검의 공간은 생명의 공간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막대한 혈세를 들여 수심 6m를 팠지만 재퇴적됐다. 동식물들의 삶터를 허물었지만 물길이 흐르자 자연은 새로운 쉼터를 만들었다. 이날 4대강 독립군은 위대한 자연의 복원을 목격한 첫 번째 기록자가 됐다. 투명카약을 타고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우리는 꼬마물떼새의 둥지에서 가장 먼 곳으로 이동해서 이를 기념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가져온 대형 현수막을 들고 대자연의 모래톱에서 백제보와 하굿둑의 수문개방을 요구했다. 현수막에는 2012년 4대강 준공과 동시에 죽어간 금강의 쏘가리 사진을 담았다.
[닫힌 공간] 죽음의 강에 묻힌 금강이
▲ 지난 6월 22일 공주보 앞에서 퍼올린 시커먼 펄에는 시궁창이나 하수구에 사는 실지렁이가 있었다. ⓒ 정대희
4대강 독립군은 이날 오후에는 금강 하류로 이동했다. 금강의 3개 보 중 유일하게 닫힌 백제보의 영향을 받는 공주보 바로 위쪽이다. 제일 위쪽에 있는 세종보에서는 빛나는 모래 강을 봤고, 중간에 있는 공주보 상류에서는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죽음과 삶의 공간이 교차하는 펄 반 모래 반의 하중도를 취재했다. 수문을 연 것과 가둔 것의 차이는 어떨까?
공주보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낯익은 시큼한 악취가 밀려왔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서 맡아왔던 그 냄새였다.
"수문이 열렸는데 펄이 깊네."
4대강 독립군에서 낙동강 지킴이 역할을 하는 정수근 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장)가 삽을 물 속으로 향하다 주춤거렸다. 오전에 갔던 공산성 앞의 하중도에서는 유속이 빨랐으나, 이곳은 굳게 닫힌 백제보의 영향을 받아서 물이 거꾸로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물이 정체된 상태에서 바람이 상류 쪽으로 불었기 때문이었다.
정 기자가 물이 허리춤까지 오른 곳에서 한 삽을 뜨자 공기방울이 부글부글 치솟았다. 강바닥에 쌓인 펄이 썩으면서 뿜어내는 메탄가스다. 그가 시커먼 펄 흙을 한 삽 퍼서 선착장 위에 놓자 시궁창 냄새가 진동했다. 정 기자는 김병기 기자와 함께 펄 흙을 맨손으로 뒤지기 시작했다.
"붉은 깔따구다!"
"이건 실지렁이네."
두 기자는 연신 죽은 강의 증거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한 삽에 대여섯 마리의 생명체가 나왔다. 예전에는 세종보 상류에서도 흔히 발견할 수 있었던 것들이다.
나는 이 모습을 '금강이'(드론 애칭)에 담았다. 이번 탐사취재에서 영상을 담당한 정대희 기자는 내 옆에서 계속 주문을 했다.
"정수근 기자 앞에서 출발해서 뒤로 쭉 빼주세요."
"공주보가 보이는 곳에서 낮게 상류 쪽으로 가면서 찍어줘요."
금강이는 첫 미션을 훌륭하게 수행했지만, 두 번째 미션을 수행하면서 보위에 설치된 피뢰침을 피하다가 멈칫했다. 그때부터 백제보 30m 상공에서 드론 조정기가 말을 듣지 않았다. 금강이가 제자리에서 맴돌았다. 간신히 우리 눈앞까지 왔지만, 물속으로 곤두박질을 쳤다. 금강이는 잉어가 뛰어오르듯이 물 밖으로 파닥거리다가 사라졌다.
허탈했다. 금강의 죽음을 고발해 온 금강이는 시궁창에 처박혔을 것이다. 4대강 독립군 탐사취재를 위해 쓰려던 돈으로 같은 기종의 드론을 그 자리에서 구입했다. 세 달이나 밀린 월세를 내려고 아껴둔 돈이기도 했다. 두통이 밀려왔다.
[금강의 분투] 캐나다의 교훈
▲ 꼬마물떼새가 금강의 모래톱에 터전을 마련했습니다. 금강의 희망입니다. ⓒ 김종술
캐나다는 축제보다 새알 4개를 소중하게 여겼다. 정부까지 나서서 새알 둥지 이전 작전을 벌였다. 이날 4대강 독립군은 공산성 앞에 살짝 모습을 드러낸 작은 모래톱에서 새알 15개를 보았다. 새알에서 갓 태어난 꼬마물떼새 4마리도 보았다. 다 같은 소중한 생명이다.
금강의 2개 수문만 열었을 뿐인데, 대자연은 스스로 생명을 잉태했다. 이명박 정부가 저지른 4대강 사기극의 부산물인 시궁창 펄을 씻어내며 강물이 한 몸뚱이가 되어 죽음의 공간을 삶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다시는 수문을 닫는 일이 없어야 한다. 지금도 승승장구하는 4대강 부역자들이 다시는 준동하지 못하도록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들의 죗값을 기록하는 게 생명의 강을 만드는 첩경이다. 4대강 적폐세력을 척결하는 게 생명을 지키는 일이다. 정권이 교체됐고, 이명박씨가 감옥에 갇혔지만 4대강 독립군이 아직도 현장을 지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6월21일부터 27일까지 금강과 낙동강을 탐사 보도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뒤에 수문을 연 '산 강'과 아직도 이명박근혜 정권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은 '죽은 강'을 비교하면서 4대강 사업의 대안을 제시합니다. 또 오마이뉴스는 4대강 사업을 소재로 한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듭니다. 4대강 다큐 영화는 불법 비자금을 집중 추적합니다. 부역자들이 받은 '떡고물'을 전격 공개합니다. 이명박근혜 정권에 맞서 싸운 4대강 독립군의 눈물겨운 투쟁도 담습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응원과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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