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최후의 방어기지' 유진상가를 아시나요?

안보 논리가 지배했던 오래된 건물...이제는 철거 운명

등록|2018.07.04 09:03 수정|2018.07.04 09:03
서울 서부권역의 교통 요충지 홍은사거리에는 눈길을 사로잡는 건물 하나가 있다. 1970년 지어져 햇수로 48년을 맞은 '유진상가'다. 홍제천을 복개한 시유지에 폭 50m, 길이 200m로 지은 유진상가는 당시 최고급 주상 복합 아파트로 서대문의 랜드마크였다.

▲ 서대문 홍은사거리에 위치한 유진상가. 지어진지 48년 된 오래된 건물이다. ⓒ 채경민


'타워팰리스의 원조격'

세대별 분양 면적이 다른 상가 아파트에 비해 월등히 넓어 최소 33평, 최고 68평에 달했다. 주거동에는 '유진맨션'이라는 이름이 붙였는데 '맨션'이 당시 고급 아파트에 주로 붙었던 이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곳이 얼마나 고급 주택이었는가를 새삼 실감케 한다. 실제로 초기 입주자 중 상당수는 정부와 법조계의 고위직이었다.

유진상가 건물의 구조는 매우 독특하다. 얼핏보면 한 개의 건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A동과 B동, 이렇게 두 개의 동이 마주 보고 연결된 형태다. 두 개의 동 사이에는 중앙 정원(중정)이 있는데 A, B동을 연결하는 일종의 요충지 같은 곳이다.

계단을 통해 2층에 올라가면 중정의 규모에 놀랄 수 밖에 없다. 길이가 160m에 육박하고, 폭도 16m나 된다. 그네가 딸린 작은 놀이터와 관리실가 있고, 곳곳에 주민들이 내놓은 화분과 에어컨 실외기가 어지럽게 널려 있다. 인적이 드물어 황량함마저 감돌지만 입주 당시에는 아이들이 뛰놀던 넓은 마당이었다고 한다.

▲ A동과 B동 사이의 중앙정원(중정)은 매우 넓다. 폭 16m미터, 길이 200미터의 거대한 규모다. 요즘 아파트에선 찾아보기 힘든 구조다. ⓒ 채경민


▲ 중앙정원 한 켠에는 그네가 딸린 작은 놀이터와 관리실이 있다. ⓒ 채경민


주거동의 복도는 최근의 복도형 아파트와 비교해도 공간이 매우 넓다. 집집마다 장독과 화분을 내놓았지만 통행에 지장이 없을 정도다. 대부분의 세대가 실내를 교체해 입주 초기의 분위기는 사라졌지만 공용 공간에는 나무로 된 창틀과 오래된 철문이 남아 있어 아파트의 연식을 짐작케 한다.

▲ 유진상가 주거동의 복도는 요즘의 복도형 아파트와 비교해도 매우 넓다. ⓒ 채경민


옥상은 요즘 말로 '테라스형 아파트'에 가깝다. 넓은 옥상 공간에 화분을 내놓고 작은 정원처럼 꾸몄다. 바람에 흩날리는 빨래에선 웬지모를 정겨움이 묻어난다. 대부분 20여 년을 넘게 산 토박이들이라 스스럼없이 문을 열고 지내는 집들이 대부분이다.

▲ 옥상은 요즘 말하는 '테라스형 아파트'와 비슷하다. 주민들이 내놓은 장독과 화분, 빨래가 어우러져 정겨운 풍경을 만든다. ⓒ 채경민


옥상 너머 풍경은 A동과 B동의 차이가 크다. 남쪽의 A동에선 인왕시장을 비롯해 홍제동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오래된 주택과 아파트 공사 현장이 뒤섞여 세월의 변화를 실감케 한다. 그러나 B동은 바로 앞에 지어진 대단지 아파트가 시야를 가리고 머리 위로는 고가도로인 내부순환로가 지나고 있어 딱히 풍경이라고 말하기 민망한 수준이다.

▲ 5층 규모의 유진상가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다. 오래된 계단이 아파트의 연식을 짐작하게 한다. 50년이 다 된 건물이지만 계단의 상태는 온전하다. ⓒ 채경민


내부순환로 공사로 아파트 일부 뜯어내

A동과 B동은 모두 5층 높이의 건물이었다. B동의 높이가 지금과 같이 낮아진 건 '내부순환로'가 들어서면서부터다. 1992년 내부순환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B동 주민들이 서울시에 보상을 요구했고, 1997년 94가구에 보상이 완료되면서 3~5층을 뜯어낸 것이다. 내부순환로가 들어선 후 B동은 차량 소음으로 입주를 꺼리는 경우가 늘어 현재는 서대문구 신지식산업센터로 쓰이고 있다. 최근에는 청년 예술가를 위한 공간도 생겨 사실상 공공 건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 건축 당시 5층이었던 유진상가 A동은 1997년 내부순환로 공사로 3~5층을 뜯어냈다. 이후 차량 소음으로 입주를 꺼리는 경우가 많아져 현재는 공공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 채경민


안보 논리 지배했던 시절 '최후의 바리게이트'

유진상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안보'다. 유진상가가 지어지던 1970년 무렵은 남북간의 군사적 긴장이 최고조에 달한 때였다. 1968년의 김신조 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잇따른 북한의 침투로 안보가 중대한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유진상가가 들어선 곳은 북한군이 구파발을 뚫고 남하할 경우 이를 저지해야 하는 수도권 방어선에 속한 곳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유진상가는 군사 시설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1층 가로변에 세워진 거대한 기둥(필로티)이 대표적인 예인데 유사 시 아군 전차의 진지로 활용하기 위한 것이다. 기둥의 간격도 제법 넓어서 전차가 몸을 숨기기 알맞다. 기둥을 부술 경우 아파트가 넘어지면서 거대한 장애물이 된다.

▲ 유진상가의 1층 필로티 공간이 군사적 목적으로 설계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유사 시 아군 전차의 엄폐호로 활용할 목적의 공간이다. ⓒ 채경민


▲ 1층 필로티(기둥) 사이가 넓은 것도 전차의 폭을 고려한 것이다. ⓒ 채경민


영화 <희생부활자>의 한 장면유진상가는 배우 김래원이 출연한 미스터리 영화 <희생부활자>에도 등장한다. ⓒ 영화사 신세계, 바른손E&A


건물도 튼튼하게 지어져 보수 공사를 하는 업자들 사이에선 '못 박기 어려운 건물'로 유명했다. 서울 시내의 다른 건물보다 철근과 콘크리트를 훨씬 많이 넣어 강도를 높인 덕분이다.

한때 서대문의 랜드마크였던 유진상가는 시간이 흐르면서 흉물 취급을 받고 있다. 지방선거에 출마한 이 지역 대부분의 후보들이 '유진상가 철거'를 대표 공약으로 내세웠을 정도. 사진을 찍는 기자에게 주민들이 던진 질문의 상당수도 재건축에 관한 것이었다. 대다수 당선인들의 관심 속에 7년 넘게 지지부진했던 재건축 논의도 다시 속도를 낼 것이다.

▲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유진상가 B동. 1층은 과일을 파는 상점들이 입점해 있고 2~5층은 주거동이다. ⓒ 채경민


언젠가는 건물이 헐리고 이 자리에 또 새로운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그러나 건물은 사라져도 역사는 남는다. 유진상가를 그저 낡은 건물이 아닌 남북 대결의 아픈 현대사를 투영한 공간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내 손안에 서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