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지 않고도 여행을 즐기는 법, 어렵지 않아요
상상하는 만큼 떠나는 여름휴가, 지금 놀러갑니다
확실히 휴가철이다. 내가 휴가를 쓰느냐 쓰지 못하느냐는 무관하다. 나도 여름휴가 계획이 없으면서 사람들을 만나면 여름휴가는 언제냐고 묻는 한심한 처지이니, 내가 휴가를 가든 못 가든 괘념치 않고 나에게 여름휴가 계획을 물어보는 이들을 탓할 이유도 없다.
다행히 휴가를 떠나지 못하더라도 휴가 준비는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고? 말 그대로다. 올여름에 휴가를 가든 못 가든 언젠가는 휴가를 갈 수 있을 테고, 우리는 지금부터 그 휴가를 준비하는 역사적 사명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퇴사 이후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러면 또 어떤가. 그만큼 떠나고 싶은 곳을 만나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계획만 세우고 짐조차 싸지 않은 이들에게
어디로 떠나든 어떻게 떠나든 그리고 언제 떠나든, 여행을 떠나려면 짐을 싸야 한다. 수하물 제한이 없는(정말 없는지는 타보지 않아 모르겠다) 퍼스트클래스를 타지 않는 한, 그리고 내 짐을 직접 들고 다녀야 한다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는 여행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래서 '행복한 여행자'라 불리는 여행의 고수들이 어떤 소지품을 가방에 담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은 '소박한 여행'에 필요한 목록 마흔한 가지를 전한다. 작품마저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았던 마르셀 뒤샹은 주말여행을 떠날 때 짐 가방은 절대 사절이었고, 따로 셔츠를 담아가는 일도 귀찮아서 두 벌의 셔츠를 껴입고 출발했다고 하니 본받을 만하다. 가볍게 떠나는 주말여행이니 그렇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연주의자 존 뮤어의 천마일 도보여행은 어떨까. 그는 말로만 "사람은 홀로 침묵 속에서 짐가방 없이 떠나야 진정으로 황야의 심장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여행은 모두 먼지와 호텔과 짐가방과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떠든 게 아니다. 실제 가방에도 빗, 브러시, 수건, 비누, 속옷, 번스 시집 사본, 밀턴의 <실락원>, 우드의 <식물학>, 작은 신약성서, 일기장, 지도만 넣고 떠났다고 하니, (빗과 브러시가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하는 나의 의심을 제외하면) 만점짜리 소지품 목록이라 하겠다.
이번 휴가에 가져갈 가방이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나로서는, "우리는 물질을 소유하면 기쁨을 얻는다. 또 우리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기쁨을 얻는다. 이 두 가지 모순되는 기쁨 사이에서 우리는 삶을 춤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우리는 휴가를 떠나면 기쁨을 얻는다. 또 우리는 휴가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기쁨을 얻는다. 이 두 가지 모순되는 기쁨 사이에서 우리는 삶을 춤추어야 한다"로 고쳐 읽으며 어정쩡한 스텝을 밟을 수밖에.
떠나지 않아도 떠날 수 있는 방법
다행히 우리에게는 아래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으면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떠날 수 없는 곳을 상상하면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다.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그렇다, 전자는 너무 억지스러우니 그래도 후자를 먼저 살펴보자.
<지금 놀러 갑니다, 다른 행성으로>는 태양계 여행 안내서다. 어차피 아무도 떠나지 못하는 곳에 가까우니, 마음껏 상상하며 만족감을 느끼기에 이만한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지구와는 다른 환경이니 준비는 필요하다. 하루에 40번씩 20초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며 중력 훈련을 받아야 하고, (아마도 우주 유영을 위해) 테니스화를 신고 25미터 길이 수영장에서 쉬지 않고 세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바로 떠나지는 못할 터이니 당장 이 부담스러운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이 여행에는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가 따로 없고, 무작정 무게를 늘릴 수도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평등한 여행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당신도 나도 당장은 상상만으로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평등하다).
이 엉뚱한 가이드들은 가까운 달부터 명왕성까지 차례로 안내를 하고 있으나, 그나마 눈에 보이는 달을 살펴보는 걸로 만족하도록 하자. 달은 언제 가야 좋을까? 지금이다. 달은 해마다 지구에서 3.81센티미터씩 멀어지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행거리가 늘어나고, 이는 당연히 시간과 비용으로 환산된다.
호텔에 도착하면 지구가 보이는 방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지구가 보이기만 한다면 높이는 중요하지 않다. 달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기에 일단 지구가 보인다면, 지구가 시야에서 사라질 일은 없다. 참, 역사 탐방을 좋아하는 이라면 아폴로 우주선 여섯 대가 착륙한 지점에 꼭 가보는 게 좋겠다. 특히 1969년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니, 꼭 자신의 신발을 옆에 대고 기념촬영을 해보자.
어차피 떠나지도 않을 여행을 숨 가쁘게 돌아보니 벌써 지치는 기분이다. 어디론가 떠나는 일도 귀찮아지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성공이다. 이제 여름휴가를 떠날 마음이 사라졌으니, 남들 부러워할 이유도 못내 아쉬워할 이유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참, 앞서 말하고 설명하지 않은 "어디로도 떠나지 않으면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여전히 궁금하다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펼쳐보길 권한다. 제목 그대로 내 방에서 세계를 만끽하는 방법을 전하는 책인데,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즐기는 놀라운 비법을 알려준다. 이제 방구석은 초라한 안식처가 아니라 안락한 휴양지가 될 것이고,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우리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말,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정말로.
다행히 휴가를 떠나지 못하더라도 휴가 준비는 할 수 있다. 무슨 말이냐고? 말 그대로다. 올여름에 휴가를 가든 못 가든 언젠가는 휴가를 갈 수 있을 테고, 우리는 지금부터 그 휴가를 준비하는 역사적 사명을 실천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퇴사 이후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러면 또 어떤가. 그만큼 떠나고 싶은 곳을 만나 모든 걸 잊고 떠날 수 있다면,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계획만 세우고 짐조차 싸지 않은 이들에게
어디로 떠나든 어떻게 떠나든 그리고 언제 떠나든, 여행을 떠나려면 짐을 싸야 한다. 수하물 제한이 없는(정말 없는지는 타보지 않아 모르겠다) 퍼스트클래스를 타지 않는 한, 그리고 내 짐을 직접 들고 다녀야 한다면,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지는 여행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래서 '행복한 여행자'라 불리는 여행의 고수들이 어떤 소지품을 가방에 담았는지 살펴보려 한다.
<자유로운 여행자의 소지품 목록>은 '소박한 여행'에 필요한 목록 마흔한 가지를 전한다. 작품마저 별다른 공을 들이지 않았던 마르셀 뒤샹은 주말여행을 떠날 때 짐 가방은 절대 사절이었고, 따로 셔츠를 담아가는 일도 귀찮아서 두 벌의 셔츠를 껴입고 출발했다고 하니 본받을 만하다. 가볍게 떠나는 주말여행이니 그렇게 갈 수 있는 게 아니냐는 반문이 나올 법하다.
그렇다면 미국 국립공원의 아버지로 불리는 자연주의자 존 뮤어의 천마일 도보여행은 어떨까. 그는 말로만 "사람은 홀로 침묵 속에서 짐가방 없이 떠나야 진정으로 황야의 심장에 다다를 수 있다. 그렇지 않은 여행은 모두 먼지와 호텔과 짐가방과 수다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떠든 게 아니다. 실제 가방에도 빗, 브러시, 수건, 비누, 속옷, 번스 시집 사본, 밀턴의 <실락원>, 우드의 <식물학>, 작은 신약성서, 일기장, 지도만 넣고 떠났다고 하니, (빗과 브러시가 무엇이 다른지 알지 못하는 나의 의심을 제외하면) 만점짜리 소지품 목록이라 하겠다.
이번 휴가에 가져갈 가방이 있는지조차 확인하지 않은 나로서는, "우리는 물질을 소유하면 기쁨을 얻는다. 또 우리는 물질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기쁨을 얻는다. 이 두 가지 모순되는 기쁨 사이에서 우리는 삶을 춤추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우리는 휴가를 떠나면 기쁨을 얻는다. 또 우리는 휴가로부터 자유로워지면 기쁨을 얻는다. 이 두 가지 모순되는 기쁨 사이에서 우리는 삶을 춤추어야 한다"로 고쳐 읽으며 어정쩡한 스텝을 밟을 수밖에.
떠나지 않아도 떠날 수 있는 방법
▲ <지금 놀러 갑니다, 다른 행성으로 - 호기심 많은 행성 여행자를 위한 우주과학 상식> 올리비아 코스키, 야나 그르세비치 지음 / 지상의책 ⓒ 참여사회
<지금 놀러 갑니다, 다른 행성으로>는 태양계 여행 안내서다. 어차피 아무도 떠나지 못하는 곳에 가까우니, 마음껏 상상하며 만족감을 느끼기에 이만한 여행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지구와는 다른 환경이니 준비는 필요하다. 하루에 40번씩 20초 동안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며 중력 훈련을 받아야 하고, (아마도 우주 유영을 위해) 테니스화를 신고 25미터 길이 수영장에서 쉬지 않고 세 번 왔다 갔다 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우리는 바로 떠나지는 못할 터이니 당장 이 부담스러운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이 여행에는 퍼스트클래스나 비즈니스클래스가 따로 없고, 무작정 무게를 늘릴 수도 없으니, 어떤 면에서는 평등한 여행이라고 평할 수도 있겠다(당신도 나도 당장은 상상만으로 떠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역시 평등하다).
이 엉뚱한 가이드들은 가까운 달부터 명왕성까지 차례로 안내를 하고 있으나, 그나마 눈에 보이는 달을 살펴보는 걸로 만족하도록 하자. 달은 언제 가야 좋을까? 지금이다. 달은 해마다 지구에서 3.81센티미터씩 멀어지고 있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비행거리가 늘어나고, 이는 당연히 시간과 비용으로 환산된다.
호텔에 도착하면 지구가 보이는 방을 서둘러 확보해야 한다. 지구가 보이기만 한다면 높이는 중요하지 않다. 달은 언제나 같은 방향을 향하기에 일단 지구가 보인다면, 지구가 시야에서 사라질 일은 없다. 참, 역사 탐방을 좋아하는 이라면 아폴로 우주선 여섯 대가 착륙한 지점에 꼭 가보는 게 좋겠다. 특히 1969년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딘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으니, 꼭 자신의 신발을 옆에 대고 기념촬영을 해보자.
▲ 내방여행하는법 <내 방 여행하는 법 -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 지음 / 유유 ⓒ 참여사회
참, 앞서 말하고 설명하지 않은 "어디로도 떠나지 않으면서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여전히 궁금하다면 <내 방 여행하는 법>을 펼쳐보길 권한다. 제목 그대로 내 방에서 세계를 만끽하는 방법을 전하는 책인데, 남들 다 가는 해외여행에서 벗어나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즐기는 놀라운 비법을 알려준다. 이제 방구석은 초라한 안식처가 아니라 안락한 휴양지가 될 것이고,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우리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정말,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정말로.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박태근님은 알라딘 인문MD입니다. 온라인 책방 알라딘에서 인문, 사회, 역사, 과학 분야를 맡습니다. 편집자란 언제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는 사람이라 믿으며, 언젠가 ‘편집자를 위한 실험실’을 짓고 책과 출판을 연구하는 꿈을 품고 삽니다. 이 글은 월간<참여사회>7-8월 합본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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