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자영업, 왜 퇴직자들의 무덤이 됐나
[뉴욕시 소기업, 소상공인 지원기관 탐방기⑤] 자영업 소상공인이 처한 현실
뉴욕은 어떨까? 2017년 여름. 소기업·자영업자들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다가 불현듯 뉴욕시가 떠올랐고, 관련 자료들을 검색하면서 이 도시를 직접 방문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경제의 뿌리를 이루는 소기업 및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 관점에서 뉴욕시를 조망해 본 자료를 거의 본 기억이 없었고, 무엇보다 크고 작은 소기업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메가시티 뉴욕의 지원 생태계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뉴욕 탐방단을 꾸리게 되었고, 금년 3월 일주일간 뉴욕시를 방문해 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여러 기관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기자말>
어느 동네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한 개 있다고 하자.
근처에 새로운 중국 음식점을 내려는 사람은 동네에 먼저 터를 잡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 주인한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첫 3개월간은 당신이 파는 가격보다 30% 싸게, 다음 3개월은 20% 싸게, 그 다음은 10% 싸게 음식가격을 책정할 생각이다. 이렇게 9개월이 지난 후에는 당신과 같은 가격대를 유지토록 하겠다. 단, 이로 인해 생길 당신의 매출 손실은 내가 보상토록 하겠다. 동의해 주겠는가?"
기존 식당 주인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중국인 동포가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어느 동네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한 개 있다고 하자. 근처에 새로운 한국 음식점을 내려는 사람은 먼저 터를 잡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 탐문수사를 벌인 후, 같은 메뉴에 그 식당보다 10% 싼 가격대를 책정해 시장진입을 시도한다. 이에 열 받은 기존 식당 주인은 새 식당보다 10% 싼 가격대로 음식 값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이 치킨 게임은 둘 중 하나가 망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게 된다.
하나는 같이 사는 상생(相生), 다른 하나는 혼자만 살겠다는 독생(獨生)의 생존법.
오래 전 캐나다 토론토시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 여행가이드가 코리아타운(K-town)과 차이나타운(C-town)의 크기가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하면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이 동포를 대하는 차이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 봐도 늘 코리아타운보다 차이나타운이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무척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왜 한국인들은 본인 사업에 도움이 되는 설명회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미 연방 중소기업청(SBA) 뉴욕지부에서 일하는 직원(Manli K. Lin)이 미팅 중간에 우리 일행에게 던진 질문이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발주하는 조달계약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할당하도록 법제화되어 있고 이 계약에 응찰하려면 일정한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데, 자격 취득요건이 여성이나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청에서 자주 설명회를 연다고 한다.
이 직원의 말인즉슨, 지난 수년 간 뉴욕 주와 시를 돌며 많은 설명회를 주관했는데 중국인들은 언제나 설명회장을 가득 메울 만큼 오는데, 한국인들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정보를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사하느라 바빠서 짬을 내기 어려운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캐나다 여행가이드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혹 두 이야기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나는 아직까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뉴욕에 사는 한인 동포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가 따로 있어서 굳이 설명회장에 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미 중소기업청 직원이 오해를 했을 수도 있다. 한국인들 중 다수가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자영업의 성공공식으로 이해하는 탓일 수도 있고, 일제 강점기와 개발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조상 전래의 협력(품앗이)과 협동(두레)의 유전자가 후천적 퇴화를 거친 연유일 지도 모른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생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뉴욕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길에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누군가는 계속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 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나도 이 생각이 무모한 것임을 잘 안다. 현실의 자영업 생태계란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과 같은 곳이므로.
하지만 무릇 인간들이 만든 질서란 인공적인 것이므로 이를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다수가 실패하는 구조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역에 무슨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우리 자영업 소상공인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자.
중소기업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360만4773개) 중 소상공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85.6%(308만4376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개 중 85개가 소상공인이라는 말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도/소매업이 1위(88만3721개), 음식/숙박업이 2위(61만5430개)로 가장 많다. 이들 4개 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이 전체 소상공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간단히 말해,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업체 100개 중 85개가 소상공인이고 이 중 41개는 도/소매업이거나 음식/숙박업이라는 뜻이다.
서울지역도 비슷하다. 서울시 소상공인 사업체(641,379개) 중 도/소매업은 30.8%(19만7929개), 음식/숙박업은 15.6%(10만355개)로 각각 1,2위를 차지하며 4개 업종을 합할 경우 46.5%에 이른다. 어느 지역 어느 동네를 살펴봐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정한 구역 안에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지나치게 많게 되면, 과당경쟁으로 인해 망하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통계자료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이들 4개 업종(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은 전국적으로 총 48만3910개가 생기고 42만4893개가 없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소매업의 경우 28만6341개가 생기고 24만8383개가 망했으며, 음식/숙박업은 19만7569개가 문을 열고 17만6510개가 문을 닫았다. 다산다사(多産多死). 많이 생기고 많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소상공인 생태계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최근 3년간(2015∼2017)의 흐름을 살펴봐도 큰 차이가 없다. 2015년에는 48만5490개가 창업을 했고 39만3451개가 폐업을 했으며, 2016년에는 48만4410개가 창업을, 37만6484개가 폐업을 했다. 한 해에 100개가 생기면 80개가 없어지는 구조다. 굳이 통계자료를 뒤질 필요도 없다. 매일 출근하는 회사 주변이나 사는 동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게나 음식점 간판이 바뀐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백년가게는 고사하고 1년 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개미지옥을 방불케 하는 이 시장으로 끊임없이 달려드는 것일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유와 사연들이 존재하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먹고 살기 위해서'가 가장 근접한 답이 아닐까 싶다. 60세 이상 고령층 창업자 수 추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2015년은 10만4758명이었지만, 2016년에는 12만1278명, 2017년에는 12만8247명으로 시니어 창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노후 준비가 덜 된 시니어들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기대수명에 대비하기 위해 생계형 창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율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도/소매업 및 음식/숙박업의 60세 이상 창, 폐업 현황을 살펴보았더니 4개 업종을 합할 경우 창업한 수보다 폐업한 수가 47%나 많았다. 최근 3년간 흐름을 봐도 창업 3만4745개+폐업 4만9320개(2015년), 창업 3만7958개+폐업 4만8861개(2016년), 창업 3만9545개+폐업 5만8106개(2017년)로 창업한 수보다 폐업한 수가 더 많았다.
개별 사업자의 창업 시기와 폐업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이기 때문에 정확한 생존율을 추정할 순 없으나, 고령 창업자들의 시장 생존율이 타 연령대나 전체 평균에 비해 낮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향후 수년에 걸쳐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대거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더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설문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700만 명 가운데 400만 명 이상이 준비 없이 은퇴를 맞게 될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창업 분포도는 어떨까
아래 표는 지난 3년간(2015∼2017) 상위 5개 업종의 연령대별 창업 건수를 산술평균한 값이다. 파란색은 신규 창업건수(3년 평균), 빨간색은 등수를 뜻한다. 30세 미만의 경우, 소매업이 1위이고 부동산임대업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령대별 1위 업종을 살펴보면, 30세 미만은 소매업, 30대와 40대는 서비스업, 50세 이상은 부동산임대업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제조업은 전 연령층에서 순위(5등) 안에 들지 못했다.
국세청의 표준산업분류 14개 업종 가운데 5개(부동산임대업, 서비스업, 음식업, 도/소매업) 업종이 전 연령에서 공통적으로 5위 안에 들어갔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임대수입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업종 5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은퇴 후(60세 이상)는 그렇다 치고, 경제활동 연령대인 50대(1위), 40대(2위), 30대(4위) 심지어 30세 미만(5위)에도 부동산임대업이 상위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드러내 주는 단면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라 판단된다.
벼랑 끝 자영업, 퇴직자들의 무덤
어제도, 오늘도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자영업에 관한 이야기들은 온통 우울한 내용들뿐이다. 우리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토로하는, 하지만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하는 공허한 기사들을 매일 접하며 이런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소기업 자영업 생태계가 높은 임대료와 낮은 진입장벽, 지나칠 정도의 과밀화와 과당경쟁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글과 같은 곳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인 임대료 상승을 막고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률의 제/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정쟁에 묻혀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또한 백화점, 면세점 등 대기업(100만 원 기준 0.01%)에 비해 100배나 많은 중소상인 카드수수료(100만 원 기준 1%)도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의제 해결은 모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길고, 오랜 숙원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자영업 시장의 과밀화를 막으려면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직장 밖으로 밀려나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본인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것. 개인이 사업주체가 되어 경영하는 사업. 즉, 자영업(自營業)에 종사하는 것뿐이다.
작금의 상황은 직업을 구하지 못한 청년부터 직장에서 쫓겨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생존율이 현저히 낮은 자영업 시장 속으로 '생존을 위해' 떠밀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은 한, 어떤 정책도 이 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 보고 치료하는 대증요법으로는 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영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여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부의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일 가정 양립, 양성 평등 등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주제들은 마땅히 큰 관심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독 자영업자 문제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주변부에 방치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이유일까. 이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의제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보다 급하고 중한 사안이 있을까.
정년 연장과 일자리 나눔 등을 통해 경제활동인구 중 다수가 일터에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는 바람일 뿐, 한계가 클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퇴직자들이 이 영역에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기 사업을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교육훈련 과정을 통해 자영업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키는 프로그램(post-retirement training program)을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정부와 민간 영역에 창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차고 넘칠 만큼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내용이나 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부분 '개별적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의 길'만 가르치고 있다. 10개가 생기고 8개가 없어지는 자영업 시장에서, 남은 2개의 주인이 되는 비법을 전수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소기업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은 중앙이 아니라 지역(local)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이 스승이 되어, 후배들이 만든 사업 아이템을 살펴봐 주고, 혼자보다는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며, 기업가들이 지역에 잘 안착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소기업 자영업을 위한 지원체계를 만들어갈 때,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현장 지원기관이다. 뉴욕 투어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지원 생태계의 핵심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현장기관들이었다. 지역마다 산업 기반이 다르고 자영업 환경이 다르므로 지역 현실에 맞는 지원 방법을 수행하려면 지역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기관들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이 정부와 당사자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생태계는 활성화될 수 있다.
지역 내에서 소기업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개별 기업들을 살리는 것(점)을 넘어 기업과 기업을 잇고(선), 지역 내에 존재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에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내는(면) 작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장 지원기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hub)이 되고 개인, 기업, 정부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참여하여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열린 플랫폼(platform)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긴 안목에서 이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상생과 협력의 시대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시장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호혜와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가 주목받고 있다. 자영업 시장은 고밀도와 치열한 경쟁구조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swim or sunk)' 기존 방식이 아닌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living together) 질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공동시설 이용, 공동 운영시스템 개발 등 기업 간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소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상공인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cooperative) 기업을 만들어 자조, 자립의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사업 참여자들이 함께 성공 신화를 써갈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이 따라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혼자만 살겠다는 독생(獨生)보다 같이 사는 상생(相生)이 훨씬 지속가능한 방법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의 어원은 '공동의 목표를 함께 지향한다(cum petere)'는 뜻이라고 한다. 공동의 목표란 무엇인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영업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면, '진짜 중요한 경쟁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새 것을 위해 옛 것을 없애는 경쟁'이라고 말한 경제학자 슘페터(J. Schumpeter)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낡은 건물의 보수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상상력이다.
그렇게 뉴욕 탐방단을 꾸리게 되었고, 금년 3월 일주일간 뉴욕시를 방문해 소기업들을 지원하는 일을 수행하는 여러 기관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이 지면을 통해 몇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기자말>
어느 동네에 중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한 개 있다고 하자.
근처에 새로운 중국 음식점을 내려는 사람은 동네에 먼저 터를 잡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 주인한테 이렇게 말한다.
"내가 첫 3개월간은 당신이 파는 가격보다 30% 싸게, 다음 3개월은 20% 싸게, 그 다음은 10% 싸게 음식가격을 책정할 생각이다. 이렇게 9개월이 지난 후에는 당신과 같은 가격대를 유지토록 하겠다. 단, 이로 인해 생길 당신의 매출 손실은 내가 보상토록 하겠다. 동의해 주겠는가?"
기존 식당 주인은 이 제안을 수락하고 중국인 동포가 자리를 잡도록 도와준다.
마찬가지로, 어느 동네에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 한 개 있다고 하자. 근처에 새로운 한국 음식점을 내려는 사람은 먼저 터를 잡고 있는 식당을 찾아가 탐문수사를 벌인 후, 같은 메뉴에 그 식당보다 10% 싼 가격대를 책정해 시장진입을 시도한다. 이에 열 받은 기존 식당 주인은 새 식당보다 10% 싼 가격대로 음식 값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이 치킨 게임은 둘 중 하나가 망하는 비극적인 결말로 끝이 나게 된다.
하나는 같이 사는 상생(相生), 다른 하나는 혼자만 살겠다는 독생(獨生)의 생존법.
오래 전 캐나다 토론토시를 방문했을 때, 한국인 여행가이드가 코리아타운(K-town)과 차이나타운(C-town)의 크기가 왜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지를 설명하면서 들려주었던 이야기다. 다소 과장이 섞여 있긴 하지만, 한국인과 중국인이 동포를 대하는 차이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전 세계 어느 도시를 가 봐도 늘 코리아타운보다 차이나타운이 훨씬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무척 흥미로운 해석이라고 느꼈던 기억이 난다.
"왜 한국인들은 본인 사업에 도움이 되는 설명회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미 연방 중소기업청(SBA) 뉴욕지부에서 일하는 직원(Manli K. Lin)이 미팅 중간에 우리 일행에게 던진 질문이다. 미국은 연방정부가 발주하는 조달계약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할당하도록 법제화되어 있고 이 계약에 응찰하려면 일정한 자격을 취득해야 하는데, 자격 취득요건이 여성이나 이민자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청에서 자주 설명회를 연다고 한다.
이 직원의 말인즉슨, 지난 수년 간 뉴욕 주와 시를 돌며 많은 설명회를 주관했는데 중국인들은 언제나 설명회장을 가득 메울 만큼 오는데, 한국인들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른 채널을 통해서도 정보를 입수할 수 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장사하느라 바빠서 짬을 내기 어려운 것일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캐나다 여행가이드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고, 혹 두 이야기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 건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이 들었다.
나는 아직까지 그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뉴욕에 사는 한인 동포들끼리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가 따로 있어서 굳이 설명회장에 갈 필요가 없을 수도 있고, 미 중소기업청 직원이 오해를 했을 수도 있다. 한국인들 중 다수가 새벽부터 밤까지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자영업의 성공공식으로 이해하는 탓일 수도 있고, 일제 강점기와 개발 독재시대를 거치면서 조상 전래의 협력(품앗이)과 협동(두레)의 유전자가 후천적 퇴화를 거친 연유일 지도 모른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생존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뉴욕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귀국길에 내내 머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누군가는 계속해서 죽을 수밖에 없는 자영업 시장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었다. 나도 이 생각이 무모한 것임을 잘 안다. 현실의 자영업 생태계란 누군가와 싸워서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글과 같은 곳이므로.
하지만 무릇 인간들이 만든 질서란 인공적인 것이므로 이를 자연법칙처럼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지만, 다수가 실패하는 구조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영역에 무슨 희망이 남아 있단 말인가.
우리 자영업 소상공인들이 처한 현실을 살펴보자.
중소기업중앙회의 자료에 따르면, 2015년을 기준으로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360만4773개) 중 소상공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85.6%(308만4376개)인 것으로 나타났다. 100개 중 85개가 소상공인이라는 말이다. 업종별로 살펴보면 도/소매업이 1위(88만3721개), 음식/숙박업이 2위(61만5430개)로 가장 많다. 이들 4개 업종에 종사하는 소상공인이 전체 소상공인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8.6%로, 거의 절반에 육박한다. 간단히 말해, 사업자등록증을 가진 업체 100개 중 85개가 소상공인이고 이 중 41개는 도/소매업이거나 음식/숙박업이라는 뜻이다.
서울지역도 비슷하다. 서울시 소상공인 사업체(641,379개) 중 도/소매업은 30.8%(19만7929개), 음식/숙박업은 15.6%(10만355개)로 각각 1,2위를 차지하며 4개 업종을 합할 경우 46.5%에 이른다. 어느 지역 어느 동네를 살펴봐도, 도소매업과 음식숙박업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정한 구역 안에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업체가 지나치게 많게 되면, 과당경쟁으로 인해 망하는 곳이 생기기 마련이다.
▲ 2017 자영업 4개업종 개폐업 현황 ⓒ 국세청 통계연보자료(2017 국세통계) 편집
통계자료가 이를 잘 입증하고 있다. 국세청 통계연보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이들 4개 업종(도소매 및 음식숙박업)은 전국적으로 총 48만3910개가 생기고 42만4893개가 없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도/소매업의 경우 28만6341개가 생기고 24만8383개가 망했으며, 음식/숙박업은 19만7569개가 문을 열고 17만6510개가 문을 닫았다. 다산다사(多産多死). 많이 생기고 많이 없어진다는 뜻으로, 우리나라 소상공인 생태계의 현주소를 잘 나타내주는 표현이다.
최근 3년간(2015∼2017)의 흐름을 살펴봐도 큰 차이가 없다. 2015년에는 48만5490개가 창업을 했고 39만3451개가 폐업을 했으며, 2016년에는 48만4410개가 창업을, 37만6484개가 폐업을 했다. 한 해에 100개가 생기면 80개가 없어지는 구조다. 굳이 통계자료를 뒤질 필요도 없다. 매일 출근하는 회사 주변이나 사는 동네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게나 음식점 간판이 바뀐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백년가게는 고사하고 1년 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왜 사람들은 개미지옥을 방불케 하는 이 시장으로 끊임없이 달려드는 것일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많은 이유와 사연들이 존재하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먹고 살기 위해서'가 가장 근접한 답이 아닐까 싶다. 60세 이상 고령층 창업자 수 추이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2015년은 10만4758명이었지만, 2016년에는 12만1278명, 2017년에는 12만8247명으로 시니어 창업은 계속 늘어나고 있다.
노후 준비가 덜 된 시니어들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는 기대수명에 대비하기 위해 생계형 창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들의 생존율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도/소매업 및 음식/숙박업의 60세 이상 창, 폐업 현황을 살펴보았더니 4개 업종을 합할 경우 창업한 수보다 폐업한 수가 47%나 많았다. 최근 3년간 흐름을 봐도 창업 3만4745개+폐업 4만9320개(2015년), 창업 3만7958개+폐업 4만8861개(2016년), 창업 3만9545개+폐업 5만8106개(2017년)로 창업한 수보다 폐업한 수가 더 많았다.
▲ 2017년 자영업 4대 업종 개폐업 현황(60세 이상) ⓒ 국세청 통계연보 자료(2017 국세통계) 편집
개별 사업자의 창업 시기와 폐업 시기를 고려하지 않은 단순 비교이기 때문에 정확한 생존율을 추정할 순 없으나, 고령 창업자들의 시장 생존율이 타 연령대나 전체 평균에 비해 낮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향후 수년에 걸쳐 베이비부머들의 은퇴가 대거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수치는 더 나빠질 개연성이 크다. 설문에 따르면, 베이비부머 700만 명 가운데 400만 명 이상이 준비 없이 은퇴를 맞게 될 것으로 조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령대별 창업 분포도는 어떨까
아래 표는 지난 3년간(2015∼2017) 상위 5개 업종의 연령대별 창업 건수를 산술평균한 값이다. 파란색은 신규 창업건수(3년 평균), 빨간색은 등수를 뜻한다. 30세 미만의 경우, 소매업이 1위이고 부동산임대업이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연령대별 1위 업종을 살펴보면, 30세 미만은 소매업, 30대와 40대는 서비스업, 50세 이상은 부동산임대업임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제조업은 전 연령층에서 순위(5등) 안에 들지 못했다.
▲ 신규사업자 업종별, 연령대별 창업 현황(2015-2017) ⓒ 국세청 통계연보(2015-2017) 자료 편집
국세청의 표준산업분류 14개 업종 가운데 5개(부동산임대업, 서비스업, 음식업, 도/소매업) 업종이 전 연령에서 공통적으로 5위 안에 들어갔다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임대수입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우리 국민이 선호하는 업종 5위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은퇴 후(60세 이상)는 그렇다 치고, 경제활동 연령대인 50대(1위), 40대(2위), 30대(4위) 심지어 30세 미만(5위)에도 부동산임대업이 상위에 포진되어 있다는 것은 우리 경제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드러내 주는 단면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현상이라 판단된다.
벼랑 끝 자영업, 퇴직자들의 무덤
어제도, 오늘도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자영업에 관한 이야기들은 온통 우울한 내용들뿐이다. 우리는 자영업자들의 고통을 토로하는, 하지만 아무런 답도 제시하지 못하는 공허한 기사들을 매일 접하며 이런 현실을 어쩔 수 없는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나라 소기업 자영업 생태계가 높은 임대료와 낮은 진입장벽, 지나칠 정도의 과밀화와 과당경쟁 등 여러 구조적인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정글과 같은 곳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자영업자들에게 가장 큰 고통인 임대료 상승을 막고 임차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관련 법률의 제/개정을 서둘러야 한다.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은 정쟁에 묻혀 아직까지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또한 백화점, 면세점 등 대기업(100만 원 기준 0.01%)에 비해 100배나 많은 중소상인 카드수수료(100만 원 기준 1%)도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의제 해결은 모든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의 길고, 오랜 숙원이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바로 일자리 문제다. 자영업 시장의 과밀화를 막으려면 좋은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하지만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다. 따라서 어떤 이유로든 직장 밖으로 밀려나온 사람들은 어떻게든 먹고 사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보통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이미 정해져 있다고 봐야 한다. 본인 스스로 밥벌이를 하는 것. 개인이 사업주체가 되어 경영하는 사업. 즉, 자영업(自營業)에 종사하는 것뿐이다.
작금의 상황은 직업을 구하지 못한 청년부터 직장에서 쫓겨난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생존율이 현저히 낮은 자영업 시장 속으로 '생존을 위해' 떠밀려 들어가고 있는 형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은 한, 어떤 정책도 이 시장의 근본적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표면에 나타난 증상만 보고 치료하는 대증요법으로는 병의 원인을 제거할 수 없다.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자영업 생태계의 경쟁력을 높여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부의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일 가정 양립, 양성 평등 등 지금 우리 사회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이 주제들은 마땅히 큰 관심과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사안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유독 자영업자 문제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주변부에 방치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무슨 이유일까. 이 문제보다 더 '시급하고 중요한' 의제들이 많다고 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보다 급하고 중한 사안이 있을까.
정년 연장과 일자리 나눔 등을 통해 경제활동인구 중 다수가 일터에 오래 머물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는 바람일 뿐, 한계가 클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는 비자발적 퇴직자들이 이 영역에 들어와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자기 사업을 희망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퇴직 후 일정 기간 동안 교육훈련 과정을 통해 자영업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키는 프로그램(post-retirement training program)을 도입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물론 지금도 정부와 민간 영역에 창업과 관련된 프로그램은 차고 넘칠 만큼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들은 내용이나 효과는 논외로 하더라도, 대부분 '개별적 존재로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의 길'만 가르치고 있다. 10개가 생기고 8개가 없어지는 자영업 시장에서, 남은 2개의 주인이 되는 비법을 전수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인지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소기업 자영업자들에 대한 지원체계를 제대로 수립해야 한다. 예비 창업자들을 위한 준비 프로그램은 중앙이 아니라 지역(local)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맞다. 지역을 잘 알고 있는 선배들이 스승이 되어, 후배들이 만든 사업 아이템을 살펴봐 주고, 혼자보다는 공동으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며, 기업가들이 지역에 잘 안착될 수 있도록 도움으로써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고 지역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소기업 자영업을 위한 지원체계를 만들어갈 때, 꼭 필요한 존재가 바로 현장 지원기관이다. 뉴욕 투어를 통해 확인되었듯이, 지원 생태계의 핵심은 지역에 뿌리를 두고 지역 특성에 맞추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현장기관들이었다. 지역마다 산업 기반이 다르고 자영업 환경이 다르므로 지역 현실에 맞는 지원 방법을 수행하려면 지역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 기관들이 존재해야 하며, 이들이 정부와 당사자들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어야 생태계는 활성화될 수 있다.
지역 내에서 소기업 소상공인을 지원한다는 것은 개별 기업들을 살리는 것(점)을 넘어 기업과 기업을 잇고(선), 지역 내에 존재하는 여러 이해관계자들 간에 협력과 연대를 이끌어내는(면) 작업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현장 지원기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네트워크의 중심(hub)이 되고 개인, 기업, 정부 등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참여하여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는 열린 플랫폼(platform)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긴 안목에서 이 생태계를 바꿀 수 있는 청사진이 필요하다.
바야흐로 상생과 협력의 시대다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고 패자는 모든 것을 잃는 시장질서에 대한 대안으로, 호혜와 연대에 기초한 사회적경제(social economy)가 주목받고 있다. 자영업 시장은 고밀도와 치열한 경쟁구조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누군가는 살고 누군가는 죽는(swim or sunk)' 기존 방식이 아닌 더불어 함께 공존하는(living together) 질서를 구축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곳보다 절실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공동시설 이용, 공동 운영시스템 개발 등 기업 간 협업(collaboration)을 통해 소자본의 한계를 극복하고, 소상공인들이 주주로 참여하는 협동조합(cooperative) 기업을 만들어 자조, 자립의 기반을 강화함으로써 사업 참여자들이 함께 성공 신화를 써갈 수 있도록, 범정부 차원의 지원정책이 따라주어야 한다. 이를 통해 혼자만 살겠다는 독생(獨生)보다 같이 사는 상생(相生)이 훨씬 지속가능한 방법임을 증명할 필요가 있다.
▲ 수제화 소상공인 협동조합 누리집 메인화면 ⓒ www.handmadeshoes.co.kr
경쟁(competition)이라는 말의 어원은 '공동의 목표를 함께 지향한다(cum petere)'는 뜻이라고 한다. 공동의 목표란 무엇인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은 바뀌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영업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다면, '진짜 중요한 경쟁은 가격 경쟁이 아니라 새 것을 위해 옛 것을 없애는 경쟁'이라고 말한 경제학자 슘페터(J. Schumpeter)의 교훈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낡은 건물의 보수공사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상상력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뉴욕시 소기업, 자영업자 지원기관을 지난 3월 18일부터 24일까지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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