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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만에 '통합조직'으로 맞선 서울지하철 노사, '강 대 강'

DTO·승진 등 도입 놓고 갈등... 노조 '사장 퇴진' 요구에 교통공사 "엄정 대응"

등록|2018.07.11 17:17 수정|2018.07.11 17:17

▲ 서울교통공사 김성진 노사협력처장이 11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룸에서 교통공사 노동조합의 집회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손병관


서울 지하철 운행을 통합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가 운전 자동화와 장기근속자 승진 등의 문제를 놓고 노사 갈등에 휘말렸다.

서울교통공사는 지난해 5월 31일 서울메트로(1∼4호선)와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가 통합해 생긴 서울시 산하 공기업이다. 양대 공사에 나뉘어져있던 노조는 작년 12월 통합 찬반 투표를 거쳐 올해 4월 전체 직원 2만여 명 중 조합원 12000여 명이 가입한 거대노조(서울교통공사노조, 1노조)로 출범했다.

노조는 지난달 11일부터 서울광장에서 김태호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한 달을 맞은 11일 집회에는 조합원 3000여 명이 모였다. 김 사장의 임기는 2020년 5월 말까지다.

노조의 핵심 요구 사항은 ▲ DTO(Driverless train operation)·스마트 스테이션(무인역사)의 추진 중단 ▲ 장기 근속자 특별승진 ▲ 입사 3년 미만 7급보의 7급 일괄 전환이다.

지난달 15일 서울지하철 8호선에서 시험 운행에 들어간 DTO에 대해 노조는 '무인운전', 공사는 '전자동운전'이라고 상반된 명칭을 쓰고 있다. 기관사가 손으로 조작하지 않고 열차를 운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무인운전'이 맞지만, 출입문 개폐 등 운행 관리를 맡는 기관사 1명이 탑승한다는 점에서는 '전자동운전'으로 볼 수 있다.

최정균 공사 안전관리본부장은 11일 오후 서울시청 브리핑에서 이렇게 말했다.

"지하철 5~8호선 시스템은 1994년 도입할 때부터 운전자가 (필요)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시민 안전을 위해 1인 운전으로 정리한 것이다. 종착역에서 회차할 때 전환에 미진함이 있었던 부분도 2014년 2월부터 2015년 3월까지 연구 개발(R&D)을 통해서 완성도를 높였다. 지금도 기관사는 시스템 확인 차원에서 탑승하는 것이다."

그는 그러면서 "이것(전자동운전)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전 세계적인 추세는 변하고 있지만,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해 기관사를 당장 내리게 할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노조는 "공사가 추진하는 무인운전ㆍ무인역사가 2016년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와 같은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며 "오히려 현행 5~8호선의 1인 승무를 1~4호선처럼 2인 승무로 확대해야 지하철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기태 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오마이뉴스> 기자와 만나 "김태호 공사 사장이 도시철도공사 사장 시절이었던 2014년에도 DTO를 추진했었다. 그러나 2016년 서울시가 지하철 5~8호선에 안 맞고, 과도한 예산에 비해 효용성이 낮다는 이유로 무산시킨 걸 다시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에 따르면, 서울시 교통정책과는 2016년 11월 2일 교통공사에 보낸 회신을 통해 "지하철 8호선의 DTO 구축이 경제적 실익이 없고(B/C 비용편익비율 = 0.07), 사고 등 이례적인 상황 발생시 신속한 조치가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어 DTO의 추진 중단을 권고했다.

DTO·특별승진 등으로 줄다리기... 노조 "당분간 서울광장 안 떠나"

DTO와 스마트스테이션의 도입 과정에 대해서도 노사의 말이 완전히 다르다.

공사는 "합의까지는 아니라도 노사 간에 충분히 협의된 사항이다. 2013년 3월부터 2년간 자체 시험 및 2014~2015년 타당성 및 경영환경 연구용역 실시를 추진한 사업으로, 노사 간에 충분히 공감이 이뤄져서 당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김성진 서울교통공사 노사협력처장)고 주장한다.

반면, 노조는 "2014~2015년 공사가 노조와 협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일방추진이 맞다"(정기태 교선실장)고 맞선다. 임현석 노조 역무본부장도 "공사가 스마트스테이션을 몰래 추진한다는 얘기를 들은 게 작년이다. 사측이 공식 석상에서 얘기를 꺼낸 적도 없다. 노조 간부들이 사석에서 슬쩍 물어보면 간부들은 '별거 아니다. 이게 되겠냐?'고 쉬쉬했다"고 반박했다.

DTO와 스마트스테이션이 궁극적인 무인화로 가는 단계에 불과하다는 게 노조의 인식인 셈이다.

'장기 근속자 특별승진'을 놓고도 노사 간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공사는 노조의 요구대로 장기 근속자들을 승진할 경우 5급 직원 4950명 중 3810명이 대상이 된다고 추산한다. 5급 직원 중 77%가 승진되는 것으로, 세대·조직 갈등이 첨예화되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보는 것이다.

노조의 서울광장 농성이 처음에는 장기근속자 승진 요구로부터 시작됐는데, 어느 순간 DTO가 더 큰 쟁점으로 부각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김성진 노사협력처장은 "장기근속자 승진은 노조 집행부의 선거 공약이었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공약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고 풀이했다.

노조는 "장기근속자 승진은 포괄적으로 승계해야 할 합의사항"이라는 입장이다.

정기태 교선실장은 "장기근속자 승진은 (통합노조가 출범하기 전인) 지난해 단체 교섭에서 서울메트로가 맺었던 단체협약 사항에 들어있다. 양대 공사의 노사가 맺었던 수많은 합의 사항들을 포괄 승계하기로 얘기가 된 것인데, 김태호 현 사장이 자기가 직접 한 게 아니니 효력이 없다고 우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의 또 다른 관계자도 "입사 20년이 넘도록 5급에 머무는 직원들이 너무 많다. 워낙 승진 적체가 심하니 단계적으로 몇 명씩 나눠서 하기로 한 건데, 동일직군 77%를 한꺼번에 승진시키려 한다는 식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노사의 대치는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지하철 노사가 '통합조직'으로 24년 만에 만났기 때문에, 서로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강 대 강' 대치 국면을 이어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많다.

공사 관계자는 "노조와의 대화는 지속적으로 하겠지만, 무리한 요구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고, 노조 측도 "당분간 서울광장을 떠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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