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상연
망각과 본심
만년필이 꽤 여러 자루가 있지만 어떤 만년필은 있는 줄도 모르다가 어느 날 서랍에서 발견하고는 "이런 만년필이 있었어?" 합니다.
만년필은 벼르고 별러 샀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동무와의 약속은 처음부터 지킬 마음이 없었던 인사치레로 했던 약속이었지요. 이게 나의 본심입니다.
본심이 이러니 만년필은 정이 안 갔고 서랍 속에서 뒹굴었습니다. 그리고 잊혀졌습니다. 친구와의 약속도 인사치레로 한 약속이었으니 지켜질 리가 없습니다. 바로 망각입니다.
그런데, 만나본 적도 없고 밥 한 끼 같이 먹어본 적이 없으며 가져본 적도 없는 그 무엇 때문에 몸살을 앓습니다. 돌아가신 지 수십 년 된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 같기도 하고, 또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닮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고백입니다만 그것은 바로 '문학'입니다. 그렇다고 그 문학을 위해 눈에 보이는 애를 써본 적은 없습니다. 바로 신춘문예라든가 그 어느 곳에도 내 글을 발표해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도 그런 일에는 별로 관심은 없습니다만 나름대로 노력은 합니다.
사람 만나기를 아낍니다. 혼자 있기를 좋아합니다. 이번 나흘 동안의 휴가 중 반나절은 사돈 병문안을 다녀왔고 목욕탕 두 번 다녀온 게 다입니다. 그리고 하루 5시간의 잠을 자며 책을 읽었고 글을 썼습니다.
오마이뉴스에 '딸에게 부치는 편지' 80여 편을 넘게 썼지만, 원고료가 50만 원 정도밖에 안 됩니다. 문학이 돈이 안 된다는 것도 누구보다 잘 압니다. 그러나 내 글이 활자화되고 남에게 읽힌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노자 도덕경을 공부하며 아내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단 한 사람의 청중인 아내를 앉혀놓고 3년여에 걸쳐 81장 끝까지 강의한 적이 있습니다. 끝까지 들어준 아내가 대단합니다.
문학을 좋아하는 만큼 문인들을 사랑합니다.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어느 시인과 말다툼을 하다 차단당했지만,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의 시집을 동무들에게 선물해가며 그의 시가 많이 읽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내가 그 시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문학을 아끼고 시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딸들은 아버지를 사랑했거나 미워했거나 상관없이 아버지를 닮은 남자를 만났을 때 편안하다고 합니다. 나는 문학이 뭔지 모릅니다. 그런데 문학은 딸들이 아버지 닮은 남자를 만나 편안함을 느끼듯 그런 식으로 나에게 다가옵니다.
문학에 대한
쓸데없는 나의 호기심이 사라지는 순간
나 역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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