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65년 전 그날의 협정, '휴전'인가? '정전'인가?

미묘하게 뜻이 차이나는 ‘휴전’과 ‘정전'... 이제는 이를 넘어 종전으로

등록|2018.07.25 11:21 수정|2018.07.25 11:21
65년 전인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의 포성이 멎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간에 전투 중지를 합의함에 따라 미국의 유엔군사령관 마크 클라크(Mark Wayne Clark)와 중국의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彭德懷), 북한의 북한군최고사령관 김일성이 '정전협정'에 서명했다. 한국은 협정 조인의 당사자가 아니었다.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의 양측 대표가 '정전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전투가 중지됐지만 "적대행위의 완전정지"는 정전협정이 조인된 지 12시간 후부터 효력을 발생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이를 규정한 제12항을 제외한 정전협정의 모든 규정은 1953년 7월 27일 22:00시부터 효력이 발생했다.

정전협정서가 공식적으로 교환됐지만, 그날 밤 10시가 되기 전까지 자유 및 공산 진영 간에는 휴전이 발효되기 전의 이 시간을 이용해 격렬한 포격전이 벌어졌다. 정말 거짓말처럼 그날 밤 10시가 되자 포성이 멎고 전선에 정적이 찾아들었다. 이로써 3년 1개월 총 1,129일 간의 피비린내 하는 동족상잔이 막을 내리고 긴 휴지기에 들어가게 됐다. 양측의 갱도, 진지, 참호 등에서 병사들이 나와 '휴전'을 실감하기 시작한 것은 다음 날 새벽부터였다.

65년이라는 긴 세월이 흘러 그날이 다시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작은 의문이 있다. 학계나 언론에서는 전쟁의 종결이 아니어서 종전이라고는 하지 않지만, 그 대신 일시적인 긴 중단을 의미하는 용어 중에는 "정전"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고, "휴전"이라고도 하는 경우도 있다. 둘 중 어느 용어가 합당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공식용어는 어느 것일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전'과 '휴전'이 모두 전쟁과 전투행위의 일시적인 중지를 뜻하지만 양자를 전투중지의 동기나 목적이 다른 점에 주목해 엄밀하게는 서로 구분하기도 한다. 즉 정전은 군사적인 목적을 가지고 전쟁 혹은 전투행위를 중지하는 것이고, 휴전은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 쌍방 간의 협정으로 전쟁 혹은 전투행위를 중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사실 '정전'이나 '휴전'은 우리말에선 큰 의미 차이가 없다. 두 단어는 공히 한자어로서 각기 停戰, 休戰이라고 쓴다. 停과 休는 실제 의미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둘 다 공통적으로 '멈춘다', '중단한다'는 의미가 들어있기 때문에 의미가 다른 게 아니다. 하지만 영어에서는 정전과 휴전의 의미 차이가 분명하다. 한국전쟁 당시 조인된 협정의 공식 명칭인 'Armistice Agreement'의 정확한 의미를 알면 정전과 휴전의 의미는 좀 더 세밀하게 갈라진다.

'정전'이란 라틴어로 무기를 뜻하는 'arma'와 간격을 뜻하는 'insterstitum'의 합성어인 armistice인데, '무력적 행위의 일시적 중단'을 의미한다. 휴전협정은 전쟁원인의 해소에 합의하지 않은 채 전쟁을 중단한다는 점에서 평화조약과 구별되는 개념이다. 휴전에는 일반적 휴전(general armistice), 부분적 휴전(partial armistice), 停戰(suspension of arms) 등 세 종류가 있다.

일반적 휴전이란 모든 전투지역에서 전면적으로 전투행위를 중지하는 것을 가리킨다. 부분적 휴전이란 단지 어떤 특정지역에서만 전투를 중지하는 것이다. '정전'이란 단기간 동안 일시적이거나 부분적으로 전투행위를 정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후부터 국제법상 휴전은 전투행위의 일시적인 중단뿐만 아니라 전쟁의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강구나 전쟁의 궁극적 포기까지를 내포하는 것으로 의미가 넓어졌다.

한국전쟁의 경우 미군은 전투 중지를 '휴전'(cease-fire)이라고 불렀고, 휴전협정의 문서에는 armistice, 즉 정전으로 표기돼 있다. 미 국방부는 '교전중지'(truce)로 기록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공산진영 측에서는 '정전'으로 부르고 있다. 매년 7월 27일을 "전승기념일"로 삼는 북한에선 중요한 축일이다. 김정일이 살아 있었을 때는 곳곳에서 기념행사를 열고 이틀 내내 성대한 파티를 열기도 했다.

필자는 과거 한국전쟁을 연구한 전문 저서에선 당시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휴전회담에서 전쟁을 중지하고자 한 의도로서 군사적인 목적과 정치적인 목적을 다 같이 고려된 바 있었다는 점, 그리고 미국 측이 '휴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음을 감안해 '휴전'이라는 용어를 취한 바 있다. 하지만 정식 명칭이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휴전협정의 문서에 명기돼 있는 '정전'(armistice)이어야 할 것이다. 지금은 남북 간에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두 적대행위와 대결이 종식돼야 한다. 휴전이든, 정전이든 이 용어들이 모두 종전이라는 말로 대체되는 때는 언제쯤일까? 이 땅에 하루 빨리 종전선언이 이뤄지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서상문씨는 환동해미래연구원장, 경희대학교 중국학연구소 연구원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