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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고락을 함께한 개를 먹는다고? 복날마다 숨어다녔던 이유

10여년 전엔 '개고기 안 먹는다'하면 핀잔 들어... 요즘 분위기 반갑다

등록|2018.07.27 11:13 수정|2018.07.27 11:13

▲ 최근 한 동물 보호단체가 '개식용 법제화 문제'로 kbs 앞에서 항의 시의를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 연미령


27일은 복날이다. 요즘은 복날 삼계탕이 정석처럼 자리 잡고 있지만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복날에 보신탕, 즉 개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많았다. 내 주변에 유난히 개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관점에 볼 때 나는 '불행하게도' 개고기를 전혀 먹지 못한다.

개고기 특유의 냄새가 싫기 때문이다. 개고기 냄새는 내게 트라우마 처럼 남아 있다. 그것은 적어도 내게는 개고기 식용을 음식 문화로 인정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다. 나는 어릴 때 홍역을 앓았다.

홍역 예방 주사를 맞고 난 뒤 곧바로 홍역에 걸린 것이다. 일종의 의료사고인 셈이다. 지금 같으면 의료사고로 보상이라도 받았겠지만 그때는 그런 것조차도 없었다. 지금도 그 홍역을 앓았던 때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때는 너무 아픈 나머지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 하지만 그 '아픈 기억' 속에서도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뇌리를 스쳐 지나간다.

태어난 지 두 달 남짓의 강아지는 내가 홍역을 이기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강아지와 함께 있으면 덜 아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할아버지를 졸라 강아지를 방에 들여놓고 몇날 며칠을 함께 지내며 병을 이겨냈다.

지금은 강아지를 방에서 키우는 일이 오히려 더 흔한 세상이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만 해도 시골에서 강아지를 방안으로 들여 놓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강아지는 그저 복날을 위해 밖에 놓고 키우는 짐승에 불과했다. 그도 아니면 낯선 사람이 오면 짖는 용도로 길러졌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강아지는 '생사고락'을 함께한 친구였다.

강아지에 대한 이런 기억 때문일까. 내 눈에 비친 1980년대 시골 마을의 복날 풍경은 참으로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 풍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해야 해야 할지 망설여질 정도이니까.

당시 시골에서는 복날이 되면 그동안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들이 하나둘 나무에 목이 멘 상태로 걸렸다. 그렇게 혀를 내밀고 죽어가는 개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개 식용에 대한 반감이 일어났다. 여기에 더해 화기로 의 털을 태워 그을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그때 나는 냄새가 내게는 참 고통스러웠다. 역겨웠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모르겠다. 보신탕만 봐도 그때의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니 개고기는 당연히 먹을 수가 없었다.

운이 나쁜 것인지 내 친구들이나 직장 선배들은 보신탕을 좋아하는 경우가 많았다. 불과 10여년 전까지도 복날이면 식사 약속을 피해 숨어 다녔다. 일부러 휴대폰을 꺼놓고 잠시 잠수를 탄 적도 있다.

개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말하고 나면 항상 그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다. 누군가는 "우리 고유의 식문화에 대해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이 아닌가, 생각이 서구화 된 것이냐"는 식의 핀잔을 듣기도 했다.

앞서 밝혔지만 나는 시골 '깡촌'에서 태어났다. 해외 유학 또한 다녀온 바가 없다. 생각이 서구화될 만한 요인이 전혀 없던 어린 시절부터 개고기를 먹지 못한 것이다. 내 친구들 조차 개고기를 먹지 않는 나의 취향을 이해하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참 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복날에 개고기 대신 삼계탕을 더 찾기 시작했고, 개고기를 먹자고 졸라대던 친구들도 이제는 지쳤는지 더 이상 그런 말을 꺼내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개고기 식용 문제를 놓고 여전히 시끄럽다. 개고기 식용을 법으로 금지하자는 국민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개고기를 식용하는 사람들과 비식용자의 처지가 역전되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10여 년 전 개고기 식용자가 다수였던 지인들 틈에서 나는 늘 소수자였다. 하지만 요즘은 개 식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고 개 식용자들이 오히려 소수자가 되어가고 있다.

솔직히 내게는 개 식용을 반대하는 요즘의 분위기가 반갑다. 하지만 역지사지해 보면, 오랜 세월 동안 아무런 거리낌 없이 개를 식용 해온 사람들에게는 이 같은 분위기가 상당히 불편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 식용자들이 알아 줬으면 하는 게 몇 가지 있다. 나처럼 개 식용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오랜 시간을 참고 견디며 살아왔다는 점을 말이다. 개와의 특별한 기억 때문에 개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다. 개 식용에 대한 반감은 각자의 경험에서 나오는 것일 뿐 결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이 아니란 점도 알아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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