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타고 대박 난 식당, 왜 장사 안 하냐고요
[섬에서 섬으로, 제주도민 일본여행기②] 유명 맛집 대신, 나만의 심야식당을 갖는다는 일
[이전 기사 : 제주도민은 어디로 해외여행을 떠날까]
속도와 방향
오사카에서의 1박 후 교토로 향했다. 짧았던 일본 여행의 백그라운드는 전철 그리고 골목길로 기억된다. 교토의 전철은 꼭 2000년대 서울 지하철 느낌이었다. 4호선까지밖에 없던 서울 지하철은 쉴 새 없이 공사를 계속 해 지금은 노선이 몇 개나 되는지도 셀 수 없게 됐다.
흔히 한국 사회가 일본 사회를 뒤따라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발 주자의 조바심일까, 한국 사회의 변화는 빠르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비교적 일찍 완성된 사회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에도 한 때 있었지만 진작 사라진 전철 회수권이 아직 있는 것은 물론이고 회수권 표를 담는 종이봉투까지 비치돼 있었다. 티켓 발매기도 아날로그적. 동전 사용도 많다. 워낙 노령 사회라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큰 것일까.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30년만 돼도 허물고 다시 짓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축적된 건물들이 많다. 매력적인 노포와 골목길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그런 것들을 보러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일본, 그 중에서도 교토를 찾는다.
한국은 어떨까. 몇 년 전 종로 피맛골이 철거되고 어설픈 아케이드 상가가 들어섰다.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기보다는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걸 좋아하는 게 한국 사람들이다. 새 것, 편리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최첨단 하이테크에 발빠르다.
속도의 차이. 하지만 속도만의 차이인 걸까.
나만의 심야식당을 갖는 일
한국과 일본, 혹은 제주와 교토의 속도 차이는 골목길 작은 가게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기온 거리와 가모 강, 카페와 라멘집도 좋았지만 교토를 떠올리면 역시 우리의 심야식당이 생각난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조용한 주택가의 작은 가게였다. 간판도 없이 작은 문패만 하나 있어, 일본어를 못 읽는 우리는 여기가 영업집이 맞나 싶어 골목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바 테이블 안에서 오너셰프가 직접 요리한 음식과 술을 내어 주고, 메뉴판은 멋진 붓글씨로 매일 새로 쓴다. 음악도 따로 틀지 않고 손님들과 주인 간에 조용조용한 대화만 오간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일본어를 못 하는 우리에게도 친절하게 대해 준다.
한국 여행을 다섯 번이나 갔는데 해무르파전이 무척 맛있었다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오사카 출신이라는 옆자리의 단골 손님들과도 호의 어린 대화를 나눴다. 메뉴판을 읽을 줄 모르니 '셰프 스페셜'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웃으며 교토의 전통 사찰음식이라는 당고 꼬치를 만들어주었다.
영화 <심야식당>을 두 번이나 보면서 로망을 품었다. 영화 속 심야식당 같은 장소를 실제로 가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가게, 정이 넘치는 사람들, 군더더기 없는 대화. 막상 가보니 일본에는 동네 어귀 골목에마다 심야식당이 있었다. 심야식당은 어떤 특정한 가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기만의 동네 단골 가게, 심야식당을 가지고 있는 거였다.
일본만큼이나 비싸진 임대료 탓일까. 요즘은 한국에도 작은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진짜 '심야식당'의 본질은 놓친 채 예쁜 겉모습만 따라한 가게들도 없잖아 있는 듯싶다. 주인과 손님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끼 미식을 즐기는 정다움이야말로 심야식당의 본질인데.
교토의 작은 가게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장의 태도였다. 그는 단시일 안에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일에는 관심 없이, 단골을 위주로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는 일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듯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지만 요란한 홍보는 일절 하지 않는다. 수년째 장사를 하면서 카드 결제 시스템도 갖추지 않고 있지만 손님들은 불만이 없는 모양이다. 길거리 푸드트럭도 신용카드 단말기를 갖추고 있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임경선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어보니 이런 단골 위주의 장사 관습은 일본인 중에서도 특히 교토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았다. 손님도 가게를 고르지만 주인도 손님을 선택한다.
뜨내기보다는 단골 손님이 꾸준히 찾을 수 있는 운영 방식을 찾아낸다. 교토 사람들은 장사를 단순히 돈을 버는 일로, 손님을 왕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장사란 주인과 손님의 예절바른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제주에 일주일에 나흘만 문을 여는 작은 서양식당이 있었다. 런치와 디너 각각 네 팀씩만 예약제로 운영하고 전화번호도 따로 없이 카카오톡으로만 문의를 받았는데, 유명 방송에 살짝 등장한 이후로 입소문을 타고 예약문의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
일반적인 장사꾼이라면 환영할 상황이지만 소박한 삶을 꿈꾸며 제주로 내려온 주인 부부는 감당되지 않는 상황에 무기한 장기 휴업에 돌입했다.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우려가 날로 높아지는 제주에서 이런 가게들을 심심찮게 본다. 결국 우리는 멋진 레스토랑 하나를 잃었다.
특정한 가게가 뜬다고 해서 마구 몰려가 유행시킨 뒤 맛이 변했다느니 예전 같지 않다느니 툴툴대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에 있는 가깝고 믿을 수 있는 단골집을 꾸준히 이용하는 일본인의 태도가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는 성실한 주인장들을 만들어온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굴뚝 없는 산업'이 "관광객 오지 마세요"로 변하기까지
최근 서울 북촌에서는 주민들이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제기하는 시위를 하고 있단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며 각광받을 때는 언제고, 관광이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이유는 뭘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교토 역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심각한 도시 중 하나다.
우리는 사람에 치이는 게 싫어서 성이니 절이니 하는 유명한 관광지는 하나도 가지 않았다. 유명 맛집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진짜 여행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나만의 심야식당을 찾아내고, 조용한 단골이 되는 일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갔던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하나도 적어놓지 않지만, 대형매체에 소개된 유명한 가게로 우르르 몰려가기보다는, 각자의 심야식당을 찾아내는 여행을 했으면 한다.
속도와 방향
오사카에서의 1박 후 교토로 향했다. 짧았던 일본 여행의 백그라운드는 전철 그리고 골목길로 기억된다. 교토의 전철은 꼭 2000년대 서울 지하철 느낌이었다. 4호선까지밖에 없던 서울 지하철은 쉴 새 없이 공사를 계속 해 지금은 노선이 몇 개나 되는지도 셀 수 없게 됐다.
흔히 한국 사회가 일본 사회를 뒤따라가고 있다고 말하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발 주자의 조바심일까, 한국 사회의 변화는 빠르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비교적 일찍 완성된 사회 시스템을 크게 바꾸지 않고 유지하고 있는 느낌이다.
한국에도 한 때 있었지만 진작 사라진 전철 회수권이 아직 있는 것은 물론이고 회수권 표를 담는 종이봉투까지 비치돼 있었다. 티켓 발매기도 아날로그적. 동전 사용도 많다. 워낙 노령 사회라 변화에 대한 저항감이 큰 것일까.
▲ 시내와 공항을 잇는 특급 열차인 하루카 좌석에도 표를 꽂아놓는 귀여운 주머니가 있었다. ⓒ 박솔희
뭐가 좋고 뭐가 나쁘다는 게 아니다. 30년만 돼도 허물고 다시 짓는 한국과 달리 일본에는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축적된 건물들이 많다. 매력적인 노포와 골목길은 그 자체로 역사가 된다. 그런 것들을 보러 전 세계에서 수많은 이들이 일본, 그 중에서도 교토를 찾는다.
한국은 어떨까. 몇 년 전 종로 피맛골이 철거되고 어설픈 아케이드 상가가 들어섰다. 낡은 아파트를 수리하기보다는 때려 부수고 새로 짓는 걸 좋아하는 게 한국 사람들이다. 새 것, 편리한 것을 좋아하는 한국인들은 최첨단 하이테크에 발빠르다.
속도의 차이. 하지만 속도만의 차이인 걸까.
나만의 심야식당을 갖는 일
▲ 우리의 심야식당 ⓒ 박솔희
한국과 일본, 혹은 제주와 교토의 속도 차이는 골목길 작은 가게에서도 뚜렷이 드러났다. 기온 거리와 가모 강, 카페와 라멘집도 좋았지만 교토를 떠올리면 역시 우리의 심야식당이 생각난다. 숙소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있는 조용한 주택가의 작은 가게였다. 간판도 없이 작은 문패만 하나 있어, 일본어를 못 읽는 우리는 여기가 영업집이 맞나 싶어 골목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바 테이블 안에서 오너셰프가 직접 요리한 음식과 술을 내어 주고, 메뉴판은 멋진 붓글씨로 매일 새로 쓴다. 음악도 따로 틀지 않고 손님들과 주인 간에 조용조용한 대화만 오간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일본어를 못 하는 우리에게도 친절하게 대해 준다.
한국 여행을 다섯 번이나 갔는데 해무르파전이 무척 맛있었다며 너털웃음을 웃는다. 오사카 출신이라는 옆자리의 단골 손님들과도 호의 어린 대화를 나눴다. 메뉴판을 읽을 줄 모르니 '셰프 스페셜'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더니 웃으며 교토의 전통 사찰음식이라는 당고 꼬치를 만들어주었다.
▲ 교토의 전통 사찰 음식이라는 당고 꼬치 요리 ⓒ 박솔희
영화 <심야식당>을 두 번이나 보면서 로망을 품었다. 영화 속 심야식당 같은 장소를 실제로 가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작은 가게, 정이 넘치는 사람들, 군더더기 없는 대화. 막상 가보니 일본에는 동네 어귀 골목에마다 심야식당이 있었다. 심야식당은 어떤 특정한 가게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저마다 자기만의 동네 단골 가게, 심야식당을 가지고 있는 거였다.
일본만큼이나 비싸진 임대료 탓일까. 요즘은 한국에도 작은 가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진짜 '심야식당'의 본질은 놓친 채 예쁜 겉모습만 따라한 가게들도 없잖아 있는 듯싶다. 주인과 손님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한 끼 미식을 즐기는 정다움이야말로 심야식당의 본질인데.
교토의 작은 가게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장의 태도였다. 그는 단시일 안에 큰돈을 벌거나 유명해지는 일에는 관심 없이, 단골을 위주로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는 일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는 듯했다.
찾아오는 손님들에게는 최선을 다하지만 요란한 홍보는 일절 하지 않는다. 수년째 장사를 하면서 카드 결제 시스템도 갖추지 않고 있지만 손님들은 불만이 없는 모양이다. 길거리 푸드트럭도 신용카드 단말기를 갖추고 있는 한국과는 딴판이다.
▲ 매일 새로 쓰는 메뉴판과 정갈한 그릇들을 갖춘 우리의 교토 심야식당 ⓒ 박솔희
임경선의 <교토에 다녀왔습니다>를 읽어보니 이런 단골 위주의 장사 관습은 일본인 중에서도 특히 교토 사람들의 특징인 것 같았다. 손님도 가게를 고르지만 주인도 손님을 선택한다.
뜨내기보다는 단골 손님이 꾸준히 찾을 수 있는 운영 방식을 찾아낸다. 교토 사람들은 장사를 단순히 돈을 버는 일로, 손님을 왕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장사란 주인과 손님의 예절바른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제주에 일주일에 나흘만 문을 여는 작은 서양식당이 있었다. 런치와 디너 각각 네 팀씩만 예약제로 운영하고 전화번호도 따로 없이 카카오톡으로만 문의를 받았는데, 유명 방송에 살짝 등장한 이후로 입소문을 타고 예약문의가 물밀 듯이 들어왔다.
일반적인 장사꾼이라면 환영할 상황이지만 소박한 삶을 꿈꾸며 제주로 내려온 주인 부부는 감당되지 않는 상황에 무기한 장기 휴업에 돌입했다. 오버투어리즘에 대한 우려가 날로 높아지는 제주에서 이런 가게들을 심심찮게 본다. 결국 우리는 멋진 레스토랑 하나를 잃었다.
특정한 가게가 뜬다고 해서 마구 몰려가 유행시킨 뒤 맛이 변했다느니 예전 같지 않다느니 툴툴대는 게 아니라, 우리 동네에 있는 가깝고 믿을 수 있는 단골집을 꾸준히 이용하는 일본인의 태도가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하는 성실한 주인장들을 만들어온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굴뚝 없는 산업'이 "관광객 오지 마세요"로 변하기까지
최근 서울 북촌에서는 주민들이 오버투어리즘 문제를 제기하는 시위를 하고 있단다. 굴뚝 없는 산업이라며 각광받을 때는 언제고, 관광이 천덕꾸러기가 돼버린 이유는 뭘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교토 역시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심각한 도시 중 하나다.
우리는 사람에 치이는 게 싫어서 성이니 절이니 하는 유명한 관광지는 하나도 가지 않았다. 유명 맛집도 굳이 찾아가지 않았다. 진짜 여행은 내가 사는 동네에서 나만의 심야식당을 찾아내고, 조용한 단골이 되는 일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우리가 갔던 장소들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하나도 적어놓지 않지만, 대형매체에 소개된 유명한 가게로 우르르 몰려가기보다는, 각자의 심야식당을 찾아내는 여행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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