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령 문건엔 왜 '결재선'이 없을까
김관진·박흥렬 등 윗선 추적하는 실마리... 기무사의 '거짓 해명'도 증명
▲ 국군기무사령부가 만든 이른바 계엄령 문건 두 개의 표지. 두 문건에는 모두 결재선이 없다. ⓒ 국회 국방위원회
국군기무사령부(아래 기무사)가 지난해 촛불 정국에서 만든 '계엄령 문건'에는 결재선이 없다. 때문에 쿠데타 논란의 핵심인 문서 작성 지시자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결재선이 없기 때문에 윗선은 오리무중이지만, 반대로 결재선이 없기 때문에 윗선을 추적할 수 있는 실마리는 있다. 그래서 '왜 기무사는 결재선을 만들지 않았을까'라는 질문은 곧장 '이 문건은 정상 절차를 밟지 않았다'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애초 이상한 문건... 기무사도 불법 알았던 것"
▲ 문재인 대통령이 기무사가 작성한 ‘계엄령 검토 문건’ 관련 자료를 즉각 체출 할 것을 지시한 16일 오후 경기도 과천 기무사 정문 앞 모습. ⓒ 이희훈
상부의 지시 또는 소통이 있었다면, 왜 문건에는 결재선이 없었을까. 몇 가지 추론이 가능하다. 먼저 애초에 결재를 염두하고 만든 문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무사가 이 문건을 만들 때부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다는 추측이다. 또 기무사가 지시를 받거나 소통하고 있던 윗선이 결재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았다는 의심도 가능하다.
우선 기무사가 이 문건을 만들 때부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면, 현재 기무사와 야당 일각에서 내놓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검토 문건"이란 주장은 완전히 뒤집히게 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문건 자체가 이상하다, 특히 67쪽짜리 문건은 당초 비밀문서로 지정돼 있었는데 결재선도 없는 등 비밀문서로서의 조건을 안 갖추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군사반란을 꾀하기 위해서 형식에 맞지 않는 문서를 만든 거라고 본다"라며 "기무사가 불법 행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거다"라고 강조했다.
이 문제는 국회 국방위에서도 거론된 바 있다.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상적인 결재를 거치지 않고 이런 보고서가 작성됐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이고, 이는 이번 사건에서 문건의 성격과 목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송영무 국방장관을 향해 "이 문서가 과연 비밀문서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해 설명해달라"라고 질문했고, 박경수 국방부 법무관리관은 "외관상 비밀문서로 보이지만 보안심사위원회 심의 결과 적법한 비밀 생산절차에 따르지 않았음이 확인됐다"라고 대신 답했다.
김관진·박흥렬, 국방장관·기무사령관 보고 받는 핵심 위치
뿐만 아니라 결재선이 없다는 것은 상부 지시자의 신분을 추측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이 사건의 머리가 더 윗선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그 머리를 잡을 수 있는 몸통을 결재선 없는 문건을 통해 추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육군 법무관 출신의 김정민 변호사는 "결재선을 왜 안 만들었을까, 적법한 결재권자가 당시엔 없었다는 것"이라며 "유일한 적법 결재권자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인데, 기무사가 당시 가장 신경을 쏟았던 게 보안이므로 (비군인 출신의) 황 대행에겐 기무사가 직접 보고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문건을 만들기 전부터 누군가에게 관련 내용을 설명하고 구두 지시를 받은 것"이라며 "결재권을 갖고 있지 않으면서 그러한 지시를 내릴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당시 청와대에 있던 김관진 안보실장과 박흥렬 경호실장 정도"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육사 28기 동기로, 당시 국방장관이나 기무사령관에게 보고받을 수 있는 청와대 핵심 위치에 있었다. 그들이 직무 정지 상태의 박 전 대통령이나 대신 직무를 수행 중이던 황 대행과 소통했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기무사와 직접 소통했을 가능성은 크다는 게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김·박 실장은 한민구 전 국방장관과 함께 고발을 당한 상황이다. 군인권센터와 참여연대 등 5개 시민단체는 지난달 23일 세 사람을 내란예비음모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최근 꾸려진 민군 합동 특별수사단은 조만간 조현천 기무사령관과 한 전 장관을 소환할 계획인데, 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사가 김·박 실장을 비롯한 윗선 수사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제3의 문건은 없을까
▲ 법정 향하는 김관진 전 국방장관이명박 정권 시절 군 사이버사령부의 여론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1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기 위해 들어서고 있다. 이날 김 전 장관은 "사이버사령부의 활동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보고 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한 채 법정으로 향했다. ⓒ 유성호
더 나아가 제 3의 문건을 향한 추적도 필요하다.
김 변호사는 "현재 드러난 문건은 2월 중순에 만들어지기 시작했는데, 이전까지 기무사의 최대 관심사는 헌재의 탄핵심판 선고였다"라며 "현재 드러난 계엄령 문건이 왜 만들어졌겠나, 그 전에 동향보고를 하고 허락을 받지 않았을까, 그때 오갔을 문건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기무사는 (탄핵심판이) 헌재에서 4:4 혹은 5:3으로 기각된다고 봤다"라며 "이것이 윗선에 보고됐고, '오케이'가 떨어지니까 2월 중순부터 바쁘게 (현재 드러난) 게엄령 문건을 만든 거다"라고 덧붙였다.
임 소장은 "검거 예비 명단이 적힌 문건이 더 있을 수 있다"라며 "(현재 드러난) 문건을 보면 '국회의원 대상 현행법 사법처리로 (계엄령 해제를 위한) 의결 정족수 미달 유도'라는 내용이 담겨 있는데, 계획되지 않는 현실을 불안해하는 군의 특성상 그 사법처리 대상자 명단이 담긴 문건도 만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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