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6월항쟁 무력진압하려 했다
MBC 'PD수첩', 1987년 육본이 작성한 '작전명령 제87-4호' 공개
▲ "박근혜 탄핵심판 사태, 계엄령 선포하라"지난 2017년 2월 11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열린 '제12차 박근혜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 총궐기 대회'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박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비상시국이라며 계엄령 선포를 주장하고 있다. ⓒ 유성호
지난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육군본부가 계엄령을 선포하고 민주화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하려 했다는 물증이 최초로 확인됐다.
14일 방송된 MBC <PD수첩>은 '군부 쿠데타 1부'를 다루면서,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았던 계엄작전 명령 문건인 '작전명령 제87-4호'를 공개했다.
계엄 작전 명령은 일반적인 문서수발계통을 거치지 않고 당시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계엄군으로 편성되는 부대지휘관들을 불러서 직접 하달했다고 민 전 사령관은 주장했다.
1987년 6월 19일 육군본부에서 작성한 문건은 계엄작전명령 5장, 출동부대 소요진압 작전간 행동지침 9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87. 6. . 시부로 소요진압작전을 실시한다"고 되어 있는 문건에는 작전 실행 날짜는 적시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민 전 사령관은 "1987년 6월... 날짜는 정하지 않았어. 왜? 시작하면 그때 하는 거야. (미리 육군본부에서) 이걸 내려주고, 이걸 가지고 있다가 '명령 몇 호, 시행'하면 그때 날짜가 정해지는 것이다. 명령을 미리 내려놓고 '명령 몇 호, 오후 2시 30분부로 시행' 그러면 그때 이걸 따라서 부대가 움직이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문건에는 계엄령 선포의 근거와 상황란도 공란으로 비어 있다. 장영진 전 국방부 고등검찰부장은 "사실상 상황 자체가 계엄을 내릴, 계엄을 시행할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빈칸으로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면서 "관련 근거를 쓰지 않은 것은 이 문건 자체가 정당한 명령으로 보기 힘들기 때문에 당시에는 비워놓지 않았겠나"라고 분석했다.
계엄군 편성과 임무를 적시한 문건에 따르면, 일단 계엄령이 선포되면 서울에는 20사단과 30사단을 비롯해 3개(1·5·9) 특전여단과 3개(701·705·708) 특공연대가 수도방위사령부에 배속되도록 조치했다.
부산(26사단, 해병대 2개 연대, 3 특전여단), 대전(9사단), 광주(7특전여단, 11특전여단), 마산(706특공연대) 등에 투입될 계엄군도 미리 편성되어 있었다. 심지어 제1항공여단과 화학부대까지 계엄군에 포함했다.
또 계엄부대 장병들은 실탄 75발(대침투 작전 휴대 탄약 기준 적용)과 비상식량 3일분을 휴대한 채 경계태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당시 육군본부는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과 시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발포계획까지 세워놓았던 사실도 드러났다. 문건에는 "가스탄 발사기 등 폭도의 전투의지를 약화시킨 후 진압봉 사용", "발포 명령은 선 육본 건의 후, 승인하 조치", "초기에 강력하고 완벽한 작전 실시" 등의 표현이 적시되어 있었다.
시민을 상대로 강력한 공격부대를 투입한다는 점에서 1987년 육군본부가 만든 계엄작전 문건과 지난해 3월 촛불정국에서 기무사가 작성한 문건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장영진 전 국방부 고등검찰부장은 "시위대 시위가 국가 교란 상태나 내전상태로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엄으로 가려고 했다는 것 자체가 상황적 요소로 비슷하고, 기본적으로 부대 배치라든가 전반적인 작전 개념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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