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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 520만 시대에 이런 대가족이라니

극강의 캐릭터 모인 '사리현동 신대가족 이야기'

등록|2018.08.20 21:05 수정|2018.08.20 21:07
"삼촌, 어디에요?"

다급한 소리다. 매장으로 급히 찾아온 지인 아들이 내민 것은 책 한 권. <사리현동 신新대가족 이야기>. 가만히 보니 저자들 낯이 익다. 맞다, 몇 년 전에 멕시코를 차례로 다녀간 지인들 가족 전체가 글을 써서 책으로 엮어서 사인까지 해서 보냈다. 반가운 마음에 자리에 앉아 거침없이 책장을 넘겼다.

▲ <사리현동 신新대가족 이야기> ⓒ 김유보


<사리현동 신新대가족 이야기>는 현대에는 보기 힘든 대가족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고 서슬 퍼런 가문에 시집 장가와서 가문을 지키며 겪는 진부한 이야기는 전혀 아니다. 맞벌이 부부의 육아와 서울의 집값 등 현대인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모인 유쾌한 가족 이야기이다.

서열 1위 할머니부터 서열 6위 아들까지 모두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배우자, 부모님, 시부모님, 장인장모님, 아이들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적고 있다. 이들 모두 몇 년 전에 필자가 거주하는 멕시코에 한달 정도 다녀갔고 그 기간 동안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

사리현동으로 이사 가기 전 거주하던 고양시 관상동에 초대받았고, 가져간 테킬라를 마시고도 모자라 집안 모든 술을 말끔히 흡수해 버린 가든 파티가 기억에 남는다. 그 때도 서열 6위는 아르헨티나 한글학교 국어교사로 파견되어서 내일 떠날 짐 정리하랴 서열 5위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를 보러 산후 조리원으로 가랴 정신이 없었고 서열 4위 사위는 필자와 같이 정원에서 테킬라를 원샷하며 기타를 치며 즐기던 베짱이였다.

서열 6위 아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결혼 6년차. 만 5주년을 앞두고 나는 문득 우리의 삶을 정리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위의 말처럼 책을 쓰도록 주도한 이는 서열 6위 아들이다. 초등학교 선생인 아들의 캐릭터는 묵묵함이다. 책 곳곳에서 가족애를 진하게 그리워하고 좋아하며 주도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아내와의 만남부터 결혼 그리고 아르헨티나 국어교사 시절을 소소하고 담담하게 서술한다.

서열 5위 며느리
6위 아내인 서열 5위는 조금은 짠한 캐릭터이다. 서열 6위의 아내로서 시댁에서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현실적인 이유로 시댁 식구들과 같이 살게 되었고, 허물없는 가족으로 동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먼저 아르헨티나로 간 남편에 대한 원망과 현실 탈피의 욕구는 "한 번은 비자 연장 겸 우루과이에 가서 혼자 스테이크를 먹고 있다는데 지구를 뚫고 가서 고기 한 점 얻어먹고 싶은 심정이었다"라는 문구에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물론 서열 1위의 말처럼 뱀 허물을 벗듯 탈피한 자국을 침대에 매일 남기는 대단한 능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서열 4위 사위
흥미롭다. 멕시코에서 여러 번 술도 마셨지만 캐릭터가 이 정도 인줄 몰랐다.

"지저분했다. 원래 그냥 한국에서 지낼 때도 지저분했는데, 더 지저분해져서 나타났다. 아이들도 지저분해져서 나타났다. 그렇지만 장모님께서는 너무 반갑게 맞이했다.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하고, 그리움은 더러움보다 큰 법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2년여 동안 나름 고생이라면 고생을 하고 온 처남 내외와 아이들을 보고 가감없이 기술했다. 서열 3위 딸이 서술한 것처럼 본인이 관련된 일이 아니면 철저하게 객관화 시켜버리는 신기한 능력의 소유자다.

하물며 배우자와의 만남, 결혼에 이르는 과정까지 통으로 상실의 시대로 넘겨버렸다. 프라모델 수집, 그림, 음악에 재능이 있는 사위 4위는 서열 3위 아내가 장장 9페이지에 걸쳐서 써 놓은 관상동에서 사리현동으로의 이사의 고통도 한 마디로 정리해 버린다.

"변호사인 큰형에게 문의했다. 전세금 반환 소송은 간단했다. 그냥 돈을 받게 되었다."

극강의 캐릭터다!

▲ 멕시코시티 플라자 산토 도밍고에서 저자의 싸인이 담긴 책을 보고 있다. ⓒ 김유보


서열 3위 딸
실질적인 가장이고 서열 4위 남편의 객관화에 잘 적응하고 살고 있다. 첫 문장이 관상동에서 전세금 반환 소송에 관한 것일 정도로 문제를 해결하며 리드하는 스타일이다. 5일 만에 이사를 뚝딱 해치웠으며 서열 3위 이하에서 유일하게 직업이 다르다. 초등학교 선생님들 사이에 홍일점 김차장.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다. "(임신 중에)한 번은 딸기가 먹고 싶어서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나갔던 남편이 빈손으로 들어와서는 비싼 딸기를 사달라고 했다며 오히려 나에게 화를 냈던 적이 있다."

무심한 4위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첫째를 출산할 때 억지로 자리를 지키다 배고파서 햄버거를 먹고 온 남편. 그는 여기에 한마디 보탠다. "아내는 (둘째)시아까지 그냥 다 낳았다."

책에는 없는 내용이지만 초등학교에 양복을 입고 출근하지 않는 4위에게 교장 선생님이 한마디 하자 '저의 월급으로는 양복을 살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어여삐(불쌍히) 여긴 교장 선생님이 양복 한 벌을 하사 하시었다. 양복이 개인이 돈을 주고 산 것이 아니라 하여, 학교에 걸어 두고 출근해서 환복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퇴근할 때 출퇴근 복으로 갈아입는 대단한 열정으로 공과 사를 구분하는 4위 남편을 둔 그녀… 파이팅이다!

서열 2위 할아버지
청소의 달인이다. 멕시코 동생 집에 오셨을 때도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렸고 걸레를 빨고 창틀의 먼지를 청소하시는 꼼꼼함의 왕이다. 쇼핑을 좋아하시고 책에는 잘 나와있지 않지만 화투를 들고 내리치시면서 즐거워 하시던 모습. 깐깐하시지만 즐거운 인생을 사시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서열 1위 할머니

구수하시다. 글 중간 중간에 느껴지는 뉘앙스 그대로이시다. 4위 사위와는 또 다른 내공의 소유자이신 2위 남편과 함께 손주들을 맡는다는 것이 현 시대의 할머니를 대변하는 듯하여 짠하다. 2위와 심각하게 다투고 이혼 이야기까지 나와서 트렁크를 싸놓고 아들 딸 내외를 기다리고 있던 중…

"그 상황에서 우리 집 뒹굴이 사위가 들어오더니, 어른들이 심사숙고해서 내리신 결정이니 반대하지 말고 얼른 짐을 실어드리자고 한다. 헛웃음이 나왔다. 대문 밖에 차 트렁크 열어놓고 짐을 실어드리고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하고 들어온다. 집안에 이 난리가 났는데 며느리는 세상 모르게 자고 있다."

이쯤 되면 김수현 표 주말 드라마의 한 장면이다. 60대 중반이 되어서 종교를 갖게 되고 아들 딸 내외, 손주들과 지내시는 서열 1위야 말로 진정한 행복자이시다.

한국에서 1인 가구가 520만 내외가 되었다고 한다. 분리와 단절, 소외 혹은 스스로의 격리가 일상화 되어있는 2018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책은 '이렇게 살아라'라고 하는 정답을 주는 책은 아니다. 복잡다망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이러한 삶도 있다'라고 느끼는 간접 경험 같은, 그러나 '나도 그 속의 일원이 되고 싶다' 라는 유토피아같은 소망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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