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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터전 휘젓는 서부내륙고속도로, 반대한다"

[서부내륙고속도로 피해 주민 좌담회]

등록|2018.08.23 15:49 수정|2018.08.23 15:49

▲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이 지나가는 예산홍성 주민들이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이재환


서부내륙고속도로 문제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고속도로의 노선을 정할 때는 적어도 도로 건설로 피해를 보는 주민들 중심으로 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민 피해나 민원을 해결하지 않은 상태로 건설되는 도로가 과연 얼마나 공익적인 것인지도 자문하게 된다.

지난 2일, 환경부는 서부내륙고속도로 환경영향평가서를 반려했다. 국토부와 포스코 등 모두가 외면할 때 환경부만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서부내륙고속도로 노선이 변경된 것도 아니고, 고속도로 건설 사업이 최종 폐기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충남 예산, 홍성 지역의 주민들은 지난 4년여 동안 국토부와 대기업을 상대로 힘겹게 싸워왔다. 고속도로노선을 피해가 없는 방향으로 재설정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국토부는 그때마다 상대민원, 즉 다른 노선으로 변경할 경우 또 다른 민원이 발생할 수 있다는 논리로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주민들은 "생활 터전과 민가 밀집지역만 골라서 그어진 서부내륙고속도로의 노선을 이해할 수 없다"며 반발했다. 급기야 주민들은 단순히 노선변경을 요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 자체를 반대하는 쪽으로 운동 방향을 바꾸었다.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전면 폐지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지난 22일, 충남 예산의 한 사무실에서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 주민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것인지, 아니면 좀 더 많은 보상을 원하는 것인지를 말해 달라.
권혁종: "조상들 대대로 오가면에 살았다. 묘소도 다 오가에 있다. 서울에 살다가 고향으로 내려온 이유는 고향을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떠나고 싶었다면 벌써 떠났을 것이다.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한지 모르겠다."

윤장원(가명): "넓은 시각에서 고속도로가 필요하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를 위해 양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서부내륙고속도로는 반드시 필요한 노선으로 가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래서 반대하는 것이다."

김오경: "당연히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살고 싶다. 이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자연 부락 무단 횡단하려는 서부내륙고속도로"

- 국토부와 협의를 통해 해결하지, 어째서 서부내륙고속도로 자체를 폐지하라는 주장을 내놓는 것이냐고 비판하는 경우도 있다.
김형용: "대흥 지역을 포함해 주민들은 지난 4년간 국토부에 수없이 많은 민원을 내고 문제 제기를 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 협의를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오히려 주민들이다. 주민 민원을 유발하는 현 노선을 포기하고, 민자가 아닌 공영으로 고속도로 설계를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김오경: "솔직히 서부내륙고속도로를 처음 반대하고 나섰을 때만해도 도로가 우리 마을로만 지나가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작은 시야로 시작했다. 국토부와 포스코 측에 다양한 요구를 했지만 모두 무시당했다. 그와 중에 고속도로의 노선이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뜻을 함께하는 예산 지역 주민들이 있어 합류하게 됐다."

안학원: "국토부의 노선은 전체적으로 타당성이 없다. 오가와 신암의 구릉지대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자연부락이 많다. 서부내륙고속도로는 그런 곳을 무단횡단하려 하고 있다. 주민들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고속도로를 건설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조상 대래로 살던 터전에서 떠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박종면: "내가 살고 있는 오가면 신석리는 앞쪽에는 대전당진간고속도로가 지나가고, 가운데로는 장항선 철길이 지나간다. 서부내륙고속도로가 건설되면 사방이 막혀 교통섬이 되는데, 그에 대한 대책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주민 피해 없었던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는 반대하지 않았다"

- 서부내륙고속도로는 민자고속도로이다. 민자가 아니고 국가주도로 건설이 추진되고, 주민 피해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생각인가.
김형용: "주민 피해가 많은 현재의 노선은 당연히 반대한다. 다만 주민피해가 없고 합리적인 노선으로 재조정 된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민간이 아닌 공영으로 도로가 합리적으로 설계된다면 특별히 반대할 명분이 없을 것 같다."

박종면: "대전·당진간 고속도로가 날 때 우리 마을에서 반대를 한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이랬던 주민들이 서부내륙고속도로 건설은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대전·당진간 고속도로는 주민의 피해 없이 들판으로 도로가 났기 때문이다. 피해가 없는 쪽으로 도로가 난다면 굳이 반대할 필요가 없다."

- 일각에서는 서부내륙고속도로를 찬성하는 예산주민들도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나.
김형용: "찬성하는 사람들은 막연하게 고속도로가 나면 편리하고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집을 수용 당하는 사람들 중에도 찬성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고속도로 건설에 있어서는 피해 당사자의 의견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당사자들에게는 생존이 걸린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권혁종
: "서부내륙고속도로는 주민 피해를 최대한 회피해 설계되지 않았다. 예산에서 서울까지는 시외버스로도 1시간 50분이다. 서부내륙고속도로가 난다고 해서 얼마나 더 빨리 가겠나. 잘해야 10~20분 정도 빨라질 것이다. 그런 작은 이익 때문에 삶의 터전을 도로에 헌납할 수는 없다.

백번양보해서 공익적인 목적에서 볼 때 이 고속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치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소수의 국민에게 치명적인 해를 끼친다면 그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묻고 싶다. 조금의 불편은 감수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의 질을 심각하게 훼손하면서까지 양보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윤장원: "찬성한다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내가 알기로 찬성하는 사람들은 극히 일부이다. 토지가 많이 수용 되어서 어느 정도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분들로 알고 있다. 물론 마을의 순박한 노인들 중에는 '국가에서 하는 일인데 막을 수 있겠냐'고 생각도 하는 분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서부내륙고속도로는 공영이 아닌 민자 고속도로이고, 도덕적이고 공정한 도로도 아니다."

"100년 넘게 쓰는 고속도로, 잘못 건설하면 복구도 못한다"

- 서부내륙고속도로를 기존 노선대로 추진하려고 하고 있는 국토부와 포스코 측에 전할 말은 없나.
박종면: "국토부와 포스코 직원들의 가족이나 부모님이 우리 마을에 산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도로를 내겠다고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막대한 피해를 감수하며 이 노선을 택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김오경
: "고속도로는 지금도 이미 충분히 있다. 서부내륙고속도로에 정체되는 구간이 있다면 그 구간의 정체를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지 도로를 하나 더 만든다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맞지가 않다고 본다."

윤장원: "고속도로는 한번 건설하면 되돌릴 수가 없다. 100년 혹은 그 이상 써야 하는 것이 고속도로이다. 잘못 되었다고 해서 다시 복구할 수도 없는 것이다. 국토부는 국가의 이익과 일개 업체의 이익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합리적인 노선으로 재설계를 하거나 사업 자체를 아예 포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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