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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암초'에서 파리협정을 구하라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24] 국제사회 기후변화 대응

등록|2018.08.27 08:38 수정|2018.11.09 17:21
석탄·석유 등 화석연료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 오염, 그리고 후쿠시마 참사가 보여 준 원전재난의 가능성은 '더 이상 위험한 에너지에 기댈 수 없다'는 깨달음을 확산시키고 있다. 지난해 신고리원전 5·6호기 건설 중단으로 본격화한 탈핵 논쟁은 우리 사회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에너지체제를 전환할 수 있을 것인지 가늠할 시험대가 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변화와 원전사고의 재앙을 막고 '안전하며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모색하는 심층기획을 연재한다. - 기자 말

"기후변화는 경제, 일자리, 범죄, 전쟁이 들어차 있는 걱정의 웅덩이 가장자리에 놓아둘 수 있는 사치스러운 걱정거리가 됐다."

영국의 비영리단체 '기후지원정보네트워크(Climate Outreach and Information Network)'의 공동창립자인 조지 마셜은 저서 <기후변화의 심리학>에서 지구온난화가 심각한데도 대중의 경각심이 낮은 이유 중 하나로 '지나친 환경담론화'를 꼽았다. 기후변화 논의가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 인간 행위를 저지하는' 환경 논란으로 비치다 보니, 경제·일자리·범죄·전쟁 등 좀 더 긴급해 보이는 사안에 밀려나 버린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재난으로 매년 40만명 사망

마셜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일상에서 눈에 잘 띄지 않고, 현재보다는 미래 세대의 문제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기상재난이 닥쳐도 이는 자연적인 현상이며 불가항력이라고 치부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기후변화는 이미 경제, 건강, 사회권 등 인류의 생존과 인권을 위협하는 문제가 됐다.

지난 2016년 기후취약포럼(CVF·Climate Vulnerable Forum)과 유엔개발계획(UNDP)이 함께 발간한 <저탄소 모니터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수준의 온난화가 지속할 경우 2050년까지 75조달러(약8경4000조원)의 경제적 손실이 누적될 전망이다. 폭염·홍수·가뭄 등 자연재해로 생활 터전이 파괴되고 전염병이 증가하며, 흉작으로 식량 가격이 오르는 등의 피해 비용을 추산한 것이다.

CVF는 지난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1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15) 때 몰디브, 키리바시, 방글라데시, 필리핀 등 온난화 타격에 직접 노출된 48개국이 만든 국제조직이다. 이 기구는 2010년부터 매년 기후변화로 인한 온열질환, 전염병, 식량난, 기상재난 등으로 전 세계에서 평균 40만명이 목숨을 잃는다고 추정했다. 또 지금처럼 탄소에너지에 계속 의존하면 이 수치는 2030년 70만명까지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 기후취약포럼(CVF) 등이 2012년 분석한 세계 각국의 기후취약성 정도. 색이 붉을수록 피해가 큰 지역인데, 아프리카·남아시아 등 적도 주변의 개발도상국·극빈국들이 가장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북한 역시 붉은색의 극심(acute) 단계로 분류됐는데, CVF는 특히 2030년경 북한에서 홍수·태풍·식량난 등의 피해가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 CVF


지난 5월 미국의 과학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실린 논문 '기후모델은 가난한 나라에서 기온변동이 증가한다고 예상한다'에 따르면 산업혁명 이후 온실가스 배출에 주된 책임이 있는 것은 선진국들이지만 우선적인 피해는 적도 주변과 남반구의 개발도상국에 집중되고 있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출신의 기후과학자 3명이 쓴 이 논문은 2014년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가 발표한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 자료를 토대로 2100년까지의 지역별 기온변동폭을 예측해 이런 결과를 보고했다.

개발도상국에 쏠린 온난화 피해, 가속화 땐 인류 멸종

IPCC는 전 세계 197개국의 관료와 과학자 대표 등이 모여 기후변화 추이를 과학적으로 분석하고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유엔(UN) 산하 국제기구다. 이 기구는 인류가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나서도, 지난해 이미 400피피엠(ppm)을 넘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이번 세기 중반까지 지구 평균온도를 최소 섭씨 0.4도(℃) 이상 더 올려놓을 것으로 예측했다.

만일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계속 태워 2100년쯤 지구 평균온도가 최대 4.8℃까지 오르면 뉴욕·런던·상하이·시드니 등 해안도시를 중심으로 인간 주거지의 5퍼센트(%)가 물에 잠기고, 약 5000억톤(t)의 탄소가 묻힌 시베리아·알래스카 등 영구동토층이 녹아 온난화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2014년 <6도의 멸종>을 쓴 영국 환경운동가 마크 라이너스(45) 등 기후전문가들은 이런 악순환으로 지구 온도가 6℃까지 오르면 전체 동식물의 95% 이상이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지난 3월 세계은행이 발간한 '기후 이주를 위한 준비' 보고서에 따르면 오는 2050년까지 아프리카·남아시아·라틴아메리카 지역 주민 1억4300만명 이상이 기후변화로 인한 물부족, 식량난, 해수면 상승, 폭풍 해일 때문에 거주지를 떠나야 할 것으로 전망됐다.




▲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2014년 9월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기후정상회의에 기후변화부문 평화사절 자격으로 참석해 지구온난화에 대한 긴박한 대응을 촉구하는 연설을 하고 있다. 디카프리오는 1998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재단'을 설립한 이후 기후변화 대응 및 생태계 보존, 재생에너지 전환 등 환경 운동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해 왔다. ⓒ UN, 단비뉴스

197개국 탄소감축 합의 불구 2017년 배출량 증가

2015년 12월 '지구온난화의 역사적 전환점'이라 평가받는 파리기후협정이 채택됐지만 지난해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전년보다 4억6천만t 늘어 역대 최고치인 325억t을 기록했다. 4억6천만t은 1억7천만대의 자동차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량과 같다. 전 세계 탄소배출량은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보합세, 혹은 약간의 하락세를 보였지만 지난해 다시 반등한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석유 등 화석연료 가격이 하락했고 각국의 에너지효율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에너지 수요 중 화석연료 비중이 여전히 81%를 차지할 만큼 재생에너지 성장 속도가 더디다는 점도 지적했다.

영국 에너지기업 비피(BP)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율이 가장 큰 나라는 터키(50.5%)고, 2위는 한국(24.6%)이다. 지난 10년 사이 개발도상국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나라의 평균 이산화탄소 배출 증가율은 11.2%인데, 한국의 증가율은 평균의 두 배 이상이다. 반면 우리나라보다 경제규모가 큰 미국, 일본, 독일은 지난 10년간 각각 -15.3%, -7.1%, -5.4% 등으로 탄소배출 감축에 성공했다.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탄소 감축에 앞장서는 나라가 많은 OECD의 평균 증가율은 –8.7%로, 역시 감소세였다.

2020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파리기후협정은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2℃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되, 가급적 1.5℃ 이하로 제한할 것을 목표로 한다. 이미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 온도가 1℃가량 올랐고, 앞으로도 0.5℃ 상승 가능성이 큰 만큼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전 지구적으로 신속하고도 전면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 기후학자들은 2℃ 이상의 온난화로 가지 않으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2015년 12월 12일 프랑스 파리의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에서 새로운 기후협정이 체결된 후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왼쪽에서 네 번째) 등이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탈퇴 등으로 파리협정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 Flickr


파리협정은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선진국만 떠안았던 1997년 교토의정서와 달리 개발도상국·극빈국을 포함한 197개 당사국 전체가 참여하고, UN에 제출하는 감축 목표를 5년마다 상향 조정해 이행 여부를 검증한다는 점에서 '한층 진일보한 기후협정'으로 평가된다. 2016년 11월에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55%를 차지하는 55개국 이상이 비준 절차를 완료하면서 기후협정 최초로 국제법적 효력을 얻기도 했다.

하지만 IPCC는 파리협정 체결 이후 당사국들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이 '1.5℃ 억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너무 약하다고 보고 있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2050년까지 화석연료 소비를 현재의 30% 수준으로 줄이고, 세계 에너지 공급량의 50% 이상을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해야 한다는 게 IPCC의 진단이다.

트럼프, 파리협정 탈퇴 선언 등 '역주행'

이렇게 갈 길이 바쁜데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지나치게 높다며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2025년까지 2005년 배출량 대비 26~28%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녹색기후기금'이 불공정하고 자국민에 경제적 손해를 입힌다는 주장도 내세웠다. 이산화탄소 배출 순위가 중국에 이어 2위인 미국이 파리협정을 이탈하면서, '신기후체제'는 시작도 하기 전에 김이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 지난해 6월 1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 로즈가든(장미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리기후협정 탈퇴를 선언하고 있다. 그는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가 과도하고, 개발도상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지원하는 데 부담이 너무 크다고 주장했다. ⓒ 그린피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당초 내기로 했던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의 녹색기후기금 분담금 중 20억달러(약 2조2000억원)를 내지 않았다.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는 오바마 정부 시절에 냈다. 녹색기후기금은 2013년 12월 출범 후 2020년까지 1000억달러(약 112조원)의 기금을 조성하기로 했으나 '큰손'인 미국의 이탈로 향후 개도국 기후변화 대응지원에 차질이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기후변화는 사실이 아니라 중국의 음모'라고 말하기도 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인 2016년 12월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스콧 프루이트(50)를 환경보호청장에 지명하는 등 온난화 대응에 역행하는 행보를 보였다. 오클라호마주 법무장관 시절 화석연료업계로부터 꾸준히 정치후원금을 받았던 프루이트는 화력발전소 온실가스감축 의무화에 반대하는 집단소송을 주도하는 등 오바마 정부의 친환경 정책에 줄곧 대항했다. 환경보호청장에 취임한 뒤에는 오바마 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을 폐기했다.

프루이트는 지난달 6일 부정청탁 의혹으로 환경보호청장직을 물러났지만 청장 대행을 맡은 앤드루 휠러(55) 부청장 역시 미국 최대 민간석탄회사 '머레이에너지' 로비스트 출신이다. 휠러 대행은 지난 21일 석탄발전소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를 완화하는 '적정 청정에너지법(ACE)'을 발표해 미국의 '환경 역주행'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대신 '지구 구하기' 나선 유럽과 중국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 손민우(32)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지난 6월 18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당사국 간 이견이 많았던 교토의정서와 달리 파리협정은 197개 당사국 만장일치로 체결됐다"며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은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의 탈퇴에 대해서는 트럼프라는 변수 때문이지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라고 분석했다. 그는 "세계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과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유럽이 함께 미국 대신 기후변화 리더 역할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며 "미국에도 트럼프 노선을 따라가지 않고 기후변화 대응을 열심히 하는 지방정부, 기업 등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워싱턴·뉴욕·캘리포니아 등 미국 13개 주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협정 탈퇴 선언 직후 '미국기후동맹(US Climate Alliance)'을 결성해 주 정부 차원에서 탄소저감정책을 강화하고 있다. 로스앤젤레스(LA)·시카고 등 200여개 도시 역시 '기후 시장(the Climate Mayors)'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파리협정 실현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마이클 블룸버그(76) 전 뉴욕시장은 지난 4월 미국 정부가 파리협정 이행을 위해 올해 내야 할 분담금 450만 달러(약 50억원)를 자기 개인 돈으로 내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파리협정 목표 달성에 가장 적극적인 EU는 오는 12월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릴 제24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4) 때 기존 감축 목표인 '203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40%'를 '45%'로 강화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회원국들은 당초 2020년까지 1990년 배출량 대비 20%를 줄이겠다고 했던 목표를 예상보다 빠른 2014년에 이미 달성했다. 또 파리협정 체결 이후에는 프랑스·영국·독일 등 기후변화대응 선도국을 중심으로 화석연료 퇴출·재생에너지 확대·에너지효율화 정책을 EU 전체에 더욱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중국도 오는 2030년까지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60~65% 줄이겠다는 과감한 계획을 내놓았다. 중국은 특히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를 계기로 국제적 리더십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고, 탈석탄 등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손 캠페이너는 "현재 각 나라가 제출한 자발적 온실가스 감축목표(INDC)만으로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내로 억제할 수 없다는 게 유엔환경계획(UNEP)의 분석"이라며 "1.5℃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각국이 INDC를 지금보다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파리협정이 국제법적 효력을 얻긴 했지만 여전히 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부과할 수 있는 페널티(처벌)가 없다는 점을 한계로 지적하며 국제사회의 추가 합의를 희망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 <단비뉴스>(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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