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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에 실려 가는 그들 마음은 어땠을까

섯알오름, 그 날의 발자취를 따라서... 음력 칠월 칠석, 새벽 순례길을 다녀오다

등록|2018.08.28 16:57 수정|2018.08.28 19:18
음력 칠월 칠석. 모슬포 경찰서 관내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예비검속이라는 이름 아래 섯알오름에서 희생당한 날. 폭우가 쏟아지고 바람이 몰아치는 이 날 새벽, 제주다크투어는 당시 사람들이 끌려갔던 그 길을 그 시간에 다시 한 번 찾아가 보았습니다. 올해 음력 칠월 칠석은 양력 8월 17일이지요.

1950년 음력 칠월 칠일 새벽, 트럭 두 대가 시동을 걸던 시간. 순례단은 새벽 2시 한림 어업창고터 앞에서 만났습니다. 편의점 옆 건물, 이제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은 그곳에서 최상돈 선생님의 설명을 듣습니다. 동광에 있는 임문숙 헛묘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임문숙씨가 바로 이 어업창고에 구금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어업창고에는 5-60명의 사람들이 짧게는 하루에서부터 길게는 두 달 동안 갇혀 지냈어요. 남녀 구분도 없었어요. 식사는 가족이나 친지들이 가져다준 걸 먹거나, 보리쌀만 가져다주었을 경우에는 직접 지어먹었죠. 수감 기간 취조를 받거나 고문을 당하는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면회는 공식적으로 허가되지 않았죠. 입구에 경찰이 지키고 있어서 창고문을 통해 먼발치로 가족들의 얼굴만 확인할 뿐이었어요. 그러나 일부 유족들은 면회를 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하루는 식사를 빨리 하라고 해요. 빨리 식사를 마치라고. 경비 서던 순경이. 그래서… 식사하는 도중인데 경찰관이 와요. 이제 우리는 다 죽었구나 생각하고 있었죠. 호명을 하고 나자 이름 불린 사람은 다 나오라고 해요. 난… 운이 좋았는지… 다른 몇 사람과 함께 살아남았어요. - 임문숙씨 증언

▲ 한림 어업창고 터 앞 ⓒ 제주다크투어


한림 어업창고에서 54명을 태운 트럭은 무릉지서로 이동합니다. 무릉지서에 구금되어 있던 사람 중 9명으 더 태운 트럭은 모슬포 짐가동산을 지나 신영물, 걸매물을 거쳐 신사동산을 넘어 섯알오름까지 이동했다고 합니다. 순례단은 그 시간, 그 길을 오롯이 따라가 봅니다.

▲ 옛 무릉지서 앞. ⓒ 제주다크투어


한참을 달려 옛 절간 고구마 창고를 찾아봅니다. 1950년 한국전쟁 직후 모슬포 경찰서 관내 주민 347명이 구금되어 있던 곳, 지금은 대정 정마트 자리입니다. 정마트 왼쪽으로 돌아가면 아주 조금, 지하실 쪽 구멍이 보입니다. 그 구멍으로 70여년 전 사람들도 갇혀있는 가족들에게 먹을 것을, 옷가지를 건네주었겠지요.

▲ 대정 정마트. 옛날 절간 고구마 창고 자리다. ⓒ 제주다크투어


이 날, 한림어업창고에서, 무릉지서에서, 그리고 이곳, 절간 고구마 창고에서 끌려온 주민들은 신사동산을 지났을 때야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신사가 있었던 곳,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도 머리를 숙이고, 해방 후에는 드나드는 미군정 차량에, 군경에게, 권력자에게 머리를 숙여야만 했던 곳이 바로 이 신사동산 입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이날 신사동산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바로 이곳에서부터 트럭에 실려가던 사람들은 고무신을 벗어 군인들 몰래 뒤에 버렸다고 합니다. 그 흔적을 보고라도 가족들이 찾아와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겠죠.

대정 시내에 있던 가족들은 그 새벽, 총소리가 울리는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해서 총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일제가 만들었던 군용도로 길입니다. 몰아치는 비와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한참을 걸어갑니다. 앞이 보이지도 않는 캄캄한 어둠, 몰아치는 비바람을 가르며 총소리가 들려왔을 그 장소를 향해 유가족의 마음을 헤아리며 걸어가 봅니다. 한참을 걸어가니 저 머리 푸르스름한 빛 아래 섯알오름 학살터가 보입니다.

▲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제를 지냈다. ⓒ 제주다크투어


내리는 비 아래 정성스레 준비해 온 음식과 술을 올립니다. 최상돈 선생님의 "섯알오름의 한" 노래와 김경훈 시인님의 "섯알오름 길" 시낭송도 이어집니다. 그날의 두려움을, 아픔을, 서러움을 오롯이 느낄 수는 없겠지만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는 섯알오름 유족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아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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섯알오름의 한 - 최상돈 ⓒ 제주다크투어


비오는 새벽 찍은 영상이라 화질은 좋지 않지만, 그 날의 분위기를 함께 나눠봅니다.
하늘엔 반달 칠월칠석 날
트럭에 실려 우리 어디로 가나
나라도 반쪽 갈라졌는데
스산한 새벽길
신사동산 넘을 때 그제 알았네
송악산 넘어 절벽
흰 국화 대신 검은 고무신
즈려밟고 오소서
- 섯알오름의 한

덧붙이는 글 * 기억하고 싶은 길 - 제주다크투어

'제주다크투어'는 제주4·3 평화기행, 유적지 기록, 아시아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과의 국제연대 사업 등 제주 4·3 알리기에 주력하는 비영리 단체입니다.
[블로그 주소] blog.naver.com/jejudarkt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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