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 밥 주는것도 불편해? 고양이 터전 파괴한 것은 인간"
[인터뷰] 길고양이와 공존하며 사는 장은희씨
▲ 장은희 씨의 집 헛간. 지난 4월 충남 예산군 삽교읍의 한 한의원 앞에서 구조해온 치즈 고양이. 상당히 많이 자란 상태이다. ⓒ 이재환
밥 한 덩어리와 빵 한 조각을 나누어 준 것이 전부였다. 길고양이와 장은희(46)씨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다. 흔히 고양이와의 인연을 '묘연'이라고 부른다. 실제로 고양이와의 만남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우연히 찾아오는 경우가 많다.
은희 씨는 4년 전 우연히 집 근처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을 발견했다. 처음에는 4마리의 새끼 고양이에게 한 덩어리의 밥을 나눠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열혈 캣맘'이 되었다. 길고양이 밥을 챙겨 주러 가는 곳도 두 곳이나 된다. 인근에 있는 공원과 아파트 단지를 돌며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겨 주고 있다. 청력이 발달한 길고양이들은 은희씨가 타고 다니는 차 소리가 들리면 어딘가에서 나와 그를 반긴다고 했다.
은희 씨는 몸이 아픈 길고양이라도 발견하면 곧장 동물병원으로 데려가 치료해준다. 물론 치료비는 자비로 부담한다. 은희씨가 살고 있는 시골집 주변에는 이곳저곳에서 구조해온 길고양이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다. 집안에서 키우던 아이들도 어느 정도 자라면 밖으로 나가 집안과 마당을 오가는 '외출냥이'가 된다. 은희씨는 50여 마리의 고양이들과 그렇게 함께 살고있다.
그는 길고양이들을 '우리 아이들 혹은 우리 아가들'이라고 부른다. 은희씨는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과 사료를 제공해 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그는 "길고양이에 밥을 주는 것은 선한 일인 동시에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기도 한다. 30일 오전, 충남 예산군 삽교읍에 있는 은희씨의 집에서 그를 만났다.
▲ 장은희씨가 얼마전 구조한 튼튼이를 안고 있다. ⓒ 이재환
- 언제부터 길고양이를 돌보게 되었나.
"만 4년 된 것 같다. 돌아가신 엄마가 암 선고를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였다. 그때 집근처에 살던 고양이들이 찾아 왔다. 밥을 달라고 울기도 했다. 빵과 우유, 밥 한 덩어리를 나누어 준 것이 시작이다. 엄마 때문에 병원을 자주 오가다 보니 고양이들의 밥을 챙겨주기가 어려웠다. 병원에 가면 고양이들이 굶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부터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주기 시작했다. (건식 사료는 밥이나 빵처럼 쉽게 상하지 않는다.)"
- 올 여름은 상당히 더웠다. 고양이들도 힘들었을 텐데, 고양이들의 상태는 어떤가.
"어미들은 그나마 그냥 저냥 살고 있다. 하지만 갓 태어난 길고양이들은 많이 죽었다. 마치 열사병에 걸린 것처럼 쓰러지는 아이들이 많았다. 죽어가던 새끼고양이 한 마리를 데려와 치료 중이다. 이름을 튼튼이라고 지어 주었다. 지금은 잘 놀고 있지만 처음 데려올 때만해도 움직이는 것조차 어려운 아이였다. 데려 오지 못한 아이들은 요즘 잘 보이지 않는다. 어미가 혼자 다니는 것으로 봐서는 고양이 별로 떠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올 여름을 넘기지 못한 새끼 고양이들이 많은 것 같다. 참 슬픈 일이다."
- 집안에도 열 마리의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데, 불편한 점은 없나.
"고양이가 워낙 많다 보니 모래가 날린다. 고양이 오줌 냄새는 기본이다(웃음). 사람 사는 집인데 고양이 냄새가 더 많이 난다. 당연히 불편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없는 살림에 고양이까지 돌보다 보니 통장 잔고도 얇아지고 있다(웃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양이들과 함께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시작 한 일이다. 때문에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가 시골이라고 해도 생태계가 다 파괴되어 먹이를 구하기가 어렵다. 밥을 주지 않으면 당장 굶어 죽을 처지에 있는 고양이들도 많다. 야생성을 잃은 아이들도 많기 때문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길고양이들의 생존 확률은 25%라고 한다. 로드킬을 당하는 고양이도 많다. 적어도 내가 밥을 주는 아이들만큼은 살아 있는 동안 배고프지 않고 잘 놀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배곯지 않고, 아프지 않고, 잘 살다가 고양이 별로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이다."
"고양이의 터전 파괴한 인간, 책임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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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양이 은희씨가 지난 4월 구조한 길고양이들의 모습이다. 발견되었을 당시의 모습인데, 목에 상처가 나 치료를 받았던 아이는 고양이 별로 떠났다. 남은 두마리의 고양이는 무럭 무럭 잘 자라고 있다. ⓒ 이재환
▲ 은희씨의 집에는 이런 사료통이 곳곳에 놓여있다. 한적한 시골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 이재환
- 고양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종량제 봉투를 찢고, 시끄럽다며 고양이와의 공존을 거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없나.
"공원에서 고양이 밥을 주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고양이들 때문에 너무 시끄럽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얘기도 했다. 바로 그 다음날 병원에 연락해 고양이들을 포획하고, 중성화 수술을 했다. 고양이들은 발정기가 오거나 배가 고프면 시끄럽게 울곤 한다. 이 두 가지를 해결해 주면 고양이로 인한 소음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 고양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이유는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작은 양이라도 쓰레기봉투 옆에 사료를 놓아두면 더 이상 봉투를 뜯지 않는다."
- 길고양이를 해코지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런 뉴스를 볼 때 마다 어떤 생각이 드나.
"정말 화가 많이 난다. 사이코패스 성향의 살인범들의 경우 동물학대를 한 이력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런 마음이 결국 사람에게 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섬뜩하기 까지 하다."
- 인간과 길고양이가 공존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지구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다. 고양이들의 입장에서는 지구가 고양이들의 세상이기도 하다. 인간은 고양이들의 생활터전을 파괴했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가 있다. 고양이들이 생태계에 기여하는 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는 것조차 불편해 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입장을 바꾸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인간에게는 단지 조금의 불편함이지만 고양이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조금 불편하다고 해서 고양이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극단적이고 위험한 것이다. 혹시라도 집 앞에 고양이가 돌아다니면 밥 한 덩어리라도 나눠 주길 바란다. 그것이 바로 공존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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