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 정면으로 드러낸 이 시대의 팝 아이콘 트로이 시반
[리뷰] 동성애 코드를 수면으로 끌어내 솔직한 사랑담을 풀어내다
▲ 두 번째 정규 음반 < Bloom >으로 컴백한 트로이 시반 ⓒ Universal Music
음반의 첫인상은 자칫 밋밋하거나 평면적인 울림을 줄 수 있다. 우리 나이로 21살에 전 세계적인 주목과 큰 인기를 가져다준 전작 < Blue Neighbourhood >에 비해 한층 정제된 사운드 톤과 배합이 음반 커버만큼이나 앨범의 색채를 털어내기 때문이다. 강렬한 드럼 비트, 화려한 크랩 사운드와 때로는 일렉트릭 기타와 현악기로, 또 때로는 퓨처 베이스 같은 진득한 EDM 요소를 가져와 뭉근하고 다채롭게 우려냈던 첫 정규 음반에 반해 이번 작품은 최소한의 효과음과 목소리, 그리고 트로이 시반 본인에 집중한다.
보편적인 상황 제시보단 구체적인 장면과 일화를 서술한다. 도쿄에서 보냈던 편지를 받지 못한 전 애인에게 '다시는 나를 내려놓지 마'라고 애원하는 애절한 피아노 발라드 'Postcard'와 17살에 겪은 사랑과 성장담을 담은 첫 곡 'Seventeen'이 그 대표적인 예다. 더불어 전 세계를 두 번 돌고 늘 꿈꾸던 'Good side', 즉 좋은 것들 얻었지만 그래서 미안하다고 토로하는 지나간 사랑에 대한 노래 'The good side'와 모든 전성기가 끝난 후 청춘이 녹아버렸을 때도 우리를 받아들이자 역설하는 'What a heavenly way to die'까지 수록곡의 노랫말은 흘러가지 않는다. 포착하고 함축하고 은유하고 비유한다.
▲ 선 싱글로 공개된 'Bloom'은 '오직 당신을 위해 피어나죠'라는 가사말을 통해 남성의 첫 성경험을 주제로 삼는다. ⓒ Universal Music
엘튼 존, 루 리드, 조지 마이클, 리키 마틴, 최근의 샘 스미스까지 동성애자임을 밝힌 뮤지션 중에 이 정도로 '성(性)'향을 드러낸 음악가는 없었다. 물론 음반에 무조건 성 정체성을 투영하고 표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트로이 시반의 두 번째 정규 음반은 누구도 적극적으로 손댄 적 없는 '남성 동성애자'의 단면을 아름답고 매끄럽고 가감 없이 만들어냈다. 이는 최근 성 정체성의 다양함이 집중 조명되고 있는 사회 시류와 맞물려 더욱 주목해볼 만한 함의를 지니고, 또한 더욱 박수칠만한 용기 있는 드러냄이자 등장이다.
느린 곡과 빠른 곡이 번갈아 가며 등장하는 진행 속 음악적 완성도나 실험성 역시 욕심껏 챙겼다.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흥겨움을 만들어낼 때는 볼륨감 있는 사운드 조절과 선 굵은 멜로디 라인, 숨소리, 잔향 짙은 효과음을 사용해 구성을 채우고 발라드 곡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노이즈 가득한 키보드, 피아노 등으로 무채색 음반의 농도를 조절한다. 그중 'Animal'은 피아노와 앰비언트로 긴장감을 유지한 드림 팝 계열의 멋진 곡이다.
반짝거림 없이 단정한 빗장을 열면 누구보다 진실한 24살의 음악가가 서 있다. 섬세하게 적어낸 자기 고백적 서사와 성 정체성의 정면 응시는 단색의 음반에 단단함을 더한다. 전작만큼 다채로운 선율 진행과 활기는 없을지언정 그 이상으로 본인을 적어냈다는 점에는, 성 소수자의 입장을 이토록 거리낌 없이 표현했다는 점에서는 그 이상의 발전을 보인다. 곳곳에 트로이 시반이 숨 쉬는 음반. 사운드는 덜어냈지만 메시지는 깊은 인상적인 소포모어다.
▲ 팝스타 아리아나 그란데와 흥겨운 댄스팝 'Dance to this'를 함께 불렀다. ⓒ Universal Music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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