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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만 40범, 어부가 바다 떠나지 못하는 이유

[인터뷰] 정부 규제로 졸지에 '불법' 조업자... 벌금만 억 단위

등록|2018.09.26 20:07 수정|2018.09.26 20:07
전남 해안에서는 2011년 이래 '자루그물' 사용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면서 어업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갑작스럽게 자루그물을 쓰지 못하게 된 어민들은 벌금을 내면서까지 계속 같은 방식으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반면 자루그물이 불법인데 왜 계속 쓰도록 놔두냐며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어민들도 있습니다. 이 글은 자루그물 어부의 하소연을 실었습니다. 이 인터뷰에 대한 반론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휴업불법으로 규정된 어구때문에 출어 횟수가 줄어들었다. ⓒ 황주찬


바다는 넓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넓은 바다는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고기잡는 어부들의 치열한 삶의 전쟁터다. 전쟁터같은 바다에서 평생을 파도와 싸우며 성실히 살고 있는 어부가 있다.

그는 돈도 권력도 없어 넓은 바다로 나가지 못한다. 그저 마을 앞 낯익은 바다에서 조그마한 배로 멸치 잡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부지런한 어부는 그 억척스러움 때문에 전과 40범의 살벌한(?) 범죄자가 됐다. 8년 동안 낸 벌금만 1억 원이 넘는다.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전과자가 된 사연이 기막히다.

정부는 2010년 효율적인 어업관리와 수산자원 보호, 그리고 조업질서 확립을 위해 연근해 유사업종 통폐합을 추진한다. 통폐합 과정에서 정부는 '어업별 표준어구어법' 기준을 마련한다(어구는 고기잡이에 쓰는 여러 도구, 어법은 수산동식물 포획이나 채취에 쓰는 방법을 뜻한다). 법 개정에 따라 전남 양조망은 연안선망(양조망, 건착망, 석조망)으로 통폐합되고 예전부터 사용하던 멸치잡이 어구인 '자루그물'은 불법이 된다.

그날부터 이 어부는 불법어업 행위자가 되고 전과를 훈장처럼 늘리게 된다. 재밌는 점은 전남지역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자루그물'이 충남지역에서는 합법적인 조업방식이라는 것이다.

지난 15일 오전 왜 이런 황당한 일이 벌어지는지 '전과 40범' 박아무개(57)씨를 전남 여수 신월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나 사연을 들어봤다.

"정부의 어구어법 표준화 이후 상습범죄자로 전락"
 

포기출어를 못한 어선이 항구에 묶여있다. ⓒ 황주찬


- 언제부터 어업을 했나요.
"저는 전남 여수시 남면에서 태어났습니다. 지난 2004년 고향 바다가 그리워 25년 동안 치열했던 도시생활을 접고 여수로 돌아와 어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바다가 주는 풍요로움과 동네 사람들이 서로 나누고 부대끼는 모습들은 언제나 정겨운 기억이었죠.

어업에 뛰어든 동기 또한 도시생활의 온갖 경쟁으로 지치고 얼룩진 제게 고향 바다가 주는 치유가 필요했고, 생전에 낭장망 어업에 종사하신 부모님 모습을 통해 어업은 그저 욕심내지 않고 주어진 환경에 부지런히 순응하면 자연은 그 마음을 나눔으로 돌려준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전과 40범이 된 사연을 간단히 듣고 싶습니다.
"정부는 2010년 수산자원보호와 어업질서 확립이라는 이유로 양조망 등 유사업종을 통폐합하고 어구어법을 표준화합니다. 다수의 영세어민들이 그렇듯 당시 저는 법 개정사실도 몰랐고 관계기관으로부터 사전 공청회, 의견조사, 공식문서 등 관련 내용에 대한 어떠한 통보도 받지 못했습니다.

그저 법 시행과 무관하게 과거부터 멸치잡이 어구(자루그물)를 사용해 왔고 2011년 현장에서 갑작스레 관계기관으로부터 불법 처분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통폐합 전에는 불법도 아니었고 규모는 작지만 빚도 없었습니다. 나름의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고요.

그런데 법 시행 이후부터 고질적 불법업자로 단속되어 벌금형 40번, 집행유예 2번, 허가취소 2번, 사회봉사 240시간의 처벌을 받아 범죄자가 되었고 이 때문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도 지게 됐습니다.

전남 해역은 조류흐름과 유속 차가 심해 기존 사용하던 어구(자루그물)가 아니면 멸치를 잡을 수 없는데 정부는 정확한 실태 파악도 없이 현실과 동떨어진 법을 적용해 평범한 어부였던 저를 불법업자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충남은 합법, 전남은 불법"
 

기다림전남지역에서 불법으로 규정된 ‘자루그물’은 충남지역에서는 합법적인 조업방식이다. ⓒ 황주찬


- 독자들은 '연안선망'이라는 조업방식이 낯섭니다. 연안선망에 대해 소개 부탁합니다.
"과거 양조망으로 불리던 어업허가를 2010년 통폐합 한 명칭이 현재 '연안선망'입니다. 두릿그물어업으로 분류됩니다. 두릿그물어업은 조업방식에 따라 한 척(외두리) 또는 두 척(쌍두리)의 배가 어군을 탐지해 그물을 둘러쳐 바다생물을 포획하는 어법입니다. 그물형태에 따라 유낭망(선예망)과 무낭망(선망)으로 분류됩니다.

유낭망은 유선형 자루그물이 있는 것을 말하고 무낭망은 자루그물 없는 긴 평면형태의 그물을 말합니다. 그물 사용은 포획어종별로 각기 다른데 무낭망 그물은 조류저항이 약한 경남(통영 등)에서 과거부터 사용하던 그물로 전어‧청어‧고등어 등을 잡을 때 이용합니다. 반면, 조류흐름 변화가 심한 전남 지역(여수‧고흥‧완도‧영광 등)은 유낭망을 이용해 멸치 등을 포획해 왔습니다.

실제 조류저항이 큰 충남‧전남 등 서남해 해역은 무낭망 활용이 어렵고 어종의 다양성 또한 경남과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현재 충남과 전남 연안선망의 주 어획물은 멸치가 95%이상을 차지합니다. 충남은 2011년 충남도지사가 해역 특성에 맞는 어구고시를 완료해 법 개정과 상관없이 안정적으로 고기를 잡고 있습니다."
 

어구조업횟수가 줄어들자 쓸모없는 어구만 늘어난다. ⓒ 황주찬


- 법과 제도가 전과자를 만들고 있는데 이에 대한 개선 방향은 무엇인가요
"어구어법은 해역 특성, 포획어종, 기술수준, 어업여건 등 각종 어업환경 변화에 따라 발전해온 것이 사실입니다. 즉, 각기 불확실한 어업환경에 대응해 진화해 왔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어업현실은 배제하고 오로지 행정효율성만 앞세워 일률적 잣대로 법을 규정한 것입니다.

법 추진에 앞서 충분한 실태 조사와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한 대책 마련도 없이 막무가내로 추진한 정부 행태는 문제가 있습니다. 또한, 정부정책 변화에 체계적 대응이 가능한 기업형 근해 업종과 달리 영세하고 개별 성향이 강한 연안어민의 경우는 정부 제도와 정책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고 법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창구가 전무한 실정입니다.

실제 어구어법 통폐합 후 전남 영세 연안어민 불법 건수는 전국 최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법 시행 전에는 평범한 어민이었지만 현재 고질적 범법자의 길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업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법제와 관할 지자체의 방관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지나친 규제 위주의 법제와 관할 지자체의 소극적 행정이 많은 생계형 어민들을 범법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는 어업현실에 맞는 전면적인 관련 법 정비를 실시하고 지자체 또한 지역 실정에 적합한 고시, 조례 등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멸치넓은 바다는 각자 다양한 방법으로 고기잡는 어부들의 치열한 삶의 전쟁터다. ⓒ 황주찬


- 전라남도 도지사가 고시를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요?
"전남도는 저희 어민들의 제도개선 요구에 수산자원보호와 타 업종의 경제적 타격, 상위법 위반행위, 타 업종의 반대 등을 이유로 8년 동안 방치하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가 법을 개정하란 얘기입니다. 이와 반대로 정부는 연안어업 고시 권한은 전남도에 있으므로 지자체가 해결할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정부와 전남도는 생계형 어민들의 딱한 현실을 서로 책임만 미루며 외면하고 있습니다. 전남 연안선망은 과거부터 멸치를 생산해 왔고 10년간 평균생산량 또한 도내 전체 2%미만(500톤)을 차지하는 열약한 업종입니다. (자루그물을 합법화 해도 생산량이 2%미만인데) 비교 자체가 어려운 타 업종에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초래한다는 전남도 설명은 납득하기 어려운 사항입니다.

법에 전남도 고시권한이 명시되어 있고 동일 사례인 2011년 충남도 연안선망 선례가 있는데도 어떤 이유에서인지 전남도는 제도개선에 방관만 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부는 지난 2017년 멸치를 수온상승에 따라 자원량이 늘어나는 기후변화형 어종으로 지정했습니다. 각종 연구자료와 학술자료 역시 이를 뒷받침하고 있고요. 따라서 전남도가 어렵고 딱한 생계형 어민들의 현실을 조속히 개선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내가 고기잡이 포기하면 주변 사람들 불행"  

- 향후 계획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2010년 법 개정 이후 현재까지 저희들은 어업비용 상승, 지속적 적자, 반복되는 불법, 어획량 감소 등으로 생계유지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한 가정의 식솔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 무책임하게 생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막다른 골목에 있습니다. 더구나 그간 관계기관에 벌금으로 납부한 돈만 1억 원이 넘습니다. 선박과 시설에 투입된 돈도 저의 행복을 바라는 지인들의 소중한 마음입니다.

제가 고기잡이를 포기하는 순간 주변 모든 사람의 불행이 시작되고 연쇄적인 피해가 생길 것이 자명합니다. 많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가족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고 관계기관과 소수 기득권에 의해 사실과 많이 다르게 왜곡된 부분을 적극적으로 알릴 생각입니다. 저희 연안선망 어민들 모두 같은 마음입니다.

- 끝으로 정부와 수산인들에게 하고픈 말이 있다면.
"저희가 관계부처 공무원을 만날 때마다 그분들이 강조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다는 국가공유재인 만큼 공공성을 해치는 무분별한 이용을 우선 제한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간 정부정책과 제도는 이와 크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공익적 기능은 배제되고 소수 힘 있는 대형업종에 유리하거나 편향된 정책을 쏟아내어 왔습니다.

실제 전남 연안선망 어민들의 8년간 피맺힌 어구어법(자루그물) 개선 요구는 남획의 우려가 있어 묵살하면서 특정 대형업종은 국비를 들여 선진조업형 선박과 비용절감형 어구를 개발해 보급하는 등 적극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것입니다. 더구나 전체 멸치생산량 70%에 육박하고 수산자원에 미치는 영향 또한 가장 큰 업종이 규제는커녕 정부 비호를 받는 현실이 과연 형평에 맞는 것인지 의문스럽습니다.
 

호소무슨 재벌이 되겠다고 불법을 밥 먹듯이 하겠습니까? 제도개선이 조속히 이루어져 제도권 내에서 업을 유지해 그간 주변 분들에게 끼친 금전적 손해와 피해를 덜고 점차적으로 경영개선에 임하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 황주찬


저희 전남 연안선망 어민들이 그간 납부한 벌금과 세금이 특정 업종의 경영개선을 위해 기여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듭니다. 영세한 연안어민이야말로 어업비용 증가, 고령화에 따른 인력난, 각종 규제강화 등으로 삼중고를 겪고 있는데 정부는 어찌하여 연안의 사정은 몰라주는지 야속합니다. 저희 연안선망 어민들은 정부와 관계기관이 생각하는 악질적 불법업자가 아닙니다.

그저 바다를 일터로 삼아 생업을 일구는 평범한 소시민이며 자녀와 손자들을 책임지는 한 가정의 가장입니다. 갑작스레 개정된 법의 변화로 불법업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생계형 어업을 해서 무슨 재벌이 되겠다고 불법을 밥 먹듯이 하겠습니까? 단지 어업현실에 맞는 제도개선이 조속히 이루어져 제도권 내에서 업을 유지해 그간 주변 분들에게 끼친 금전적 손해와 피해를 덜고 점차적으로 경영개선에 임하고자 하는 마음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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