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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주 의원님, '주택 16채' 없는 저는 무능한 걸까요?

[편지] 다주택 고위공직자가 판치는 세상, 아이들 꿈은 '건물주'... 이게 옳은 겁니까

등록|2018.10.05 20:30 수정|2018.10.05 21:22
 

대정부질문 나선 이용주 의원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이 지난 2월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을 하고 있다. ⓒ 남소연

안녕하세요, 이용주 의원님. 일면식도 없는데 불쑥 글을 올리게 됨을 너그러이 헤아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굳이 인연을 엮자면, 이용주 의원님의 고등학교 3년 후배이고, 사모님과는 동갑내기쯤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동문이라는 건, 최근 이 의원님의 프로필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이 의원님에 대해서 아는 게 별로 없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의원님의 의정 활동에 대해선 나름 잘 알고 있습니다. 의원님께서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꼬박꼬박 휴대전화 메신저로 알려주시기 때문입니다.

명절이면 어김없이 덕담을 보내고, 국정감사 시즌에는 의원님의 활약상을 문자 중계하다시피 합니다. TV 방송에 출연할라치면 채널과 시간을 알려주며 시청을 독려하기도 하시더군요. 마치 스팸 메시지처럼 하도 자주 받다보니 이젠 0413으로 끝나는 이 의원님의 전화번호를 외울 정도입니다. 보좌관의 전화번호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용주 의원님, 그리고 사모님.

시도 때도 없이 날라 오는 문자 메시지만 아니라면, 의원님의 의정활동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얼마 전 고위공직자 재산 공개 때 드러난 '서울 소재 소유 부동산 16채' 소식과, 뒤이어 사모님께서 지역구의 생활정보지에 실은 해명글이 너무나 황당해 이렇게 자판 앞에 앉았습니다. 주민들의 인식과는 사뭇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부장검사 출신이신데, 그 많은 부동산 취득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르거나 묵인하지는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집 없는 사람이 태반인 현실에서 국회의원 부부가 주택을 16채나 소유하고 있다는 건 누가 봐도 부적절한 상황입니다. 더욱이 사모님의 해명이 의원님을 선택한 지역 유권자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올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금귀월래라지만... 서울에만 주택이 16채라니
 

▲ 다주택 보유 논란에 휩싸인 이용주(전남 여수갑)의원의 아내가 지역 정보지에 실은 글 ⓒ 까치정보 캡쳐

사모님은 <존경하는 여수시민들께 드리는 글>을 통해 "최근에 다수의 여수 지인들에게서 저와 제 남편에 대한 괴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전화를 여러 통 받았다"며 부동산과 관련한 논란을 설명했습니다. "숫자상으로는 (부동산이) 많지만 실제로는 제가 현재 사는 집을 제외하고는 33m² 미만의 소형원룸이 거의 대부분"이라는 게 요지입니다. 그러면서 이 소형주택들이 현재 "장기임대사업으로 등록"되었으며 "정식으로 세금 내면서 운영"하는 것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이어 사모님은 "남편이 정치인이 되니 제가 검소하게 생활하고 노력하여 이룬 경제적 성취가 문제로 지탄을 받게 됐다"라며 "아내의 소규모 작은 주택 입대사업 때문에 뭇매를 맞고 있는 남편을 보며 제 직업을 잘못 선택했나 하는 후회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는 심정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주민들이 당혹스러워하는 건 지역구 국회의원 부부 소유의 부동산이 왜 서울에만 몰려 있느냐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부동산 16채'보다 '서울 소재'에 분노의 방점이 찍혀있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불과 한두 해 만에 수억 원이 올랐다는 노른자위 땅 강남 3구에 여러 채가 있다는 사실에 황당해하는 것입니다.

'금귀월래(금요일에 귀향했다가 월요일에 귀경한다는 의미)'라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일상을 십분 이해한다고 해도, 이쯤 되면 생활권이 아예 서울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노컷뉴스>는 지역구인 전남 여수에는 의원님의 주택이 없다고 보도했더군요.

'검소하게 이룬 성취'? 저는 사치스럽고 무능한 걸까요
 

▲ 부동산 가격 안정을 위한 정부의 종합 부동산대책을 하루 앞둔 지난 9월 12일 서울 송파구의 한 상가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 시세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서울 소재 부동산 16채가 '검소하게 생활해 이룬 경제적 성취'라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맞벌이 부부로 저 역시 누구보다 알뜰하고 검소하게 살아왔지만, 재산이라곤 지금 살고 있는 30평짜리 아파트 한 채가 전부입니다. 주택 마련은커녕 전세도 힘겨워 월세를 전전하는 많은 지역 주민들은 그 말에 한 번 더 상처를 입었습니다. 결국 그 나이에 그만한 부동산도 갖지 못했다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해왔거나 경제적으로 무능하다는 걸까요.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의원님댁을 비롯한 우리 사회의 지도층 대부분이 부동산 부자라는 사실을 아이들도 모두 알아버렸다는 겁니다. 철든 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들조차 장래희망을 '건물주'라고 담담히 말하는 세상입니다. 아이들조차 그런 되바라진 꿈을 갖도록 만든 건, 의원님과 사모님 같은 분들 때문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왜 나만 갖고 그러냐며 억울해하실 순 있겠습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정의당 심상정 의원이 언론에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고위공직자 셋 중 한 명이 강남3구에 주택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부동산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의 경우에는 54%에 이른다고 합니다. 부동산과 관련이 깊은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 고위공직자의 경우에도 각각 75%와 60%가 주택을 2채 이상 가진 다주택 소유자라는 통계도 있으니 말입니다.

'건물주'들 앞에서야 사모님의 해명이 설득력 있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대다수 지역 주민들에게는 다른 나라 이야기일 뿐입니다. '장기 임대사업으로 등록돼 정식으로 세금을 내고 있다'는 항변은 그저 당연한 것일 뿐, 그렇게 당당해 할 내용은 못됩니다. 아무리 세금 포탈을 일삼는 불량한 임대사업자들이 많다기로서니 그걸 자랑삼을 순 없지 않겠습니까.

고향에 사는 한 고등학교 동창생이 그러더군요. 일각에서 이번 일로 서울에서의 공직 경험을 살려 고향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의원님의 다짐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는 지역구 주민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적어도 집 없는 서민들을 대변할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나아가 이들 사이에서는 정치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습니다. 선거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이에게 투표하지 않고, 자신이 선망하는 이를 뽑아온 오랜 관행을 이번 일로 깨달아가고 있다는 전언입니다. 지금껏 의원님과 같은 '고향 여수가 낳은 인물'을 뽑았지만, 앞으로는 평생을 고향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온 이에게 투표하겠다는 다짐입니다.

요컨대, 진정 고향을 사랑하고 지역구 주민들의 삶으로 들어가고자 한다면, 사유재산권과 영리활동, 거주이전의 자유를 운운하기에 앞서 그 많은 서울 소재 부동산부터 처분하셔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든 고향을 떠날 준비가 돼 있는 것으로 비치면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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