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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날, '한글 파괴' 기사는 그만 보고 싶다

[서평] 민주주의 관점에서 본 한글 이야기 '한글민주주의'

등록|2018.10.08 10:06 수정|2018.10.08 10:06
매번 한글날 무렵이면 무분별한 번역투와 외래어, 신조어 사용을 질타하며 '한글 파괴' 현상을 개탄하는 기사들이 쏟아진다. 때론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까지 언급하면서 세종대왕의 창제 정신을 기려 '올바른 우리말'을 써야 한다고 자못 준엄하게 꾸짖기까지 한다.

1년에 한 번만이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한글의 의미를 돌아보자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기사를 볼 때마다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대체 '올바른 우리말'이 뭘까? 뭐가 '올바른 우리말'이고, 뭐가 '올바른 우리말'이 아닌지는 누가 정하는 거지? 같은 의문이 피어올랐다.

그래서 <한글민주주의>(최경봉 지음, 책과함께 펴냄)를 읽었을 때 반가웠다. <한글민주주의>는 내게 '그래, 네 생각이 맞아'라고 말을 거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사회 구성원 공동의 소유물"
 

▲ <한글민주주의> 표지. ⓒ 책과함께

이 책은 제목 그대로 민주주의라는 관점에서 한글을 바라본다. 저자인 최경봉 원광대학교 교수는 "언어와 문자의 선택과 유지에는 구성원의 합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16쪽)고 강조한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야기다. 언어 혹은 문자는 사회 구성원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도구이고, 사회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한 언어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글의 역사에는 구성원의 합의를 무시한 국어정책이 결국 실패로 끝난 사례가 여럿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주시경과 최현배, 김두봉이 주창했던 '풀어쓰기'다. 예를 들어 '너를 사랑해'를 'ㄴㅓㄹㅡㄹㅅㅏㄹㅏㅇㅎㅐ'로 쓰는 방안을 추진한 것이다.

이런 주장은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었다. 우리가 이미 '모아쓰기'에 익숙해져서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할 뿐이지 본디 음소 문자(하나의 문자 기호가 한 개의 낱소리 즉, 음소를 표기하는 문자를 의미한다. 한글에서는 'ㄱ', 'ㄴ', 'ㅏ', 'ㅑ 등'의 자음, 모음 24자가 음소다)인 한글을 음절(말을 할 때 가장 쉽게 직감할 수 있는 발화의 최소단위. 한글에서는 자음과 모음을 음절 단위로 묶어서 '가', '나' 등으로 표기한다) 단위로 모아쓰는 것이 오히려 특이한 일이기 때문이다.

영어 알파벳과 비교하면 한글의 표기 방식이 얼마나 독특한지 알 수 있다. 한글은 알파벳과 같은 음소 문자이고, 알파벳 표기 방식이 바로 '풀어쓰기'다. 다시 말해 'ㄴㅓㄹㅡㄹㅅㅏㄹㅏㅇㅎㅐ'라는 표기가 보편적인 음소 문자의 표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풀어쓰기'에는 여러 장점도 있었다. '풀어쓰기' 주창자들은 '풀어쓰기'의 장점으로 ▲모아쓴 글자에 비해 읽기와 쓰기가 쉽다 ▲기계화가 용이해진다 ▲단어를 한 덩이로 표기하게 되면서 철자법이 간편해진다 ▲한자 폐지를 앞당기는 계기가 된다 등을 꼽았다. (<우리말의 수수께끼> 222쪽~223쪽)

'풀어쓰기' 주창자들은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풀어쓰기'의 이상을 현실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남한에서는 1953년 12월 국어심의회 한글분과위원회에서 '풀어쓰기' 안이 국가정책으로 채택됐고, 북한에서도 김두봉 등이 '조선어 신철자법'이라는 이름으로 '풀어쓰기'를 추진했다.

하지만 나름대로 타당성도 있고, 한때 국가정책으로 채택되기까지 했던 '풀어쓰기'도 결국 대중의 관습을 거스르지는 못했다.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모아쓰기' 전통을 바꿀 수는 없었던 것이다. '풀어쓰기'의 실패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언어나 문자는 어떤 개인이나 한 단체의 독점물이 아니고 우리 사회 구성원 공동의 소유물이라는 점에서, 개인이나 단체나 정부기관의 힘으로 일시에 바꾸어 놓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 <우리말의 수수께끼> 224쪽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회 구성원들이 규범에 맞지 않는 말을 쓰는 것보다 일부 정치가나 전문가들이 대중의 언어생활을 고려하지 않은 규범, 대중과 유리된 규범을 일방적으로 정하고, 대중들을 향해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 훈계를 늘어놓는 행태가 더 문제일 수 있다.

'동탯국', '북엇국'… 현실과 맞지 않는 국어 규범

그렇다면 맞춤법을 비롯한 국어 규범은 얼마나 대중의 언어 사용을 잘 반영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쉬운 점이 많다.
 

▲ 서울 광화문에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동상이 있다. ⓒ Pixabay


예를 들어 '동태국', '북어국'을 각각 '동탯국', '북엇국'으로 써야 한다는 사실은 국어 규범이 대중의 언어생활과 상당히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한글 맞춤법 4장 4절 30항은 '순우리말이 포함된 합성어에서 뒷말의 첫소리 앞에서 소리가 덧나는 경우 사이시옷을 받치어 적는다'고 규정하고 있어 '동태국'과 '북어국'은 사이시옷 규정이 적용된다.

저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복수 표준어의 폭넓은 활용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은 2011년 8월 '간지럽히다', '맨날', '허접쓰레기' 등과 같이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표준어 대접을 받지 못한 단어 39개를 표준어로 지정한 바 있다.

최경봉 교수는 언어 현실을 인정해서 이 같은 복수 표준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사이시옷 규정을 다시 예로 들면 '동태국/동탯국', '북어국/북엇국'을 모두 표준어로 인정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 말은 곧 맞춤법, 띄어쓰기 등의 각종 국어 규범을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대중의 관습과 언어 현실을 고려해 조정해야 할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뜻이다.

"표준어는 학문이 아니라 생활의 문제"

돌이켜보면 나는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 대중을 질타하는 기사에서 느껴지는 엘리트주의, 계몽주의가 싫었다. <한글민주주의> 속 표현처럼 "표준어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은 생활의 문제가 아닌 학문의 문제가 되어버린"(61쪽)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풀어쓰기' 주창자들이 그랬듯이 그들의 주장에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고 해도 소수의 전문가, 정치가가 '올바른 우리말'이 뭔지를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대중들이 그에 따르지 않는다고 꾸짖는 듯한 행태가 불쾌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이었지만, 그런 기사를 볼 때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한글은 일부 학자나 정치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중이 일상에서 늘 사용하는 도구이자 모두의 소유물이다. 표준어를 결정하는 것은 학문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다. '올바른 우리말'이 무언지를 결정하는 이들은 대중이어야 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야말로 한글날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전문가가 결정한 대로 그저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대중 스스로 한글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우리말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올바른 우리말'을 함께 만들어나갈 때 비로소 우리는 한글의 주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자세가 정말 한글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한글의 의미를 다시 되짚는 자세 아닐까?

그래서 올해 한글날에는 이제껏 매번 보던 '한글 파괴' 현상을 개탄하는 기사와는 좀 다른 기사를 보고 싶다. '올바른 우리말'을 사용하지 않는 대중을 질타하는 기사가 아니라 대중이 현행 국어 규범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한글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말하는 기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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