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전화로 예약... 인터넷 없이 어떻게 여행했을까
비디오테이프 보고 떠난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만의 매력
▲ 사운드 오브 뮤직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하는 것으로 오스트리아 여행 준비는 시작되었다. 딱히 어떤 이유가 있었다기 보다는, 그래도 오스트리아를 가는데, 그 중에서도 찰스부르크라는 도시를 가려고 하는데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지 않고 간다는 것은 마치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갖고 가지 않는 것처럼 불경(?)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는 그랬다. 인터넷만 접속하면 수많은 여행 정보가 쏟아지던 때도, 와이파이와 스마트폰으로 필요할 때마다 정보를 찾아볼 수 있었던 때도, 내가 맞게 가는지 아닌지를 실시간 지도로 확인할 수 있었던 때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여행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그 때의 여행이 더 낭만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철수부르크에 도착했을 때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짐을 늘리기 싫어서 한참을 고민했지만 결국엔 샛노란 접이식 우산을 기차 역에서 샀다. 그리고는 거스른 잔돈으로 공중전화에서 전화를 걸었다. 맞는지 틀리는지도 알 수 없는, 명함의 1/4 크기도 안 되는 아주 작게 표시된 전화번호 하나만 믿고 찰스부르크에 온 것이다.
신호가 가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사운드 오브 뮤직> 투어가 있냐고 물었다.
있다고 했다. 오늘, 당장 참가할 수 있냐고 물었고, 오후 2시에 시작하는 게 있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예약하겠다고, 픽업해줄 때 돈을 주겠다고 하고 만날 시간과 장소를 정하고는 통화를 마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여행사 직원도 서로 뭘 믿고 전화 한 통으로 그런 얘기들을 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기차역에서 기다리다 시간에 맞춰 우산을 펼쳐 들고는 약속 장소로 향했다. 기차역 주변의 풍경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다지 멀지 않은 약속 장소는 생각보다 찾기 쉬웠다. 지도가 없었는데도.
잠시 후 도착한 여행사 직원과 간단한 인사 후 올라 탄 45인승 대형버스 안은 나를 당황시켰다. 동양인은 오직 나 한 사람뿐이었고 모두 백인들이었던 것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어렵사리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얼마나 갔을까. 드디어 버스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 장소에 여행객들을 내려주었다.
가끔씩 사람의 감정이란 걸 과연 말이나 글로 표현할 수 있는가란 생각을 할 때가 있다. 형체가 없어 눈으로 볼 수 없는 사람의 감정이 과연 '글'이라는 것으로 시각화가 가능한가라는 그런 생각.
그때가 그랬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주인공 폰트랩 대령의 저택을 바라보면서, 폭우 속에서 비를 피한 채 리즐과 롤프가 함께 춤을 추며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곳에 발을 내딛으면서 느꼈던 감정은 그 어떤 말이나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동 그 자체였다. 7명의 아이들과 마리아 선생님, 그리고 폰트랩 대령의 모습이, 그들이 불렀던 노래가, 서로에게 전했던 대화들이 되살아 나는 듯했다.
어쩌면 그 때가 처음으로 실제 영화 촬영장소를 가봤기에 그랬으리라고 어림짐작을 해보지만, 단순히 그렇다고 하기엔 그때의 감동은 살아있는 모짜르트를 만난다 하더라도 가질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것이었다.
▲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영화 [킹콩], [씨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의 배경 ⓒ 김원규
▲ KL 트윈타워. 영화 [앤트랩먼트] 촬영지 ⓒ 김원규
그리고 그때의 경험은 긴 시간이 흘러 뉴욕과 홍콩 그리고 마카오와 쿠알라룸푸르 같은 곳은 여행할 때마다 비슷한 감동을 나에게 선물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는 <러브 어페어>와 <킹콩>의 감동을, 홍콩에서는 <천장지구>와 <중경삼림?의 추억을, 마카오와 쿠알라룸푸르에서는 <도둑들>과 <앤트랩먼트>의 긴장감을 선물 받았다.
이제는 세상이 좋아져 여행 중이라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볼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럽게 여행 전에 여행지에 관한 영화를 보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보며, 그 영화에 대한 자료를 찾으며 그 곳에 대해 느꼈던 흥분과 기대감을 잊을 수가 없어서. 여행이 줄 수 있는 또 다른 감동을 잊을 수가 없어서.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저서로는 <영화를 보고 나서 우리가 하는 말: 영화에서 찾은 인문학 키워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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