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관련 질의응답이 오가야 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아래 법사위) 국정감사가 자유한국당의 '제주 강정마을 물어뜯기'로 얼룩졌다. 특히 여상규 위원장은 여야 간사 간 합의도 없이 강정마을 재판 판사를 국정감사장에 불러내려고 해 더불어민주당의 반발을 샀고 국감은 결국 파행에 이르렀다.

김도읍 간사를 비롯한 법사위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18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회 법사위 서울고등법원·서울지방법원 등 국감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4부 이상윤 부장판사를 국정감사장에 불러내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 14부는 "원고(국가)는 피고(강정마을 주민 등)에 대한 사건 소를 모두 취하하고 피고들은 이에 동의한다"는 내용의 강제조정안을 정부에 보냈다. 이에 정부는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해군이 제기한 약 34억 원 규모의 구상권 청구 소송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 측은 "정부와 사법부 간의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제는 여 위원장이 이 부장판사의 출석과 함께 민중기 서울지방법원장에게 그의 출석 의사를 확인하라고 요청하면서 벌어졌다(관련기사 : 고성 오간 법사위... "나가려면 나가라!"는 여상규 위원장). 간사 간 합의가 없었음에도 오전 국정감사에서 같은 요구를 한 여 위원장은 이춘석 민주당 의원과 고성을 주고받기도 했다.

여 위원장은 오후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다. 민주당은 즉각 반발했고, 야당인 바른미래당도 한국당과 여 위원장을 지적하고 나섰다. 민주당 간사인 송기헌 의원은 "(합의되지 않은 이를 간사 간 합의도 없이 국정감사장에) 출석하라고 한 것은 국회법상에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부적절한 처사다"라며 "(여 위원장이) 해당 판사를 나오도록 권고한 것을 철회해야 국정감사를 진행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같은 당 표창원 의원도 "(구상권 청구를 철회한 것이) 국고손실이라면 이의신청을 하지 않은 정부에 질의해야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 판사를 나오라고 실명을 거론하는 건 맞지 않다"라며 "한국당 의원들이 판·검사 시절 저지른 과거 간첩 조작 등 사건을 두고 한국당 의원들 지금 국정감사장에 나오라고 하면 나오겠나"라고 강조했다.

바른미래당 간사인 오신환 의원은 "이 부장판사 출석에 민주당이 동의한다면 우리도 반대하지 않겠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회의를 진행하면서 쌓아온 관례가 있다"라며 "아무리 상황이 특수해도 파행이 불 보듯 뻔히 보이는 (한국당) 한쪽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채이배 의원도 "저 역시 앞서 신청한 증인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라며 "제가 이를 두고 국정감사 현장에서 '신청한 사람 증인으로 불러내라'고 하지 않지 않나. 국회 내 법과 원칙과 관례를 존중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더불어민주당, 한때 전원 퇴장
 
특히 금태섭 민주당 의원은 국감장에 일선 판사를 불러내는 것에 큰 우려를 표명했다. 금 의원은 "한국당이 (일선 판사가 국감장에 나오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법사위원장 자리에 앉으신 분이 법원장을 시켜 판사에게 나올지 안 나올지 물어보라고 하는 건 판사로선 그 자체를 압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라고 강조했다.

또 "어쩌다 판사 한 명이 출석에 응한다면 이후 나오지 않은 사람은 낙인이 찍힐 수밖에 없다"라며 "위원장이 발언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우리 법사위가 재판에 관여하려고 한다는 괜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여 위원장은 기존 의견을 고수했다. "이 부장판사가 출석했는지, 법원장에게 이 부장판사의 출석 의향을 알아봤는지도 물어선 안 된다"는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에도, 여 위원장은 오후 국감이 재개되자마자 "이상윤 부장판사 출석했나, 출석 안 했나요"라고 물었다. 급기야 민주당 의원들이 반발하며 모두 퇴장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오후 4시 30분까지 국감이 진행되지 못했다.
  
한국당은 계속해서 이 부장판사의 출석을 요구했다. 장제원 의원은 "국가 재정을 거덜 낸, 국익을 엄청나게 침해한 수상한 조정에 많은 국민이 분노하고 있고 법원 내부에서도 의아해하고 있다"라며 "이런 중대한 상황과 관련해 해당 판사의 결정에 혹시 외압이나 정치적 영향이 없었는지 확인하는 건 국정감사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도읍 의원은 "여 위원장이 나름 조정안을 낸 것으로 평가한다"라며 "여 위원장의 발언을 철회하라고 하는 건 위원장을 겁박하는 행위다, 그래선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이날 국감에선 사법농단 관련 이야기가 오후 늦게까지 거의 나오지 못했다. 이날 피감기관인 서울지방법원은 사법농단 관련자들의 구속·압수수색영장을 잇따라 기각한 곳이기 때문에, 이날 국감은 시작 전부터 주목을 모아왔다.

법사위 소속의 민주당 의원은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사법농단 관련 질의를 제대로 해야 하는데 파행이 계속돼 답답하다"라며 "그렇다고 개별 재판과 관련된 일선 판사를 부르는 사례를 만들 순 없잖나, 국감장을 빠져나온 것도 고육지책이다"라고 말했다.

이날 국감은 오후 4시 30분이 돼서야 정상 진행될 수 있었다. 여 위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의 발언 철회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나, 민주당은 결국 국감장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