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항쟁 70주년,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디딤돌 마련해야"
19일, 여순항쟁 70주년 '사진과 함께한 뮤직토크' 진행
▲ 방송인 출신이자 전 여수시의회 김유화 의원의 사회로 주철희 박사와 여순항쟁 토크를 진행 중인 모습 ⓒ 심명남
여순항쟁 70주년 토크쇼에서 주철희 박사가 한 말이다. 이 말을 들은 청중들은 박수를 쏟아냈다.
▲ 이번 행사를 주최한 <여수넷통뉴스> 엄길수 대표와 임원들의 모습 ⓒ 심명남
이번 행사를 주최한 엄길수 <여수넷통뉴스> 대표는 "역사의 가치는 사람이 만든다"라면서 "올해 70주년을 맞이한 '제주4.3항쟁'에서 문재인 정부가 희생자 위령제와 대규모 문화행사를 개최해 국민들의 관심과 주목을 받았다. 대통령의 4.3추념사는 큰 감동을 안겼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엄 대표는 "이제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아 여수지역사회에서도 할 일을 찾았으면 한다"라며 지역민의 관심과 참여를 호소했다. 지역에서 펼쳐진 여순10.19 특별법제정 서명운동 동참 촉구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김경만 <여수뉴스타임즈> 대표는 "그동안 여순항쟁 행사는 유가족들의 입장을 대변하지 못했다. 여수시가 특정단체를 의식한 관 주도 행사를 하다 보니 시민의 관심이 적었다"라면서 "이젠 시민의 힘으로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이해 여순항쟁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의 디딤돌을 마련하자"고 덧붙였다.
종군기자 칼마이던스와 호남신문 이경모씨 담은 '그날의 참상'
▲ 예울마루 행사장에서 지난 12일부터 오는 12월 16일까지 ‘가장 위대한 기록 <라이프>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 심명남
▲ 여순항쟁 당시 국군이 투입된 가운데 불타고 있는 여수시내 모습. 당시 여수시내의 1/3이 불탔다. ⓒ 심명남
▲ 여순항쟁 당시 미군이 기관총을 든 가운데, 운동장에 모여있는 여수시민의 모습 ⓒ 심명남
특히 이번 라이프 사진전은 우리 현대사의 가장 큰 아픔을 가지고 있는 여순항쟁 당시의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히 담아낸 종군기자 칼마이던스의 작품과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 지평을 연 광양출신 이경모씨가 직접 찍은 여순사건 사진 특별 전시코너를 마련했다.
역사학자 주철희 박사가 여순항쟁 70주년을 맞아 특별전에 전시된 사진 해설을 하고, 당시 일어난 일들을 생생히 들려줬다. 이날 제주4.3유족회에서 40여 명이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여순항쟁의 도화선이 된 제주4.3항쟁으로 인해 그동안 고통 받았던 여수 지역 유족들과 아픔을 나눴다. 여순사건 특별법제정을 위한 서명운동도 이어졌다.
▲ 행사장에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명을 받는 모습 ⓒ 심명남
노래로 승화된 그날의 아픔, 여순항쟁
▲ 빨치산 노래전문 밴드인 산오락회가 산동애가와 부용산을 부르며 분위기를 한층 돋웠다 ⓒ 심명남
'여수야화'는 공식음반으로 나온 노래다. 1949년 7월에 남인수가 불렀고 목포의 눈물을 작곡한 이난영의 오빠인 이봉용이 노래를 작곡했다. 여수야화는 이승만 정부가 음반출시 두 달 만에 금지한 대한민국 최초의 금지곡이다.
또, 산동애가는 구례 산수유마을 19살 먹은 처자의 이야기다.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처자에게는 세 명의 오빠가 있었다. 큰오빠는 일제감정기 때 징용으로 끌려가 죽고, 둘째 오빠는 10월 말에 국군에 의해 총살을 당하고 셋째 오빠마저 또 국군에 의해 죽게 된다.
기구한 인생살이에 어머니가 딸을 잡고 셋째 오빠마저 죽으면 대가 끊긴다고 하니 막내딸인 백순례가 자기 오빠를 대신해 죽으러 간다는 내용이다. 여순사건 때 흔했던 '대살'(대신해서 죽음)이 벌어지는데, 산동애가는 셋째 오빠를 구하면서 불렀던 구슬픈 노래다.
▲ 왜 여순항쟁인가? ⓒ 심명남
▲ 한 관람객이 여순항쟁 9일간의 기록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 심명남
여순사건 전문가 주철희 박사는 "당시 14연대 군인들이 여수, 순천, 광양을 점령했다는 것은 다 거짓이다"면서 "14연대 군인들의 목표지는 딱 한 곳, 지리산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제주에서 4월 3일 무장봉기가 일어나고 산으로 들어갔듯 부당한 명령을 어기고 남아있으면 죽음을 당하기 때문에 지리산으로 향하면서 이를 토벌하려는 국군과 교전이 일어난 지배 권력자의 부당함에 맞서 싸운 동학과 같은 궤를 이룬다"라고 말했다.
"'남로당의 지령에 의한 반란'으로 굳힌 박정희"
▲ 여순항쟁 당시 군인들에게 좌익으로 색출된 시민들 모습 ⓒ 심명남
▲ 붙잡힌 군인들의 모습 ⓒ 심명남
그는 "지창수가 왜 14연대의 반란의 주모자로 등장하냐면, 정부는 끊임없이 남로당지령에 의해 여수지역 지방좌익과 결합되어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게) 지금까지의 정설을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려면 중대장이 이곳 출신이어야 하는데 김지회는 함경남도 함흥출신이다. 지창수를 반란의 주모자로 몰아 남로당의 지령에 의한 반란으로 공고화시키기 위한 박정희 짓이었다"라고 주장했다.
▲ 라이프 사진전 관람하는 시민들의 모습 ⓒ 심명남
▲ 여순항쟁 당시의 모습을 현장에서 생생히 담아낸 종군기자 칼마이던스의 작품과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 지평을 연 광양출신 호남신문 이경모 기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설명하는 주철희 박사 모습 ⓒ 심명남
경찰과 군경들을 가해자라고 지목하지 않습니다. 그분들은 어쩔 수 없이 국가의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죠. 여수에 있는 보훈단체분들은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닙니다. 국가를 향해 가해자라고 말하는 것이지 이분들에게 가해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순항쟁에 관해 중요한 건 특별법이기도 하겠지만, 이 사건을 올곧게 기억할 수 있는 장들을 마련하는 겁니다. 우리부터 '반란'이라며 잘못 인식하고 있는데 아이들에게 '항쟁'이라고 부르라고 요구하는 건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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