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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 타러 왔다고 유죄? '전과 26범'의 최후변론

[인터뷰] 25일 1심 선고 앞둔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등록|2018.10.24 21:03 수정|2018.10.25 12:19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백발에 꽁지머리를 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58·이하 전장연 대표)는 '전과 26범'이다. 물건을 훔치거나 누군가를 다치게 해서 받은 게 아니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지하철 리프트에서 자꾸 장애인들이 떨어져 다치고 죽었다. 그래서 지하철 선로에 내려가 지하철을 멈춰 세웠다. 타인의 도움 없이 장애인은 버스에 올라탈 수 없었다. 그래서 힘겹게 버스에 올라 쇠사슬로 버스 좌석과 몸을 묶었다. 장애인 시설을 운영하는 재단의 비리를 묵인하지 말라며 종로구청 앞에서 농성을 했다. 지난 1999년부터 벌인 투쟁은 하나하나 전과로 기록됐다.

지금도 그는 '자유의 몸'이 아니다. 지난 2016년 10월 7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지난 1월 박 대표에게 2년 6개월을 구형했고 1심 선고가 오는 25일로 예정돼 있다. 선고를 앞두고 24일 오전 9시 서울 종로구 노들장애인야간학교에서 박경석 전장연 대표를 만났다.

"표 사서 버스 타는 게 미신고집회?"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재판이라면 이골이 났을 박경석 전장연 대표는 긴장하고 있었다. 1심 선고만 8개월을 기다려 진이 빠진 것도 있겠지만 이전 재판들과는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박경석 대표가 받고 있는 혐의는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위반(이하 집시법), 일반교통방해, 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등에 따른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 업무방해 등이다. 대부분 2014년에 발생한 사건들이다. 이전 재판과 비교해 혐의는 비슷할 수 있다. 다른 점은 그가 무죄를 주장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명백히 법을 어긴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유죄를 인정하고 재판부에 선처를 바라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유무죄를 다툴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박 대표는 집시법 위반의 경우 표를 사서 버스에 타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지난 2014년 4월 20일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사서 버스를 타러 갔다"라며 "그런데 장애인 수백명이 버스를 타러 왔다고 경찰들이 우르르 왔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버스에 타려고 시도하는 우리를 경찰이 안거나 업어 태우지는 못 할망정 최루탄을 쐈다"라고 했다.

박 대표는 사법부에 되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표를 산 사람들이 버스에 타려고 하는 것을 처벌하려는 사법부가 왜 2005년에 도입하라고 한 저상버스를 만들지 않은 사람들은 가만히 놔두나"라며 "형평성 측면에서 그쪽에도 죄를 물어야 하지 않나"라고 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국토교통부 장관은 저상버스 도입을 포함한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하지만 법 제정 후 9년이 흐른 2014년에도 장애인들은 고속버스를 타고 고향에 내려갈 수 없었고 그는 버스에 타려고 한 것이다.

장애등급에 걸려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을 수 없던 고 송국현씨 집에 화재가 발생해 전신 3도 화상을 입은 다음 날인 그해 4월 14일, 국민연금공단에 몰려간 것도 문제가 됐다. 당시 전장연 회원들은 국민연금공단 장애등급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뒤 센터 항의방문을 시도했다. 박경석 대표가 미신고 집회인 항의방문을 주관·진행했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그 당시 일정 때문에 기자회견 이후 자리를 떠서 현장에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명동성당에 들어갔다고 주거침입?"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공동주거침입, 공동재물손괴 혐의도 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엄청난 죄를 저지른 것 같다. 이는 2014년 8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에서 비롯됐다. 박 대표는 "교황님이 방한해 꽃동네를 방문한다는 계획이 발표됐다"라며 "교황님이 꽃동네에 방문하면 안 그래도 장애인이 시설에 거주하는 것을 소외, 배제의 문제로 모는 게 아니라 '해결'로 보는 인식에 정당성을 실어준다고 생각했다"라고 했다.

"기본적으로 시설에서 집단 거주하는 것은 인권침해적 요소가 많다. 한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살며 밥은 물론 여러 활동을 같은 시간에 집단적으로 할 것을 강요받는 구조로 감옥과 비슷하다. 교황님이 꽃동네에 가기보다 지역사회에 나와 자립한 장애인을 만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그런 내용이 담긴 서한을 전달하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그는 "2014년 8월 13일 경찰과 성당 경비원 등이 우리가 탄 차를 막았다"라며 "의도하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차가 명동성당 입구에 설치된 차량 차단기를 밀쳤다"라고 했다. 그 결과 차단기가 고장 나, 공동재물손괴와 공동주거침입 혐의를 받게 된 것이다. 박 대표는 "명동성당은 아무나 찾아갈 수 있는 곳 아니냐"라며 "사회적 약자에게 문을 개방해야 하는 곳인데 들어갔다고 주거침입이라니 이해할 수 없다"라고 했다.

"마틴루터 킹, 간디도 신고하고 행진했나"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이외에도 지난 2014년 세월호 집회·노동절 집회 등에 참가해 도로를 점거해 교통을 방해한 혐의, 지난 2016년 9월 13일 '저상고속·시외버스 도입'을 촉구하기 위해 시외버스 앞바퀴 밑에 들어가 출발 지연을 시켜 승객 수송 업무방해를 한 혐의 등도 받고 있다.

쇠사슬로 몸을 묶고 지하철을 연착시키고 도로를 점거하는 등의 방식으로 꼭 싸워야만 할까. 박 대표는 "시민들이 불편을 겪는 것을 안다"라면서도 "우리 존재를 알리기 위해, 우리 문제를 사회가 심각한 인권 침해의 문제로 받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하철을 안전하게 이용하고 싶다, 버스를 타고 싶다고 하면 어느 누구도 반대하지 않는다. 이동할 권리는 국가가 기본적으로 제공하는 시민적 권리다. 그 권리를 달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를 장애인들이 기본적으로 누려야 할 것, 인권적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시혜적으로 접근한다. 그러다보니 10원에서 20원 정도로 올려주면서 인심 썼다는 식으로 나온다."

박 대표는 "우리가 계속 싸워서 2007년에서야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됐다"라며 "현재 보건복지부 예산의 약 60%가 싸움을 통해서 얻어낸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여전히 OECD 기준으로 꼴찌다"라며 "우리가 얻어내기 전에는 개인과 가족이 모든 것을 부담해야 했고 그래서 부모가 장애인 자녀를 목 졸라 죽이거나 장애인들이 시설에 가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여전히 장애인이 집에서 불타 죽고 남은 가족에게 부담이 될까 아버지가 자기 자식을 새벽에 목 졸라 죽이고 지하철 에스컬레이터에서 떨어져 죽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계속 싸우는 것이다"라며 "이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사법부는 집시법 위반이냐 아니냐, 실정법에 위반되냐 아니냐만을 두고 판단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는 "마틴 루터 킹, 인도의 간디는 미리 신고하고 행진, 시위했나"라고 덧붙였다.

오는 25일 1심 선고

장애인이 죽고 다치거나 온몸이 바스러지게 싸워야 조금씩 바뀌었기 때문에 박 대표는 '집유(집행유예) 인생'을 살았다. 집행유예 기간 중 또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쌍집'인 적도, 집행유예 4개를 선고받은 상태인 적도 있다. 그나마 최근 약 1년은 오랜만에 집행유예에서 자유로운 기간이었다. 하지만 오는 25일 오전 9시 50분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있을 선고결과에 따라 자유는 끝이 날 수 있다.

박 대표는 무죄이길 바라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만약 법정 구속되면 서울구치소가 아닌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있는 동부구치소로 보내줬으면 좋겠다"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내가 감옥에 가야만 장애등급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기꺼이 갔다 오겠다"라고도 했다.

마지막으로 박경석 대표가 지난 1월 한 최후변론을 전한다.
 

▲ 장애인 인권 활동을 하며 '전과 26범'이 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상임대표. ⓒ 이희훈


"제가 참여했던 그 모든 집회와 시위는 중증장애인들이 이 세상에서 '폐기물'로 처분 당하지 않기 위해 소리 높여 외친 목소리였습니다. 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이 사회에서는 무척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중증장애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그 권리를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차별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권리가 뿌리 내리게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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