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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독수의 '청년에게 고함'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 36회]

등록|2018.10.27 16:08 수정|2018.10.27 16:08

   

신규식 선생이 거주했던 방에서 바라본 진독수 선생 집신규식 선생은 상하이 남창로 100농 5호 2층 단칸방에 살면서 건너편 집에 살던 진독수(陳獨秀) 선생과도 가까이 지냈습니다. 진독수 선생은 중국 공산당의 창시자이자 유명한 사상가입니다. 1915년 <신청년>을 창간하면서 중국 전역에 근대 사상계몽 운동을 일으킵니다. 이 잡지가 창간된 곳이 바로 예관 신규식 선생이 살았던 남창로 100농 5호 그 건물입니다. ⓒ 김종훈




다음으로 진독수의 글 <청년에게 고함>의 일부를 소개한다.

자각이란 무엇인가? 신선하고 활발한 가치와 책임을 깨달아서 스스로 비하하지 않는 것이다. 분투란 무엇인가? 그 지혜와 능력을 발휘하여 진부하고 노후한 것을 배제하고 그것을 보기를 마치 원수와 같이, 홍수나 맹수와 같이 대하여 그들과 함께 어우르지 않음으로써 그 세균에 감염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아, 우리의 청년이여! 과연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청년들의 연령을 보면, 10사람 중 5사람은 나이는 청년이지만 육체는 노인이다. 나이나 육체는 청년이지만 뇌신경은 10사람 중 9사람이 노인이다. 윤기있는 머리카락과 윤택한 얼굴, 반듯한 허리와 넓은 가슴은 분명 청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이 머리 속에서 생각하고 가슴 속에서 품고 있는 것은 한결같이 저 진부하고 노후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진독수 선생천두슈(중국어 정체자: 陳獨秀, 간체자: ??秀, 병음: Chen Duxiu, 1879년 10월 8일 ~ 1942년 5월 27일)는 중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이자 언론인, 혁명가, 정치가이다. 호는 실암(實庵), 자는 중보(仲甫), 필명은 척안(隻眼). 중국공산당의 창립 구성원으로서 첫 번째 중앙위원회의장과 중국 트로츠키주의 조직인 중국좌익반대파의 중앙상무위원을 지냈다. ⓒ 위키피디아


 처음에는 항상 신선하고 활발하지만 차츰 진부하고 노후된 분자에게 동화된 것도 있고, 점차 진부하고 노후된 분자의 세력의 강대함에 두려움을 느껴 뒤를 돌아보며 주저하여 대담하고 완강한 투쟁을 하지 못하는 것도 있다. 사회에 가득찬 분위기는 가는 곳마다 진부하고 노후하지 않는 것이 없기 때문에, 약간의 신선하고 활발한 것을 찾아서 질식상태에 있는 절망감을 해소해 보려고 하지만 아득할 따름이다.

이러한 현상이 인체에 퍼지면 죽을 수밖에 없고, 사회에 퍼지면 망할 수밖에 없다. 이 병은 크게 한숨을 쉬며 탄식한다고 해서 치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영민하게 자각하고 용감하게 분투하는 청년의 한두 사람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지능을 발휘하여, 여러 사상을 이해한 다음 취사선택하여 ㅡ 무엇이 신선하고 활발하여 오늘날의 생존경쟁에 적합한 것이며, 머릿속에서 배제되어야 하는가 ㅡ 날카로운 칼이 철(鐵)을 끊고 잘 드는 칼이 마(麻)를 자르듯 우유부단한 생각을 버리고, 자기를 구제하고 남을 인도한다면 사회는 밝고 평온한 날이 찾아 올 것이다.

청년이여, 이와 같은 것을 스스로 감당할 수 있겠는가? 만일 시비를 가리려고 한다면 다음과 같은 6개 항목을 제시하겠다. 냉정한 마음으로 살피기 바란다. 평등한 사람이란 각자가 자주의 권리를 갖는 것이다. 결코 남을 노예로 할 권리도 없으며, 또한 스스로 노예가 될 의무도 없다. 노예란 옛날의 약자가 강폭자의 황탈 때문에 자유의 권리를 잃어버린 자를 일컫는 말이다. 인권평등설이 성립된  후로부터 노예라는 이름을 혈기있는 사람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말이 되었다. 세상은 근세 유럽역사를〈해방의 역사〉라고 말하고 있다. 군권의 파괴는 정치지배로부터, 교권의 부정은 종교지배로부터, 균산설(均産說)의 홍기는 경제지배로부터, 여자 참정운동은 남성지배로부터의 해방을 각각 추구한 것이다.

해방이란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 그 자유ㆍ자주의 인격을 성취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손과 발로 따뜻함과 배부름을 도모하고, 입과 혀로 옳고 그름을 말하며, 마음과 생각으로 믿는 바를 행한다. 절대로 타인의 참견을 용납하지 않으며, 또한 자신이 주인이 되어 남을 노예로 삼는 일도 있을 수 없다.

내게 스스로 독립된 자주적인 인격인이라고 인정한 이상, 몸을 지키는 모든 행실ㆍ권리ㆍ신앙 등은 각자 고유의 지능에 의지할 뿐, 타인의 도리에 결코 맹종하거나 예속될 수 없다. 그렇지 못한 충효ㆍ절의는 노예의 도덕인 것이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도덕을 독립심과 용감함은 '귀족도덕'(Morality of Nobel), 비굴함과 복종은 '노예도덕(Morality of Slave)이라고 두 가지로 나누었다. 형벌을 가볍게 하고 부역을 덜어주는 것은 노예의 행복이다.

노예도덕을 기리고 찬양하는 것은 노예의 문장이다. 벼슬을 숭배하고 작위를 받는 것은 노예의 영광이다. 노예도덕을 찬양하는 큰 비석과 높은 묘는 노예의 기념물이다. 그러한 옳고 그름, 영화와 굴욕을 자신이 본위가 되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개인의 독립적이고 평등한 인격이 소멸되어 존재치 않으며, 그 일체의 선악행위는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공과(功過)를 매길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이를 노예라고 해서 누가 그르다고 말하겠는가? 누구든지 덕을 쌓고 공을 세우는 일에 있어서는 이러한 것을 먼저 잘 판별하여야만 한다. (주석 1)

주석
1> 앞의 책, 34~35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의열지사 박재혁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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