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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혁·이요원이 타던 그 버스, 이제는 안녕

IMF를 지나 분당-광화문 달리던 1005-1번 버스, 역사 속으로 사라지다

등록|2018.11.01 18:07 수정|2018.11.01 18:07
우리가 매일 이용하는 교통, 그리고 대중교통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전합니다. 가려운 부분은 시원하게 긁어주고, 속 터지는 부분은 가차 없이 분노하는 칼럼도 써내려갑니다. 교통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전하는 곳, 여기는 <박장식의 환승센터>입니다. - 기자 말    
 

▲ 지난 28일 폐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1005-1번 버스. ⓒ 박장식


"명찬이 오빠는 취해서 실려가고, 오빠가 바래다줬었죠. 1005-1번 좌석버스 타고..."

- 영화 <광식이 동생 광태> 중 윤경(이요원 역)의 대사


분당신도시에서 강남대로를 거쳐 서울 도심을 오가던 1005-1번 버스가 지난 28일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단 세 대가 1시간 간격으로 세 지역을 오가던 버스는 심야에는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과 대리기사들이 뒤엉켜 붐볐지만, 다른 시간대에는 찾는 이가 없던 대표적인 적자노선이었다.

그런데 1995년 개통, 23년간 운행된 1005-1번 버스는 광역버스의 시초나 다름없다. 이 노선을 기점으로 시내버스가 금단의 땅 같던 고속도로를 자유로이 달리기 시작했고, 많은 시외버스가 광역버스로 바뀌기도 했다. 1005-1번 버스가 국내 광역버스에 끼친 발자취를 다시 짚어본다.

고속도로 타고, 전철보다 빠르고...
 

▲ 1005-1번 버스는 분당과 강남, 광화문을 이으며 큰 성장폭을 이어갔다. (1995년 9월 13일 KBS 9시 뉴스 캡쳐) ⓒ 한국방송공사


1005-1번 버스는 분당신도시 입주가 시작된 1995년 개통했다. 이미 분당신도시에는 분당선과 서울특별시 면허의 1005번 버스가 있었지만, 1005번 버스는 수서동, 고속터미널 등으로 빙 돌아가 자동차보다 경쟁력이 약하며, 분당선은 수서에서 3호선을 갈아타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문제가 있었다.

1005-1번은 그간 어떤 버스도 이용하지 않았던 남산 1호터널을 통과했다. 한남대교를 거쳐 을지로 2가에 바로 도달하는 방식은 그간 서울 출근을 위해 빙 돌아가는 버스를 타던 사람들에게 큰 매력이 되었다. 또한 정체 시 크게 막히는 시내 도로 대신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한 점도 사람들의 구미를 당겼다.

당시 1005번은 분당에서 수서, 반포대교를 거쳐 1시간 반 정도면 서울 도심에 도달했고, 분당선과 3호선을 갈아타 서울 도심으로 향하면 1시간 10분이 걸렸다. 하지만 1005-1번을 타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강남까지는 40분, 도심까지는 막히지만 않으면 1시간이면 도달했다. 전철보다 빠른 버스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요금함에는 천원짜리 가득했던 그때 그 시절
 

▲ 버스카드 시범 도입이 이루어졌던 첫 번째 버스는 1005-1번이었다. (1995년 9월 13일 KBS 뉴스 캡쳐) ⓒ 한국방송공사


시간 단축 효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1005-1번 버스에는 조간신문이 좌석마다 비치되고, 공중전화가 버스마다 배치되었다. 1300원 받던 요금도 개통 한 달만에 천 원으로 내렸다. '마이카 시대로 버스업계가 적자'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용객이 대여섯 배 폭증했다. 당시 경향신문 기사에 따르면 "승객이 폭발적으로 늘자 20대를 더 투입한다"는 내용도 나온다.

1005번도 부랴부랴 노선을 분당-내곡 고속화도로를 이용하는 것으로 변경했지만, 1005-1번 이용객 폭주를 막기 어려웠다. 당시엔 강남과 광화문을 잇는 노선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출퇴근 시간에는 승객들이 통로까지 꽉꽉 들이차고, 금요일과 토요일 밤에는 퇴근객과 유흥객이 함께 탑승해 요금함이 천 원짜리로 들어차기까지 할 정도였다.

결국 조금씩 늘어난 버스의 인가 대수는 130여 대가 되었다. 수도권 동남부권에서 이 노선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돌았고, 수지에서 출발하는 지선이 생기는가 하면 강남대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서울 도심으로 향하는 급행 지선도 생겨났다. IMF로 인해 여럿이 어려웠다지만 1005-1번만은 그때 최호황기를 누렸다.

1005-1번 버스는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을 기록도 세웠다. 1995년 9월, 버스카드 시스템이 1005-1번과 1113번(경기 광주시-동서울터미널) 버스에 최초로 적용,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버스카드는 그해 12월 서울시 전체에서 쓰이기 시작한다.

또 1997년 4월에는 1005-1번 버스 안에서 전광판으로 다음 정류소 안내나 뉴스속보 등을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가 시행되기도 했다. 지금의 G-BUS TV의 대선배격인 이 전광판은 실시간 정보를 버스 안에서 얻기 어려웠던 시절, 당시 태동기였던 이동통신 기술을 대중교통 고객을 대상으로 이용한 첫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영원한 왕좌는 없다... 신분당선 개설로 타격
 

▲ 1005-1번은 심야버스로의 기능도 해냈다. 새벽이 깊어가면 갈수록 1005-1번을 기다리는 시민들의 줄은 길어져만 갔다. ⓒ 박장식


1005-1번이 일대에서 차지한 위치는 점점 다른 광역버스로 이어졌다. 1005-1번의 급행 지선이 9000번이 되어 28대를 가져갔고, 서판교, 용인, 광주 일대에서 출발하는 노선들도 1005-1번의 인가 대수를 가져갔다. 그럼에도 1005-1번은 2000년대 이후에도 10여 년간 분당과 서울을 잇는 대표 버스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005-1번의 위세는 신분당선 개통에 꺾였다. 2011년 개통된 신분당선은 1005-1번이 주요 수요처로 삼던 강남과 분당 간의 소요시간을 1005-1번의 30여 분에서 16분으로 대폭 단축했다. 소요시간을 무기로 성장한 버스가, 더욱 빠른 소요시간과 정시성을 무기로 한 철도노선과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었다.

결국 점점 이용객이 줄었다. 심야 수요 역시 2013년 올빼미버스가 생겨나며 큰 타격을 입었다. 실제로 경기도 교통 통계에 따르면 2014년 매일 8300여 명이 이용한 1005-1번은 2018년 2400여 명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결국 10월 27일은 1005-1번 버스의 마지막 운행날이 됐다.

지금의 광역버스 있게 한 일등공신

시대의 흐름을 타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1005-1번은 지금의 광역버스가 있게 한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이 노선을 기점으로 좌석버스들이 고속도로와 고속화도로 위에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고, 한 도시와 다른 도시를 빠르게 잇는 광역버스의 개념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운영에서 발상의 전환이 큰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증명했다. 1005-1번의 시도가 성공하지 못했다면 교통카드로 편리하게 타는 광역버스 대신, 복잡한 좌석버스나 비싼 시외버스가 아직도 수도권 교통망을 형성하고, 신도시의 필수요소라는 광역급행버스도 도입되지 못했을 것이다.

광역노선을 철수한 지 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인천 삼화고속이 회자되고 있듯 '분당의 1005-1번'이 앞으로도 사람들의 추억거리가 되지 않을까. "그 김주혁 나오고 이요원 나오던 영화에도 나왔던 그 버스, 나도 소싯적에 만날 타고 다녔는데..."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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