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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바람 부는 파주 접경 지역 "통일이 오고 있네"

쌀쌀하지만 임진각·도라산역 ‘북적’

등록|2018.10.30 19:20 수정|2018.10.30 19:21
1991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 통일이 20여 년이 지났지만 한반도 분단은 여전히 견고하다. 서울에서 휴전선까지 물리적 거리는 불과 52㎞밖에 되지 않지만 남과 북은 섬나라인 듯 전혀 다른 세상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 남한에서는 북녘의 일상조차 알 수 없다.

황석영 작가가 1993년 쓴 방북 기행문 '사람이 살고 있었네'는 북한에 대한 남한 사회의 무지가 어떠한지 여실히 말해준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생각이 다른 상대는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었던 시절도 있었다. 이념이 갈라놓은 분단은 그렇게 길고 단단해져서 단숨에 해결될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그런데 '금단의 벽'에 최근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0년 남북화해 바람을 타고 잠시 일렁였던 통일 물결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한국전쟁 이후 60년 이상 적대관계였던 북미 정상이 손을 맞잡더니, 남북 정상은 한 해 동안 세 번이나 만났다. 누구는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일단 얼굴을 봐야 상대의 의중을 알고, 다양한 해법을 내놓지 않을까. 정상회담과 교류는 분명 마음속 '분단 병(病)'을 치유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다.    

임진각서 '평화' 기원
 

▲ 임진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 최종환

남북화해 분위기를 반영하듯, 지난 27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방문객들의 모습이 보였다. 늦가을로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이들은 '평화'와 '번영'을 바라며 북녘을 바라봤고, 새로운 한반도를 기대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1972년 세워진 임진각은 매년 200만 명이 찾는 분단이 낳은 대표 관광지다. 4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전날 손을 맞잡고 넘나든 군사분계선에서 약 7㎞ 떨어져 있다. 지상 3층, 지하 1층, 연건평 2442㎡ 규모의 건물로, 3층 전망대에 오르면 임진강과 자유의 다리는 물론 북녘의 풍경이 시야에 그려진다. 자유의 다리는 1953년 휴전협정 이후 한국군 포로 1,200여 명이 자유를 찾아 귀환한 다리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특이하게 북한 땅이 바로 보인다. 지리적 특성 탓이다. 우발적 충동을 막기 위해 휴전선을 기준으로 남과 북 각 2㎞씩 총 4㎞에 이르는 지역에 DMZ(비무장지대)가 설정됐다. 남측 2㎞ 구간을 연결하는 선이 남방한계선이며 여기서 다시 남쪽으로 5~20㎞ 떨어진 곳이 민간인통제선이다. 하지만 파주시 임진강 주변은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 서울의 물줄기 한강은 김포반도와 북쪽의 관산반도가 마주 보는 곳에서 임진강과 만난다. 긴 맥을 잇는 한강은 서해로 흐르는데 그 지점에 DMZ가 없다. 한강을 두고 남북한이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 단풍이 짙게 물든 임진각 주변 산책로. ⓒ 최종환

평화누리공원에서 가장 먼저 들린 곳도 임진각이다. 파주와 연천 등 접경지대는 전쟁 때 총·포탄이 오고갔고, 몇 해 전에는 대북확성기와 전단 날리기로 시끌벅적했던 지역이다. 지금은 긴 호흡을 하는 듯 평온해 보였다. 손에 잡힐 듯 말 듯 황무지 같은 북녘은 고요했고, 전쟁은 오래된 역사의 흔적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짙게 물든 단풍도 시민들을 환하게 반겼다. 분단이 사람의 마음을 피폐하게 만들고, 남북을 갈라놓을지라도 자연은 늘 우리와 함께 할 것이라고 속삭인다. 아리따운 풍광과 희망찬 다음 세대를 위해서라도 분단과 통일은 반드시 해결해야 할 우리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어깨가 무거워졌다.

도라산 역 "기차는 달리고 싶다" 
 

▲ 분단으로 철길이 막혀있는 도라산역 플랫폼. ⓒ 최종환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후 인근 도라산역으로 향했다. 서울과 신의주를 잇는 경의선 철도의 역 중 하나로,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도라산리 민통선 안에 있다. 역 이름은 해발 156m의 도라산(都羅山)에서 따왔다. 평양까지 205㎞를 남겨두고 남한의 최북단에 건설된 도라산역은 향후 경의선이 개통되면 세관 업무를 맡게 된다. 지금은 북녘땅으로 기차가 달리는 날까지 잠시 '휴업'중이다.

지난 2000년 시작된 경의선 복원 사업으로 2002년 2월 초 도라산역이 들어서 남쪽의 임진강역까지 4㎞ 구간을 연결하는 공사를 마쳤다. 같은 해 김대중 대통령과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방문하면서 큰 주목을 받았다. 도라산역에서 두 정상은 철도 침목에 서명하며 남북통일을 염원했다. 통일이 금방이라도 닿을 듯했지만 이후 한반도 정세는 급변했고, 군사적 위협이 고조되면서 철길은 녹이 슬어갔다.

분단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겨진 이곳에 다시 활기가 돋았다. 정부가 남한과 북한, 러시아를 잇는 '한반도 신경제 지도'를 발표하면서부터다. 철도와 가스관, 전력망을 세 나라에 연결해 동북아 물류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4·27 판문점 선언에서도 철도·도로 연결 사업이 다뤄졌고, 지금까지 분야별 실무회담과 현지 공동조사가 진행됐다. 남북을 잇는 철도 연결이 구체화되면서 자유왕래도 머지않아 보인다.

현재 도라산역은 '역'으로서 어떠한 기능을 할 수 없지만 잠재성은 무궁무진하다. 통일 과정에서 이곳은 남북의 맥을 잇는 교통 중심지로, 이념과 사상으로 갈라진 시민들의 마음을 통합하는 상징적인 공간이 될 것이다. 비록 통일은 못 돼도 분단으로 병든 우리 사회의 대립과 갈등을 치유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꽉 막힌 내수경제를 살리고, 남북 경제협력으로 새로운 시장이 열리면 금상첨화다. 분단시대 금단의 벽이 하루빨리 허물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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