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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선거구제 주장한 한국당, 유신의 후예를 자처하는가

[강상구의 진보정치] 노회찬의 꿈, 연동형 비례대표제⑥ - 개혁이 물거품 되지 않으려면

등록|2018.11.01 17:06 수정|2018.11.01 17:06
촛불혁명 이후 가장 느리게 변하고 있는 것이 정치다. 정치 변화를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국회 구성 규칙을 바꾸는 일, 즉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이다. 노회찬의 삶의 자취를 밟으며 선거제도 개혁의 필요성을 짚어본다. - 기자 말
 

▲ 지난 10월 30일 정개특위 회의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언급한 김학용 자유한국당 의원. 사진은 지난 10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치개혁 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지난 10월 30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2차 회의에서 자유한국당은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아니라 중대선거구제를 주장했다. 한 선거구에서 2인 이상 선출하는 선거제도가 중대선거구제(아래 중선거구제)다.

자유한국당답다. 중선거구제는 박정희가 유신과 함께 도입한 제도다. 한마디로 유신잔재다. 요즘 말을 섞어 표현하면, 적폐 중에서도 '1등급 적폐'다.

당시 박정희는 국회를 완전히 장악할 목적으로 선거제도를 망가뜨렸는데, 하나는 국회의원 전체의 1/3을 차지하는 비례대표를 자신이 사실상 전부 임명하도록 했고, 또 하나는 지역구 선거제도를 지금처럼 1명 뽑는 제도에서 2명 뽑는 중선거구제로 바꾼 것이었다.

중선거구제는 전두환 정권 시기까지 이어졌다. 그때 비례대표 의석은 제1당이 무조건 전체의 2/3를 가져가도록 돼 있었다.

결국 박정희·전두환 시기의 선거제도의 특징은 '중선거구제+비례대표의 여당 독식'이다. 독재정권을 중선거구제와 비례성 전혀 없는 비례대표제라는 두 가지 기둥이 떠받친 셈이다.

중선거구제는 이미 결론 끝난 제도
 

▲ 중선거구제의 단점으로는 '계파 싸움' 그리고 '다선 의원 양산' '의원직 세습'이 꼽힌다. ⓒ 오마이뉴스


중선거구제는 이미 학자들 사이에서 '장점은 별로 없고 단점만 많은 제도'로 결론이 나 있다. 중선거구제의 문제 중 하나는 거대 정당의 경우 2명 뽑는 곳에서는 2명을, 3명 뽑는 곳에서는 3명을 흔히 공천한다는 것이다. 현재 이 방식으로 뽑고 있는 기초의회를 생각해보면 된다.

이렇게 되면, 선거는 후보를 공천한 정당간 경쟁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그 후보를 추천한 정당 내 파벌 간 경쟁이 된다. 거대 정당은 정책이 아니라 파벌의 힘으로 선거 경쟁에 뛰어들게 된다. 과거 일본이 그랬다. 소선거구제에서도 친박계, 친이계 하며 파벌이 정당을 압도했던 게 대한민국 정치의 단점이었는데, 아예 대놓고 단점을 극대화 하자는 말이다. 친박계도 비친박계도 모두 기뻐할 일이다.

게다가 중선거구제에서는 한 번 당선된 의원이 이후 선거에서 2, 3등 하는 건 쉽기 때문에 다선 의원을 쉽게 양산한다. 의원직 세습이 증가하기도 한다. 지역이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는데, 그 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진다.

어쨌거나 논의 상대가 자유한국당이므로, 연동형비례대표제가 도입된다는 전제 하에 합리적 수준에서 중선거구제를 논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소수정당 입장에서 행여 3인 이상 뽑는 중선거구제가 도입된다면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낼 가능성도 없진 않다. 그러나 연동형비례대표제의 대항마로 중선거구제가 논의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분명히 하자.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할 것인가. 현행처럼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할 것인가. 이것이 쟁점이다.

중선거구제는 이 문제가 해결된 후 논의해 볼 수도 있는 부수적 사안이다. 연동형비례대표제 아래서 지역은 중선거구제로 뽑을 것인가, 소선거구제로 뽑을 것인가. 이렇게 말이다.

이런 체계적 논의 없이, 단지 중선거구제가 선거제도 개혁의 쟁점이 된다면, 선거제도의 비례성은 형편없이 낮아져 개혁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2008년 노회찬의 낙선
 

▲ 2008년 총선 당시. 노회찬,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상임대표가 2008년 4월 9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18대 국회의원 선거 개표방송을 당직자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는 모습. ⓒ 유성호


2008년 국회의원 총선거. 창당한 지 24일 만에 진보신당은 총선을 치렀다. 2004년 민주노동당 첫 원내진출 당시의 선거대책본부 분위기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4년 후 총선 개표 시 진보신당의 분위기를 아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느 방송국 앵커는 출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다.

"무소속 기타 정당에는 진보신당의 의석 0에서 2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당사는 적막도 환호도 아닌 어정쩡한 분위기였다. 그 의석이 노회찬 심상정의 몫인지, 비례후보 2명이 당선될 것이라는 이야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모 방송국에서는 방송 초반 관심 지역 당선 예상자를 몇 군데 뽑아서 보여줬는데, 그 화면에서 노회찬 후보의 출마 지역이었던 서울 노원병의 당선자는 홍정욱이었다.

"반드시 역전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당사에서 함께 개표를 지켜보던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은 개표 중간에 지역구 선거사무소로 이동하기 직전 중앙당에 모여 있던 당직자들에게 인사했다. 반드시 역전하고 오겠다는 인사는 앞선 후보를 맹추격하며 초박빙 상황을 연출하던 심상정 후보가 힘주어 한 말이었다. 우리는 그 말에 다시 용기를 얻었다.

노회찬 후보의 발언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이미 1위 후보를 따라잡기는 어려운 분위기였고, 웃는 표정이긴 했지만 노회찬 대표의 말에서 승리의 기운을 느끼긴 어려웠다.

그날 밤 노회찬 후보는 "아쉬움이 크지만 한 번 전투에서 졌다고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낙선인사를 했다.

보수적 지역 풀뿌리
 

▲ 지난 18대 총선(2008)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했던 노회찬. 사진은 2008년 3월 26일 노원구 상계동 중앙시장 인근을 찾아 지역 주민들에게 자신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모습. ⓒ 유성호


그때 경쟁 후보는 지역 아이들에게 '영어공부 시켜주겠다'고 선거운동을 했다. 국회의원 선거보다는 학원 홍보에 적당한 공약이었다. 결과는 알려진 것과 같다. 말 잘하는 노회찬을 외국말 잘 하는 홍정욱이 이겼다.

그 후 노회찬 대표는 2012년 선거와 2016년 선거에서 두 번 당선됐었다. 두 번 다 야권연대를 통한 승리였다. 야권연대를 했어도 2014년 동작을 보궐선거에서는 낙선했다.

사실 현행 소선거구제에서는 노회찬 대표조차도 당선이 어려운 게 지역구 선거다. 그런 점에서 보면 소선거구제보다는 중선거구제가 낫다고 볼 수도 있다. 중선거구제 하에서라면 노회찬 대표의 정치 인생이 그렇게 곡절로 점철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거대 정당의 독식으로 정치를 고인물로 만드는 소선거구제의 단점이 중선거구제가 도입된다고 해서 개선될 수는 없다.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것은 중선거구제 도입이 아니라 '지역구에서 지나치게 많이 선출하는 선거제도'를 '합리적 비례선출제도'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지역구에서 국회의원을 너무 많이 뽑는 게 문제인 이유는 대한민국의 '지역'이란 이미 60년 동안 보수양당이 선점해온 보수적 생활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속에서 선출된 국회의원은 당연히 전반적으로 보수적이다. 중선거구제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지역구는 이미 기존 정당을 중심으로 한 지역 사회 네트워크가 매우 촘촘하다. 이 지역네트워크의 맨 꼭대기에는 보통 지역의 기득권 집단들이 있다. 지역 국회의원, 기초자치단체의 장, 지역기업의 대표, 지역의 금융기관·학교법인·언론사·복지기관의 장 같은 사람들이다. 그 밑에 각종 관변단체가 있고, 이들이 보수적 풀뿌리 네트워크를 매우 강력하게 구축하고 있다.

진보정치세력은 그 동안 풀뿌리 정치 안 하고 뭐했냐고? 진보정치의 조상들은 해방 후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죽거나 제압당했다. 여운형이 그렇고, 조봉암이 그렇다. 현재의 정치는 오래된 역사의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기찻길이 이미 그렇게 놓였는데, 그 위에서 방향을 틀기란 쉽지 않다.

진보정당 손발 묶는 정당법

정당법도 문제다. 진보정치가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위해서는 후보와 함께 일상적으로 움직여질 '조직'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행 정당법은 지역조직을 실질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고 있다. 당원협의회를 둘 수는 있으나 사무실을 둘 수 없다. 당연히 상근자도 둘 수 없다.

사무실 없는 회사, 노동자 없는 기업은 상상할 수 없다. 그러나 정당의 지역조직은 사무실도 없고, 일하는 사람도 두면 안 된다. 상상 밖의 일이다.

반면에 국회의원은 사무실을 둘 수 있다. 상근자도 둘 수 있다. 국회의원이 많은 거대정당과 의원 수가 적은 소수정당이 지역 선거에서 역량 차이가 크게 나는 이유 중 하나다. 앞선 자는 자동차를 타고 가고, 뒤쫓는 자는 걸어가는 꼴이다.

이러니 지역의 보수적 풀뿌리 네트워크는 어떤 정치적 도전도 받지 않고 계속 유지돼 왔다. 이에 도전해야 할 진보정당의 지역 조직은 사무실도 둘 수 없어 손발이 묶인 도전자 신세였다.

사회적 약자일수록 뭉쳐야 살고, 약자를 대변하는 정당일수록 조직을 이뤄 움직여야 이긴다. 그러나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조직'이란 대체로 교회나 성당 같은 종교조직이거나, 앞서 말한 관변단체 조직이거나, 아니면 정치색깔 없는 봉사조직들이다. 예를 들어 중앙정치에서 여성단체는 성평등을 위한 조직이지만, 지역 조직에서 여성단체는 여성들이 모여 봉사하는 조직이다. 이들은 대체로 보수적 성향이고, 정치현안을 늘 보수적으로 해석한다.

요즘은 마을공동체 운동 등이 활성화되면서 과거보단 나아졌지만, 대세가 바뀌진 않았다. 게다가 마을공동체 운동 역시 '정치적 중립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그 태도가 계속되는 한 마을공동체 운동으로부터 정치가 바뀔 가능성을 찾는 건 꽤 오래 걸릴 일이다.

덕분에 중앙무대에서는 거침없이 말하는 진보정치인들조차도 동네에 가면 그런 이슈들에 대해 소극적이 된다. 예를 들어, 중앙에선 성소수자 이슈에 대해 단호히 찬성하는 정치인들이 동네에서는 가급적 성소수자 이슈를 피하게 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지역구 의원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
 

▲ 20대 총선(2016)을 이틀 앞둔 2016년 4월 11일 국회에서 국회의원들에게 지급할 배지가 공개되고 있는 모습. ⓒ 공동취재사진


이것이 '지역'이다. 그런데 우리는 바로 이 '지역'을 기준으로 대부분의 국회의원을 뽑는다. 이미 기존 세력이 선점한 곳, 보수적 이데올로기가 보수적으로 조직된 소수에 의해 강고하게 유지되는 곳, 이런 곳에서 국회의원의 다수를 뽑으니 대한민국 국회의원 중 진보적인 인물이 많아질 가능성이 그렇게 낮은 것이다.

때로 개인의 놀라운 노력으로 당선되는 진보정당 의원들이 있긴 하다. 노회찬 대표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선거제도가 지역구 위주라는 사실 자체가 새로운 정치 세력의 등장을 막는다. 새로운 인물은 새로운 정치세력이 아니라 기존 정치세력에게 몰린다. 중선거구제가 되면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노회찬조차도 당선되기 어려웠던 소선거구제 하에서의 '지역구 선거'는, 중선거구제로 바뀌면 노회찬까지만 당선시키는 제도로 역할을 할 것이다. 노회찬 대표가 바라는 건 그게 아니라 '세력의 교체'였고, 국민의 뜻을 그대로 반영한 '민심 그대로 국회'였다.

중선거구제냐 연동형비례대표제냐가 쟁점이 아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할 것인가 후퇴할 것인가가 쟁점이다.
 
노회찬재단(가칭) 설립추진
노회찬재단(가칭) 설립 실행위원회는 지난 10월 8일부터 준비위원 구성 및 시민추진위원 모집을 시작했다. 시민추진위원 참여는 노회찬재단 준비위원회 홈페이지(https://www.hcroh.org)에서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강상구씨는 정의당 교육연수원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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