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무릅쓰고 나치 수용소 탈출한 연인... 왜 다시 헤어질까
[리뷰] 영화 <리멤버> 전쟁에 고통 받은 이들의 애틋한 사랑
▲ 영화 <리멤버> 포스터 ⓒ (주)마운틴픽쳐스
과거 배우 차승원은 MBC 예능 프로그램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해 자신이 출연한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당시 차승원은 대한민국 최고의 흥행배우 중 한 명이었고 그의 필모그라피의 흥행작 대부분은 코미디 영화였다. 그는 "영화 <국경의 남쪽>은 흥행에 실패했다"며 자학개그를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왜 자꾸 그 영화가 기억에 남는 건지 모르겠다"며 애정이 깃든 작품임을 보여주었다.
영화 <국경의 남쪽>은 북한 남자 김선호(차승원 분)가 사랑하는 이연화(조이진 분)를 두고 국경을 넘어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족의 문제로 사랑하는 연화를 북에 남겨둔 채 남한으로 온 철호는 그곳에서 경주라는 여자를 만나 새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영원히 못 볼 것이라 생각했던 연화가 오직 철호를 만나기 위해 탈북을 감행하면서 세 남녀 사이에는 서로에 대한 야속함과 애틋함이 피어난다. <국경의 남쪽>은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오늘날까지도 남북 관계를 다룬 로맨스 영화로 회자되는 작품이다.
▲ 영화 <리멤버> 스틸컷 ⓒ (주)마운틴픽쳐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리멤버>는 <국경의 남쪽>이 주었던 애틋함과 깊은 사랑의 슬픔을 전해주는 영화다. 나치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토마슈는 유태인 연인 한나와 함께 탈출을 시도한다. 토마슈는 독일 장교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는 과감한 탈옥 작전을 펼치고 이 작전으로 한나와 함께 수용소를 탈출한다. 시력이 나쁜 토마슈에게 안경을 벗는 이 작전은 무모한 전략이었음에도 그는 한나를 위해 혼신을 다하고 한나는 토마슈를 위해 그의 눈이 되어준다.
교차 편집으로 진행되는 <리멤버>는 토마슈와 한나가 사랑했던 과거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현재를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그들의 과거에서는 짧지만 잊을 수 없는 진한 사랑을, 현재에서는 균열내고 싶지 않은 완벽한 삶의 모습을 조명한다. 한나는 우연히 본 TV 프로그램을 통해 토마슈가 살아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는다. 허나 그녀의 모습은 가족들에게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비춰진다. 딸은 한나에게 "엄마가 그 아저씨를 찾으면 아빠는 뭐가 되는 것이냐"고 따져 묻는다.
생사고락을 함께 한 과거는 토마슈와 한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지만 두 사람의 가족에게는 '그만 잊었으면' 하는 시간이다. 특히 태어난 순간부터 한나를 '엄마'로 인식했던 자식에겐 '여자'였던 순간을 떠올리려는 한나의 모습이 불편하게 다가온다. 두 사람의 사랑에는 세 개의 장애물이 존재했다. 첫 번째는 수용소였고 두 번째는 토마슈의 가족이었으며 세 번째는 현재 두 사람이 이룬 가정이다. 허나 장애물이란 건 넘을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가장 큰 존재는 '전쟁'과 '세월'이다.
▲ 영화 <리멤버> 스틸컷 ⓒ (주)마운틴픽쳐스
특히 세월이란 건 그토록 원하는 사람을 찾았음에도 쉽게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게 한다. 토마슈와 한나는 젊음과 사랑이라는 힘으로 전쟁이란 고통과 싸워왔다. 하지만 세월은 젊음도 사랑의 감정도 점점 버겁게 만든다. 영화 <리멤버>는 감정의 이입이나 인물들의 폭발하는 에너지 대신 덤덤하게 사건을 담아낸다. 이런 영화의 연출은 플롯이라는 기교에 가려질 수 있는 진실된 감정을 더 강하게 전달한다.
전쟁에 의해 두 사람은 헤어져야 했고 세월 때문에 그토록 원하던 사랑 앞에서도 머뭇거려야 한다. 이 영화의 영제 'Remembrance'는 '추억'을 의미한다. 우리가 <국경의 남쪽>에서 탈북한 연화를 바라보며 애틋함을 느꼈던 이유는 그녀의 사랑이 결국 추억으로 남을 수밖에 없음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사랑의 가슴 아픈 점은 영원과 추억을 안다는 점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결국 이별을 직감했을 때 우리는 이 사랑이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슬퍼한다. <리멤버>는 영원과 추억의 경계를 넘나들며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와 브런치, 루나글로벌스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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