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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전국 고들빼기김치 경연대회가 열렸다

'겨울철 별미' 고들빼기 생산량 45% 책임지는 순천에서 개최

등록|2018.11.14 09:11 수정|2018.11.14 16:26

▲ 11월 12일 순천시농산물가공센터에서 열린 전국 고들빼기김치 경연대회 현장. 심사위원이 응시자에게 부재료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배주연


찬바람에 낙엽 울긋불긋한 이때 잔뜩 물오른 고들빼기가 쌉쌀한 입맛으로 손짓한다. 고들빼기 국내 생산량의 절반을 재배하는 순천에서 지난 12일 고들빼기김치 경연대회가 열렸다.

전남 순천시 별량면 제석산과 오봉산 사이에 자리 잡은, 개랭이 고들빼기 마을은 1급수가 흐르는 청정 47헥타르에서 별량면과 함께 고들빼기 400여 톤을 출하하여 국내 45% 물량을 책임진다. 이 덕에 예로부터 순천시민들은 봄에는 나물과 쌈, 11월과 12월 김장철에 가장 맛과 영양이 좋은 때 고들빼기김치를 담가 겨울철 별미로 즐겼다.

맛이 써서 이름마저 '고채(苦菜)'인 고들빼기는 해독과 건위, 염증 치료 등의 효능을 지닌 약초로 부유층만 즐기다, 재배가 가능해지면서 점차 서민들도 접하게 되었다. 이 착한 고들빼기를 널리 알리고자, 순천시는 지난 9월 푸드아트페스티벌에서 '고들빼기 데이'를 열어 다양한 고들빼기 음식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제 제철을 맞아 11월 12일에 전국 고들빼기김치 경연대회도 마련했다.

지난 10월 16일부터 11월 1일까지 공모하여 예선을 통과한 18명 중에서 당일 결시한 1명을 제외한, 총 17명이 서면 구만리에 위치한 순천시농산물가공센터에서 고들빼기김치와 고들빼기 뿌리김치 담그기에 도전했다.

"고들빼기는 아무나 잘 먹는 김치 아냐"

▲ 전국 고들빼기김치 경연대회에 출품된 김치들로 위는 뿌리김치 분야, 아래는 김치 분야이다. ⓒ 배주연


심사는 전문가 5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의 세부평가에 대학생, 주부, 요식업 관계자 등 다양한 계층의 시민 60명으로 이뤄진 소비자 시식평가단의 스티커 점수가 반영되었다. 시상은 고들빼기김치와 고들빼기뿌리김치 분야별로 허석 순천시장이 수여하는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 각 1명과 서정진 시의회 의장이 주는 특별상 2명으로 총 10명이 수상의 기쁨을 받았다.

개랭이 마을에서 온 세 명 중 한 명인 63세 박씨는 뿌리김치에 도전했다. 낙안에서 여기로 시집을 온 지 40년으로 고들빼기김치 경력은 20년이다. 박씨를 포함하여 100여 명이 넘는 마을주민 대부분이 고들빼기 농사를 하는데, "올해는 가뭄으로 난 것이 없다. 수확이 3분의 2도 못 미친다"고 알렸다. "가물어서 종자가 안 나오고, 중간쯤에 비가 많이 와서" 작황이 부진하다고.

"고들빼기는 아무나 잘 드시는 김치는 아니다. 특유의 쓴맛이 있고 그런 맛을 싫어하는 이도 있다"면서, 옆에 준비한 고들빼기를 툭 잘라 보여주며 "하얀 진이 많이 나오는데 절여서 쓴맛을 빼야"라고 설명했다.

이번 경연에 도전자 중 가장 최연소인 24살 청년 이씨는 경기도 평택에서 왔다. 조리학과 2학년에 재학중인 대학생으로 "한식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경험 삼아 도전"했다. "아버지가 전라도 광주 출신이라 고들빼기를 좋아해서 집에서 즐겨 먹어"서 담그기도 했다며, "집에 엄청 많은 효소"가 있어서 이 효소를 활용해 고들빼기김치를 담글 것이라고 말했다.

17개의 김치에 밥과 물 담긴 식판 받은 소비자 평가단
 

▲ 허석 순천시장, 서정진 순천시의회 의장이 참가자들과 함께 "고들빼기 김치~"라 외치며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배주연


광양에서 도시락 자영업을 하는 53세 남성 김씨는 도시락을 하다 보니 김치에 관심이 많은데다, 반찬 메뉴로 고들빼기김치를 내놓기도 해서 응모했다. 비법 재료로 고추장이 들어가며, "쌉싸름한 맛은 배즙으로 잡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여수에서 온 56세 여성 김씨는 요리학원 원장으로 "저쪽의 남자분이 내 제자"라며 광양의 김씨를 가리켰다. 고추장을 준비한 제자와 달리 스승은 수제 보리된장에 고추씨로 '하얀 김치'를 준비했다. 김씨는 고들빼기가 "인삼밭에서 난 풀로 인삼의 정기를 받았다 하여 인삼김치라고도 불러"라며 상류층만 먹던 특별식이라고 설명했다.

"문헌을 보면 고려인삼이 있는데 고들빼기김치는 고려 때는 없다. 그 이후 고춧가루가 없으니 바닷물에 절어 된장에 장아찌처럼 담가" 먹었다며 고들빼기김치 기원을 알려주었다. 끝으로 "순천의 특산품인데 식품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걸 널리 알려야 해"라면서, 고들빼기에 이런저런 성분과 효능이 있어서 "현대인이 많이 먹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비자 평가단으로 온 60세 김씨는 곡성에서 결혼으로 순천에 정착한 지 30년 정도 되었다. "곡성도 고들빼기김치를 먹긴 하는데 순천과 달리 기후조건이 달라 풍족하진 않아"라며, 시민단체 활동가답게 "맛과 영양에 부재료가 무엇이 들어간 지"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대 호텔 조리학과 전공인 1학년생 김씨는 상품성에 중점을 둘 것이라 했다. 옆에 있던 대학생 임씨는 "깔끔하고 색과 조화가 잘 맞는" 것이 좋다며, 할머니가 고들빼기김치를 담가 먹어봤다고 대답했다. 소비자 평가단은 팀으로 나누어 17개의 김치에 밥, 물이 담긴 식판을 제공받아 시식을 했다.

허석 순천시장 "어쩔 수 없이 등수 매기나 모두가 주인공"
 

▲ 허석 순천시장과 관계자, 소비자 평가단이 전국고들빼기김치경연대회에 출품된 17 종의 김치를 시식하고 있다. ⓒ 배주연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심사위원과 취재진, 관계자 이외에는 경연대회 내부에 들어갈 수 없고 밖에서 지켜봐야 했다. 기자도 촬영 장비만 허락되고 가방은 바깥에 두어야 입실할 수 있었다. 이에 응원하러 온 이들은 유리창을 통해 경연 모습을 지켜보았다.

허석 순천시장은 축사에서 공약을 위해 작년에 고들빼기김치도 직접 담가봤다며 "고들빼기김치를 고급화할 필요가 있다. 겨울철에 담가 우리끼리만 먹는 김치 담그면 서울 사람도 탐내서 오지 않겠나?"라며 순천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김치대회가 "조그마한 출발이나 표준화해서 순천의 대표적인 상품으로 우뚝 설 첫걸음"이라며, 참가자들에게 "등수를 어쩔 수 없이 매기나 모두가 주인공이다. 앞으로 순천의 맛과 멋을 개발하는데 함께 해달라" 부탁했다.

허 시장은 고들빼기김치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이며, 공식 일정인 시상식 예정 시각보다 1시간 정도 더 일찍 방문하여 경연대회를 참관했다. 그리고 소비자 평가단과 함께 시식하며 관계자들과 사업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알려진 레시피로 만든 고들빼기김치는 표준화 개발을 담당할 내추럴초이스(주)의 대표인 호서대학교 식품공학과 채희정 교수와 소비자 인식 조사를 대행할 네이처에프엔씨의 도움을 받아 상품화할 예정이다.

"비법으로 단감에 눈물까지 들어갔다"
 

▲ 단감을 활용해 고뜰빼기 뿌리김치 분야 대상을 받은 박연순씨가 허석 순천시장 옆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배주연


대상으로 100만원의 상금까지 받은 주인공은 서면에서 온 오두례씨(고들빼기김치), 해룡면에서 온 박연순씨(고들빼기뿌리김치)였다. 오씨가 수상하자 객석에 있던 아주머니가 "우리동네 부녀회장"이라 외치며 기뻐했다.

박씨는 순천 특산품인 미인단감을 활용하여 쓴맛을 잡았는데 수상에 감격한 나머지 바로 눈물을 흘리자, 사회자가 "비법으로 단감에 눈물까지 들어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며느리가 나가라고 하여 참여한 정두리씨는 최우수상을 받을 때 며느리와 함께 서서 훈훈함을 더했다. 한편, 어느 할머니는 상을 받으면서 애칭이 "허서방"인 순천시장의 등을 토닥이며 대회를 준비해 준 것에 고마움을 표현했다.

한편, 입구에 마련된 홍보 부스에서 만난, 순천고들빼기영농조합법인 유성진 대표이사는 개랭이 마을이 62가구로 작지만 "고들빼기 원산지를 공식으로 공표, 종자원에 종자도 직접 등록"했다고 밝혔다. 해당 법인은 주력인 고들빼기김치 이외에, 고들빼기 피클과 환 제품을 국내에서 유일하게 만들며, 톡 쏘는 맛이 강한 순천의 토종 빨간 갓인 '홍갓'만 활용한 홍갓김치도 판매한다.

고들빼기와 관련하여 13년째 일한다는 유 대표이사는 고들빼기 효능을 자랑하며, "고들빼기김치는 보존력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어서 활용을 높이기 위해 와인도 개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항암, 항염에 독소 배출 효능으로 부작용이 없어 순천천연물의학소재개발연구센터와 협업하여 올해는 화장품, 내년에는 건강보조식품도 개발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이번 김장철에 제철을 맞이한 순천산 고들빼기로 김치를 담가 미각에 건강까지 잡아보면 어떨까? 여기에 흑두루미 친환경 쌀밥, 칠게튀김, 짱뚱어탕에 꼬막무침 그리고 미인단감을 곁들이면 순천 스타일 밥상이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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