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리 밖까지 울음소리 들리던 유배지, 이렇게 황홀할 수가
완도 신지도... 명사십리 해변과 갯길, 유배·항일의 흔적까지
▲ 완도 신지도 명사십리 해변의 해질 무렵. 서쪽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기 시작한 노을이 금세 하늘도 바다도 땅도 온통 시뻘겋게 물을 들이고 있다. ⓒ 이돈삼
지금 이 계절에 가도 좋다. 더 없이 한산하다. 모래밭을 혼자서 차지하며 걷는 호젓함을 누릴 수 있다. 햇살에 반짝이는 바다도 감미롭다. C자로 유연하게 구부러지는 해안선도 매혹적이다. 해변을 온통 새빨갛게 물들이는 낙조도 황홀하다.
▲ 신지도 명사십리해변 전경. 피서객이 떠난 호젓한 바다에서 한 승마 동호인이 말을 타고 있다. ⓒ 이돈삼
▲ 파도가 가져다 준 선물 키조개. 바다의 거친 파도가 크고 작은 키조개를 백사장으로 밀어냈다. ⓒ 이돈삼
천연두 예방접종 백신인 종두법을 들여온 지석영도 유배됐다. 지석영은 송곡리에 살며 '송곡리 촌사람'이란 별칭을 얻었다. 호가 송곡리 촌사람의 앞글자를 딴 '송촌'이다.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도 흑산도로 유배 길에 들러 몇 달 동안 머물렀다.
▲ 완도 신지도 명사십리해변의 오후. 해변을 찾은 한 여행객이 파도가 밀려드는 백사장에서 손으로 모래의 감촉을 느껴보고 있다. ⓒ 이돈삼
▲ 신지도 대곡리에 있는 항일운동기념탑. 완도 신지도는 조선시대 유배의 섬이자, 일제강점기 항일의 섬이었다. ⓒ 이돈삼
그 울음소리가 10리 밖까지 퍼져나갔다고 한다. 해변의 이름이 '명사십리'가 됐다는 얘기다. 바닷물에 모래가 부서지면서 우는 소리가 10리 밖에서도 들린다고 명사십리라는 설도 있다.
신지도는 일제강점기 항일의 섬이었다. 장석천·임재갑 선생이 대표한다. 장석천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임재갑은 농촌계몽운동에 앞장섰다. 대곡리에 신지항일운동 기념탑과 자료관이 있다.
▲ 신지명사갯길. 완도 신지도의 해안을 따라가는 트레킹 길이다. 바다가 내내 동행하며 파도소리를 들려준다. ⓒ 이돈삼
▲ 신지명사갯길에서 보이는 완도항 전경. 길이 해안 숲길을 따라 이어진다. ⓒ 이돈삼
갯길은 신지대교 휴게소가 출발점이다. 강독나루와 물하태 포구를 거쳐 명사십리 해변까지 10.3㎞가 1코스다. 명사십리 해변의 끝자락 울몰마을에서 석화포구를 거쳐 내동마을까지 4.9㎞가 2코스다. 다 걸으면 네댓 시간 걸린다.
▲ 신지명사갯길의 숲길 구간. 여기저기 지천인 넝쿨식물이 계절을 노래하고 있다. ⓒ 이돈삼
▲ 완도타워에서 내려다 본 완도항 전경. 앞바다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주도가 떠 있다. 완도읍과 신지도를 이어주는 신지대교도 보인다. ⓒ 이돈삼
숲길에는 마삭줄, 아이비 등 넝쿨식물이 지천이다. 들꽃도 부지기수다. 길도 평탄한 편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혼자 걷기에 좋다. 둘이서 나란히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 나누면 더 행복하다.
신지도에서 가까운 데에 들러볼만한 곳도 많다. 완도항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완도타워가 신지도 건너편에 있다. 장보고의 청해진 유적지, 장도도 지척이다. 사철 푸른 난대림의 완도수목원과 갯돌밭으로 이름 난 정도리 구계등도 멋스럽다.
▲ 완도수목원의 대문저수지 수변 데크. 빨갛게 익은 이나무 열매가 운치를 더해주고 있다. ⓒ 이돈삼
▲ 정도리 구계등 갯돌밭. 갯돌이 바다 속으로 아홉 계단을 이루고 있다.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구역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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