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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강사법은 '나쁜 법', 그럼에도 지켜야 한다

등록|2018.11.29 17:33 수정|2018.11.29 17:33
2019년 1월부터 새로운 강사법이 시행된다. 그 요지를 보면 한마디로 대학 시간강사의 권익을 보호하자는 것이다. 이제까지 학기별로 갱신을 하던 계약을 1년 단위로 하면서 방학 중에도 월급을 지급하고, 퇴직금과 직장건강보험의 혜택을 주자는 것이 새로운 법의 주요 골자이다.

대학교 시간강사들은 겉으로는 최고의 지식인이요, 학생들에게는 교수님 소리를 듣지만 경제적 현실을 보면 빛 좋은 개살구의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보따리를 싸 가지고 다니면서 강의를 하는, 언제 잘릴 지 모르는 불안한 신세이다. 방학 중에는 손가락 빨고, 직장건강보험도 안 되며, 나이가 들면 고시원에 가야 할 형편인 사람도 많다. 이런 대학교 시간강사의 상황을 개선해 보자는 취지에서 이번 강사법이 만들어졌다.

대학 당국이나 정규직 교수로 임용된 사람들이 이러한 강사법에 반발하는 것은 최소한의 인간적인 면을 돌보지 않는 이기심의 발로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정규직 대학교수들의 상대적인 박탈감도 이해가 안 되는 게 아니다. 옆집이 한우에 가끔 바닷가재 요리도 먹는 데, 우리는 기껏해야 돼지고기에 생선 쪼가리냐는 푸념도 한다. 근데 그 집에 와서 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은 돼지고기는 고사하고 밥 본지도 오래고 바닷가재는 뉘 집 개 이름인가 한다. 그렇다면 먼저 이들의 배를 굶지 않게 하는 것이 인간 된 도리이다. 이게 이번 강사법이 잘 지켜져야 하는, 아니 더욱 강화되어야 하는 첫 번째 이유이다.

모든 인간은 어떤 면에서건, 어떤 방식에서건 약자가 된다. 부당함에 억울해하고 힘들어하는 약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대학 강사의 현실은 우리나라의 다양한 부정의나 불합리와 닮아있다. 법원 고위 판사들이 상급법원이라는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부당하거나 억울한 아랫것들은 거들떠보지 않는 행태와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다들 할 말이 많다. 법관들은 법관들대로 그리고 유치원 원장은 원장대로 다들 이런저런 이유에서 지키려고 하는 가치와 나름의 이유가 존재하지만 큰 맥락에서 보면 이것이 다 아전인수격 해석에 근원한 이기심인 경우가 많다.

대학교 당국은 강사법을 시행하기 위한 재원이 어디 있느냐고 강변한다. 교수들에 대한 경제적 뒷받침 없이는 학문적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이유도 댄다. 그러나 '무엇이 먼저인가' 라는 점을 생각해 보자. 교수들 회식비에 쓰는 돈이 얼마인가? 교수들의 연구실을 관리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또 얼마나 되나? 30억이나 들여 만든 학교 정문을 비추는 전기료는 또 어떻고. 그런 것은 사실 얼마 되지도 않는 데다 필요한 돈이라고 한다면 그도 그렇다. 좌우지간 이런저런 이유로 고통 분담은 죽어도 하기 싫단 말인가?

그놈의 기득권이라는 게 원래 그런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큰 연구실에서 지내다가 작은 연구실로 바꾸라고 한다면 난리를 칠 것이다. 이 글을 쓰는 나도 당연히 그런 마음이 안 들 수 없다는 걸 고백한다. 그런데 어쩌랴, 연구실은커녕 점심 도시락 먹을 공간도 없는 강사 선생님이 허다한데.

강사의 처우 개선을 이야기하면 많은 교수들도 공감한다. 그렇지만 '내가 가진 기득권은 안 내려놓은 상태에서'라는 전제 조건이 의식, 무의식적으로 붙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근본적인 문제의 핵심을 해결하기도 힘들 뿐만 아니라 당장의 현실적 대책도 되지 못한다.

이 사회에, 이 나라에 비정규직이 한 명도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면 교수들이건 그 교수들 보다 더 많은 돈을 받는 대기업의 간부들이건, 혹은 그 누구든 좀 더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으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변화는 더 크고 화려한 연구실에 있는 것 보다, 혹은 더 많은 연봉을 받는 것보다 훨씬 이 사회와 나를 행복하게 할 것이다. 그런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의 양보와 고통분담 그리고 지성은 필연적이다. 대학교수들을 최고의 지성이라 하던가, 사실 개가 웃을 말이긴 하지만 하여간 그놈의 지성이라는 것이 있기라도 하다면 대승적 방향성을 가지고 모두가 더불어 같이 사는 사회적 정의에 동참하자.

한 가지만 덧붙인다. 대학 강사법은 나쁜 법이다. 크게 볼 때 결국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가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존의 강사 제도 보다는 덜 나쁜, 차악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첫술에 배부르냐는 생각으로 아쉬운 강사법을 지지하며 차후의 더 나은 제도와 법률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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