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과 나란히 걸린 가운... 성매수자가 봐야할 이 전시
[현장] "사회적 압박은 성매수자에게"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의 이야기 담은 '오늘' 전
'성 착취'라는 단어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성착취 피해 아동과 청소년'을 주제로 한 전시가 이화여대 대산갤러리에서 열린다는 소식을 지인에게 들었다. 가끔 TV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통해 가출 청소년들의 취약한 상황을 엿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나와 관련 있는 이야기로 들리진 않았다. '가출'이란 말에는 자발적 선택의 여지가, '성매매'에는 거래의 의미가 먼저 다가왔다. 내가 공감하거나 개입할 틈은 없었다. 나는 무심한 방관자였다.
그런데 성착취라는 말에는 조금 움찔했다. 누군가 착취를 당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문제를 들여다보고 책임을 물어 착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성매매'란 말이 아동과 청소년에게 사용하기엔 적절치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이미 권력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성인과 아동·청소년 사이에 공정한 '매매'라는 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나는 성착취라는 말을 전면에 내건 이 전시에 가보기로 했다.
"버려지는 게 무서웠다" 그 아이의 마지막 문장
지난 11월 28일 개막 당일 전시장을 찾았다. 첫날이라 전시장 안은 사람들로 붐볐다. 사람들 어깨너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한국과 일본에서 찍은 사진 작품이었다. 치마 교복과 저렴한 숙소 가운이 나란히 옷걸이에 걸린 사진을 보니 이 전시가 무엇에 대한 것인지 다시금 떠올리게 됐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들이 오픈채팅에서 성인남성들에게 받은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오로지 상대를 성적 대상으로만 대하는 말들. 감각을 무디게 만들지 않고서야 하루에도 수백 통씩 날아올 이 메시지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왔다.
십대여성인권센터와 닷페이스가 공동 제작한 영상물도 있었다. 이미 울렁울렁해진 마음이 더욱 바닥으로 떨어진 건, 성착취를 당한 아이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일기였다. "집을 나온 지 62일.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로 시작한 이 글에는 오픈채팅을 통해 조건만남을 하고, '오빠'와 수수료를 나누고, 그 오빠에게 또 착취를 당하는 내용이 솔직하게 실려 있다. "하지만 버려지는 게 더 무서웠다"는 마지막 문장엔 울컥 눈물이 나왔다.
피해 아동·청소년들이 예술심리치료 과정에 그린 풍경화, 가면, 마트료시카 인형 꾸미기, 상자 만들기 등 여러 작품들엔 그들이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어느 작품에 적힌 "나는 밝은 사람이야. 그러니 (만신창이가 된 내면을) 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에 다시 한 번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복잡한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들여다봤다. 전시 후반부로 가니 커다란 세로 그림들이 공중에 걸려 있었다. 종이에 누운 참여자의 몸 테두리를 본 뜬 후 크레파스로 꾸민 것이다. 당당하고 발랄한 청소녀들의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 또 다시 눈이 뜨거워졌다.
바로 옆에는 참가자와 상담교사가 함께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이 두 섹션의 이름은 각각 'Here I am'과 'Here we are'.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사회에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당당한 목소리, 그리고 이런 아이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네 곁에 우리가 있어"라고 답하는 어른의 목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전시는 12월 9일까지 매일 열리며 전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다. 단, 마지막날인 12월 9일은 오후 2시까지이다.
한국과 일본 성착취 현황, 어쩜 그리 똑같을까
같은 날 오후엔 전시 오픈 행사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전시를 준비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와 일본 '콜라보(Colabo)'의 니토 유메노 대표, 통역에 희망씨앗기금 양징자 대표가 참석했다. 콜라보는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이다.
토크 콘서트는 전시에서 본 내용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언어로 표현되는 자리였다.
조 대표는 "성매수자들에게 이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아이들, 보호처분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는 것처럼 감금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풀려나는 아이들이 '내가 있다'라고 선언하고, 그 옆에서 '우리가 너희들이 건강하게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할게'라고 말하는 의미로 전시 주제를 'Here I am, Here we are'로 정했다"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보호처분은 소년법에 따른 형사처분으로 감호위탁,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를 뜻한다.
일본에서도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엮어 <우리는 구매되었다>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2016년 당시 전시를 이끈 이는 콜라보의 니토 유메노 대표. 유메노 대표는 "일본에서는 소녀들의 성상품화가 완전히 비즈니스화 됐다"며 "길거리와 인터넷을 헤매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한 뒤 성을 착취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의 성착취 현황이 유사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이야기였다. 유입 구조에서부터 청소년들의 성이 착취되는 방식,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정부의 대응방식까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IT 기술 발전과 함께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성착취 현장이 점점 유사해지고 있다. 전 국가적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착취 아동과 청소년을 바라보는 인식도 비슷했다. 유메노 대표는 "한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성 구매 당하는 중고등학생들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았다. '좋아서 하는 거 아닌가?' '돈 벌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닌가?' '화려하게 차려입고 명품 사고 싶어서 하는 거다'라는 대답이 나왔다"며 사회의 왜곡된 인식을 지적했다.
또한 조 대표와 유메노 대표는 한 목소리로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규제하는 정부 대응 방식도 문제로 꼽았다. 유메노 대표는 "일본에서 전국의 고등학교에 '한 번 하면 큰일난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였다. 이것은 피해자인 소녀들을 협박하는 것"이라며 "사실 이 협박은 소녀가 아닌 구매자에게 향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젊은 여성의 성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협박은 여성 청소년이 아닌 구매자에게 향해야 한다"
건강한 성인이 되도록 뒷받침하고 지켜봐야할 아동과 청소년을 어른들이 함부로 착취하는 참담한 현실에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다. 과연 이 전시로 작은 변화라도 만들 수 있을지, 암담함도 느껴졌다.
이 궁금증에 답하듯 조 대표가 말했다.
통역을 맡은 양징자 대표도 "전시를 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성폭력, 성착취 피해자이지만 목소리를 내었기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도 (청소년들의) '재수없어, 싫어'라는 짧은 말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아주 희망적이라 느꼈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 싶어 수첩에 옮겨 적었다.
그런데 성착취라는 말에는 조금 움찔했다. 누군가 착취를 당하고 있다면 그건 그냥 두고 보아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문제를 들여다보고 책임을 물어 착취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는 게 평소 생각이다. '성매매'란 말이 아동과 청소년에게 사용하기엔 적절치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이미 권력 관계가 동등하지 않은 성인과 아동·청소년 사이에 공정한 '매매'라는 건 애초에 성립될 수 없다. 나는 성착취라는 말을 전면에 내건 이 전시에 가보기로 했다.
▲ 성착취 피해 청소년의 목소리를 담은 씨리얼(C-Real) 영상 갈무리. ⓒ 씨리얼(C-Real) 영상 갈무리
안쪽으로 들어가면 이들이 오픈채팅에서 성인남성들에게 받은 메시지들이 적혀 있다. 오로지 상대를 성적 대상으로만 대하는 말들. 감각을 무디게 만들지 않고서야 하루에도 수백 통씩 날아올 이 메시지들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지, 한숨이 나왔다.
십대여성인권센터와 닷페이스가 공동 제작한 영상물도 있었다. 이미 울렁울렁해진 마음이 더욱 바닥으로 떨어진 건, 성착취를 당한 아이가 휴대전화 메모장에 남긴 일기였다. "집을 나온 지 62일.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로 시작한 이 글에는 오픈채팅을 통해 조건만남을 하고, '오빠'와 수수료를 나누고, 그 오빠에게 또 착취를 당하는 내용이 솔직하게 실려 있다. "하지만 버려지는 게 더 무서웠다"는 마지막 문장엔 울컥 눈물이 나왔다.
▲ 이화여대 대산갤러리에서 성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전이 열리고 있다. ⓒ 심혜진
복잡한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정성껏 들여다봤다. 전시 후반부로 가니 커다란 세로 그림들이 공중에 걸려 있었다. 종이에 누운 참여자의 몸 테두리를 본 뜬 후 크레파스로 꾸민 것이다. 당당하고 발랄한 청소녀들의 모습에 안심이 되면서 또 다시 눈이 뜨거워졌다.
바로 옆에는 참가자와 상담교사가 함께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이 두 섹션의 이름은 각각 'Here I am'과 'Here we are'.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을 격리하고 배제하려는 사회에 "내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아이들의 당당한 목소리, 그리고 이런 아이들에게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네 곁에 우리가 있어"라고 답하는 어른의 목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전시는 12월 9일까지 매일 열리며 전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8시까지다. 단, 마지막날인 12월 9일은 오후 2시까지이다.
한국과 일본 성착취 현황, 어쩜 그리 똑같을까
같은 날 오후엔 전시 오픈 행사로 토크 콘서트가 열렸다. 전시를 준비한 십대여성인권센터 조진경 대표와 일본 '콜라보(Colabo)'의 니토 유메노 대표, 통역에 희망씨앗기금 양징자 대표가 참석했다. 콜라보는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이다.
▲ 토크콘서트 ⓒ 이영주
조 대표는 "성매수자들에게 이 전시를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아이들, 보호처분 등으로 우리 사회에서 없는 것처럼 감금되었다가 성인이 되어 풀려나는 아이들이 '내가 있다'라고 선언하고, 그 옆에서 '우리가 너희들이 건강하게 성인이 될 때까지 함께 할게'라고 말하는 의미로 전시 주제를 'Here I am, Here we are'로 정했다"라며 기획의도를 밝혔다. 보호처분은 소년법에 따른 형사처분으로 감호위탁, 보호관찰, 소년원 송치를 뜻한다.
일본에서도 피해 당사자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글을 엮어 <우리는 구매되었다>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다. 2016년 당시 전시를 이끈 이는 콜라보의 니토 유메노 대표. 유메노 대표는 "일본에서는 소녀들의 성상품화가 완전히 비즈니스화 됐다"며 "길거리와 인터넷을 헤매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과 도움을 주겠다며 접근한 뒤 성을 착취한다"고 설명했다.
한국과 일본의 성착취 현황이 유사하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이야기였다. 유입 구조에서부터 청소년들의 성이 착취되는 방식, 그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정부의 대응방식까지 아주 비슷하다는 것이다. 조 대표는 "IT 기술 발전과 함께 한국과 일본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성착취 현장이 점점 유사해지고 있다. 전 국가적으로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성착취 아동과 청소년을 바라보는 인식도 비슷했다. 유메노 대표는 "한 대학에서 강의할 때 학생들에게 성 구매 당하는 중고등학생들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았다. '좋아서 하는 거 아닌가?' '돈 벌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닌가?' '화려하게 차려입고 명품 사고 싶어서 하는 거다'라는 대답이 나왔다"며 사회의 왜곡된 인식을 지적했다.
또한 조 대표와 유메노 대표는 한 목소리로 가해자 대신 피해자를 규제하는 정부 대응 방식도 문제로 꼽았다. 유메노 대표는 "일본에서 전국의 고등학교에 '한 번 하면 큰일난다'는 내용의 포스터를 붙였다. 이것은 피해자인 소녀들을 협박하는 것"이라며 "사실 이 협박은 소녀가 아닌 구매자에게 향해야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젊은 여성의 성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꼬집었다.
"협박은 여성 청소년이 아닌 구매자에게 향해야 한다"
▲ 토크쇼 ⓒ 이영주
이 궁금증에 답하듯 조 대표가 말했다.
"재작년에 만난 한 아이는 마음을 여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에 '씨리얼'이라는 영상을 만들면서 그 아이가 쓴 일기를 사용하고 싶어 허락을 구했다. 하지만 아이가 영상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 많았다. 이후 그 아이가 영상을 본 후 쓴 글을 읽었다. 그 글에는 '옛날 일은 과거로 놓고 가겠다, 이제 과거와 '안녕'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경험이 있는 친구들이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써 있더라. 가슴이 뻐근할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통역을 맡은 양징자 대표도 "전시를 보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생각했다. 그들도 성폭력, 성착취 피해자이지만 목소리를 내었기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다. 이 전시에서도 (청소년들의) '재수없어, 싫어'라는 짧은 말 뒤에 숨어 있던 그들의 목소리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아주 희망적이라 느꼈다"라고 말했다.
조 대표의 마지막 말을 기억하고 싶어 수첩에 옮겨 적었다.
"성착취라는 말이 일반화되면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사회가 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가 되면 죄를 짓고도 당당해하던 가해자들이 숨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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