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럴 땐 송혜교-박보검처럼? 자이언티와 정승환의 고백
[이끼녀 리뷰] 겨울에 생각나는 자이언티의 '눈'과 정승환의 '눈사람'
이어폰 끼고 사는 여자, '이끼녀' 리뷰입니다. 바쁜 일상 속, 이어폰을 끼는 것만으로도 마음에 여백이 생깁니다. 이 글들이 당신에게 짧은 여행이 되길 바랍니다.[편집자말]
"말레콘 비치 석양은 이 음악이랑 같이 들어야 200% 감동입니다."
▲ 남자친구<남자친구>의 한 장면 ⓒ tvN
겨울이다. 눈의 풍경이 우릴 찾아올 것이고, 얼마 전 늦잠을 자느라 첫눈을 놓친 나에게도 두 번째 눈은 찾아올 것이다. 그땐 음악을 들어야지. 말레콘 비치에 어울리는 노래를 듣던 그들처럼 나도 눈의 세상을 만나면 음악을 꼭 함께 들어야지. 사려 깊은 손길로 이어폰을 건네줄 박보검이 없다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 손으로 선곡해서 듣는 게 어쩌면 눈 내리는 쓸쓸한 풍경과 잘 어울리는 일 같기도 하다.
어쨌든, 나는 그 날을 위해 두 곡을 준비해뒀다. 자이언티의 '눈'과 정승환의 '눈사람'. 눈과 눈사람이라니 왠지 모르게 잘 이어지면서 온통 눈밖에 없는 세상이 펼쳐진다. 자이언티의 '눈'은 작년 12월에, 정승환의 '눈사람'은 올해 2월에 발표됐다. 가장 가까운 겨울에 나온 노래라서 두 곡을 선곡한 건 아니다. 눈을 소재로 한 명곡이 공교롭게도 지난겨울 한꺼번에 찾아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곡은 내게 '그냥' 좋은 곡이다.
두 곡이 좋은 건 눈의 정서가 진하게 담겨있어서다. 눈 내리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포근한데 시리고, 아름다운데 쓸쓸하고, 행복한데 서글픈 상반된 감정이 함께 일어난다. 그 묘한 기분이 '눈'과 '눈사람'의 멜로디와 가사에 마법처럼 표현돼 있다.
▲ 눈자이언티 '눈' ⓒ 더블랙레이블
"내일 아침 하얀 눈이 쌓여 있었으면 해요/ 그럼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려드릴게요/ 계속 내 옆에만 있어 주면 돼요/ 약속해요
눈이 올까요 우리 자는 동안에/ 눈이 올까요 그대 감은 눈 위에/ 눈이 올까요 아침 커튼을 열면 눈이 올까요" (자이언티, 눈(feat.이문세) 가사 중)
자이언티가 작사, 작곡한 이 노래는 이문세의 피처링으로 편안함이 배가됐다. 무엇보다 이 노래는 가사가 근사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났을 때 밖에 눈이 와 있다면 당신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려주겠다는 약속. 그 약속은 참 따뜻하다. 문득 백석의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떠올랐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눈이 내려서 나타샤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내리는 것. 이게 사랑의 모습이다. 세상의 인과법칙마저도 그 사랑에서부터 비롯되게 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것의 중심이고 시작이게 하는 것. 눈이 내리면 차를 내려주겠다는 가사도 무언가 묘하게 인과관계가 부자연스럽고, 그래서 더 사랑의 진실함이 묻어난다. 눈이 안 와도 차를 마실 수 있지만 눈이 오면 마실 수 있다는 룰이 생기면서 낭만적 언약이 만들어졌다.
▲ 눈사람정승환 '눈사람' ⓒ 안테나
정승환의 노래 '눈사람'도 가사가 좋다. 나는 다음의 두 구절이 와 닿았다.
"아무 노력 말아요/ 버거울 땐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어요"
"시간이 걸려도/ 그대 반드시 행복해지세요" (정승환, '눈사람' 가사 중)
이 가사를 보면 '내 욕심'은 먼지만큼도 없다. 오직 사랑하는 상대가 더 이상 마음 버겁지 않고 불행하지 않기만을 온 마음 다해 바랄 뿐이다. '버거울 땐 언제든 나의 이름을 잊어요'란 부분이 특히 짠하다. 누군가의 기억에서, 더군다나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서 지워지는 일을 그럭저럭 괜찮게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런데 이 곡의 주인공은,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힘들면 나의 이름을 잊으라고 말하는 것이다. 혼자 서 있는 눈사람처럼 외로운 가사다.
이 노래는 아이유가 작사하고 제휘가 작곡했다. 아이유의 곡 '밤편지'의 작사, 작곡과 똑같은 조합이어서 그런지 따스하면서도 동시에 가슴 시린 감성이 배어있다. 빨간 목도리를 두른 눈사람은, 만약 그 눈사람의 두 눈이 웃고 있다면 그것은 기쁨의 상징일 것이다. 하지만 내 머릿속의 눈사람은 '기다리는' 존재다. 깔깔깔 활발하게 떠들던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 서 있는 존재. 혼자서 하염없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게 눈사람의 이미지다. 그런 눈사람의 모습이 정승환의 곡에 그대로 담겨 있어서 듣고 있으면 안쓰러움에 아득해진다.
"멀리 배웅하던 길/ 여전히 나는 그곳에 서서/ 그대가 사랑한/ 이 계절의 오고 감을 봅니다"
"몹시 사랑한 날들/ 영원히 나는 이 자리에서"
이 노랫말처럼 눈사람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서서 영원만큼 긴 시간을 견뎌내는 사람이다.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눈사람 때문에 우리의 겨울은 따뜻하고, 끝까지 기다려도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는 눈사람 때문에 겨울은 또한 쓸쓸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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