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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미투 간담회에 다녀오다

등록|2018.12.07 17:19 수정|2018.12.09 16:21
* 사이버불링 예방을 위해 발제자들의 이름은 익명 처리했습니다.

지난 12월 5일 오후 6시 반, 중앙대학교 서울 캠퍼스 서라벌 홀 719호에서 '중앙대학교 강간연대 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에서 주최한 '침묵했던 당신을 위하여, ME TOO 간담회'가 열렸다.

중앙대 미투 간담회는 강간은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여러 차례 미투가 불거져 나와도 발전 없는 중앙대 내 제도 개선 및 2차 가해를 예방하기 위해 대학가에 존재하는 남성간의 강간연대 문화를 타파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에서 생겨났으며, 또한 함께 행동하는 자들의 연대를 찾기 위해 개최됐다.

사전에 대책위가 페이스북 및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던 간담회 홍보 글을 본 여성혐오자들은 에브리타임(대학교 시간표 어플로 학내 익명 커뮤니티 기능도 수행, 이하 에타)에서 대책위 위원들의 신상을 공유하며 '일부러 위원회 이름에 강간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집어넣은 거 아니냐', '꽃뱀이다', '그냥 자기가 맘에 안 들고 건수 잡았다 싶으니까 나도 미투 당사자예요 하고 자랑스레 페북에 올리던데'라며 비난 댓글을 수 십개씩 다는 등의 사이버불링을 가했다.

이런 여성혐오적인 여론이 지배적인 중앙대 에타의 부정적인 반응과 달리 간담회 당일은 120석에 달하는 중형 강의실이 발 디딜 틈 없이 121명(주최측 공식 통계)의 참가자들로 꽉 찼고, 공개적으로 여성혐오적인 언사를 던지는 이도 나타나지 않았다.

사회와 발제는 대책위 위원들이 간담회 참가자들에게 배포한 발제문을 읽으며 진행됐다. 발제 전 사회자는 사전에 허가받은 언론사를 제외하고 모든 촬영을 금한다고 공지했는데 이는 위에서처럼 위원회 학생들의 신상정보가 새어나가 에타에서 사이버불링 당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내려진 조치였다.

첫 번째 발제 '중앙대학교에서 미투를 외치다'는 대책위 위원인 ㄱ씨가 진행했다. 이 발제에서 ㄱ씨는 대책위와 이번 간담회가 생겨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시작은 지난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9월 4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중앙대 미투 사건은 초기에는 학내 구성원들의 많은 관심과 분노를 이끌어냈으나 점차 잊혀져갔고 가해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결국 피해자는 총학생회 및 신문사, 인권센터, 그리고 믿고 털어놓은 친구로부터 오는 2차 가해를 오롯이 혼자서 감내해야만했다.

결국 피해자는 체제의 반항자로 낙인까지 찍혔으나 숨죽여 이에 지지 않고 계속 소리를 냈다. 성폭력, 성매매를 일삼고 침묵하는 이들의 행동이 옳지 않고 그에 침묵할 수밖에 없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피해자는 자신의 미투가 결말을 알게 할 수 있는 미투로 만들고 싶었다며 피해자와 연대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한데 모아나갔다.

그리고 성폭력 사건은 결코 독립적이지 않으며 사회와 학과의 분위기, 학교의 제도와 체제가, 사람들의 생각이 가해자에게 추행을 허용했으며 그 안에서 또 다른 가해자들이 피해자에게 고통을 주는 것 또한 허용했다고 지적했다. 그리하여 피해자의 사건은 단순한 법적 영역의 성범죄가 아니며, 여성혐오를 통해 이뤄낸 강간연대 그 자체였다고 역설했다.

그 억압 속 피해자로서, 학내 어떤 기관과 제도의 입을 빌릴 수조차 없었던 고립된 증인으로서 피해자와 대책위는 '간담회를 통해 우리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내고자 하며, 피해자 본인이 소리를 높일 수 밖에 없는 이유와 피해자가 아직도 이렇게 과격하고 급하고, 비상식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말하고자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 '중앙대 남성연대를 꿰뚫다'는 학내 여성주의 교지 '녹지' 편집장 ㄴ 양이 진행했다.

ㄴ양은 남성 중심적인 학내 문화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는 수많은 2차 피해를 맞닥뜨리지만 이를 막거나 처벌할 제도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신고를 주저하거나 결국 포기하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인 '강간문화'를 폭로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학내 성폭력 사건을 두고 '성폭력은 법원이 판결할 일이므로 대학 공동체가 관여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해서 형사소송과 대학의 처분은 완전히 별개이며 범죄의 구성요소 성립 여부와는 상관없이 징계를 의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한국 사법부는 가해자가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할 정도로 폭행, 협박을 했을 때에만 강간죄 성립을 인정하는 '최협의설'을 취하고 있어 성폭력을 매우 좁게 해석해 대부분의 사건이 불기소 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인한 무혐의로 처리된다. 따라서 최협의설보다 더 넓은 관점에서 성폭력을 판단할 필요가 있는데 학교 공동체가 이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학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2차 가해 방지 또한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젠더 문제에 대한 무관심과 몰인식에서 오는 학생사회의 기계적 중립을 꼬집고 여성‧페미니즘 혐오가 학내에서 구체적인 위험수위(테러행위)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녹지 페이스북 페이지에 댓글테러, 페미니즘 대자보를 찢거나 '꼴페미', '불쌍한 정신병자들'등의 낙서를 하여 훼손, 학내 페미니스트들의 신상을 털어 사이버불링하기, 새벽에 성평등 위원회 위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욕설과 인신공격한 것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행위가 나타난 전반에는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에 범람하는 여성혐오가 바탕이 되었으며 에타 속 여성혐오는 일부 사용자들의 경향이 아니며 이를 묵인하는 사용자들 또한 여성혐오로부터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며 일침을 가했다.

결론 부분에서는 남성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성폭력이라는 자각을 가질 필요가 있으며 본인 안의 가해자성을 성찰하고 나아가 젠더 위계를 해체할 필요가 있다고 발제를 정리했다.

세 번째 발제가 이어지기 전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학생회장단의 학생회장과 부학생회장이 이번 11월에 일어난 영어영문학과 교수의 권력형 성폭행 사건을 언급하며 영어영문학과 학생들은 결코 권력형 성폭력에 눈감지 않을 것이며 어떤 사안에서도 피해자와 연대하고 2차 가해 또한 허용치 않을 것이라고 강력히 주장했다.

세 번째 발제는 중앙대 사회학과 학생이 중앙대에서 다섯 차례나 일어났던 남교수에 의한 권력형 성폭력(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위력에 의한 성폭력)에 대해 중점적으로 고찰했다.

권력형 성폭력은 특정 집단 내에서 힘의 우위에 있는 가해자가 자신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지위에 있는 피해자에게 저지르는 범죄로 교수와 학생 사이의 권력형 성폭력은 그 사이에 있는 지식권력의 위계로 인해 해당범죄 사실을 범죄라고 인지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교내 권력형 성폭력 범죄의 큰 문제는 주로 가해자 교수와 피해자 학부생‧대학원생 구도가 많아 가해자가 피해자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꽃뱀 취급은 물론 단체의 배신자로 낙인찍혀 집단 내 사람들에게 2차 피해를 겪을 확률이 높다.

남성 중심적인 교수사회 문화는 남성연대 그 자체이며 현재도 남 교수들은 '미투 비꼬기'등을 아무 제재도 받지 않은 채 수업시간에 던지고 있다. 발제자는 이러한 가부장적이고 문제적인 남성연대 교수세대의 문화는 학생들만의 힘으로 변화시키기 어려우며 학문공동체로서의 공동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마지막 발제 '제도 그 이상을 상상하라'는 대책위 ㅁ양이 진행했다.

ㅁ양은 지난 11월 2일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폐지 안건이 통과됨으로써 중앙대는 총여가 없는 대학이 되었고 성평등위원회는 여러 조건에서 총여를 대체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학생사회에는 여전히 더 많은 여성의 목소리가 필요하며 이를 종합해 정치적 실천으로 이어나갈 자치기구 설치의 필요를 알렸다.

이어 기계적인 중립성을 지키는 인권센터가 성폭력 사건의 신고를 받고 조사해야하는 규정과 달리 중재를 우선적으로 권하는 현실과 인권센터의 비밀유지서약서와 사건당사자간합의서가 피해자의 활동에 제약을 걸고 있다고 비판하며 전문성 있고 규정이 개선된 인권센터로 발전하길 주장했다.

그러나 한 가지 희망적인 사안은 최근 중앙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통과된 <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한 중앙대 학생회칙>이 성폭력을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절차를 명문화함으로써 중앙대 내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두고 있다는 것이다.

존재는 하지만 유명무실했던 회칙을 부활시킴으로써 중앙대 학생사회는 다시금 학생사회의 자정작용의 첫발을 내딛고 있으며 총여의 소멸은 일종의 경보음이자 상징일 뿐이며 우리 스스로가 다시 단단한 기반을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위해서는 인권센터의 변화와 학생사회의 변화 모두 필요하며 간담회에서 나눌 이야기들이 그 시작이 될 것이라 기대하며 발제를 마무리했다.

4차례의 발제를 마친 뒤 사회자는 재학생으로서 참가했던 어떤 학회나 세미나 보다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는 소감을 전한 뒤 15분여간의 휴식시간 후 '중앙대학교 여성혐오 이대로 괜찮은가'의 대주제와 소주제로 토론‧토의을 시작해나갔다.

각 발제 뒤에 자유 의견 개진 및 질문이 없었던 것과는 반대로 자유토론시간은 많은 참여자들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기 위해 줄을 지어 손을 들어 여성혐오로 얼룩진 중앙대학교 내의 혐오문화와 페미니스트들간의 연대에 대해 성토했다.

첫 번째 주제인 '중앙대 내 페미니즘 백래쉬'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에 자신을 2018년 인문대 학생회장이라고 밝힌 한 학생은 학생 자치 기구에 많은 여학우들이 참여할 필요가 있으며 학생회가 아닌 학생들도 학생 자치단체가 여성 인권에 더 큰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많은 참여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인문대는 이러한 자치기구와 학생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해 다른 단과대에 비해 자정이 잘 되는 편이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무지에서 오는 여성혐오적 표현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는 분위기를 형성할 필요가 있으며 우리의 목소리가 다수가 되고 커질 수 있도록 용기내자고 독려했다.

이어 서로 간에 존재를 모르고 있던 광고학과와 영화학과 내 성평등 위원회 학생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한 뒤 서로 연대하고 네트워크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이에 한 영문과 재학생은 여성 혐오 발언을 일삼는 교수를 공론화하기 두려웠으나 많은 영문과 및 교내 학우들이 이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더 이상 자신이 소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며 중앙대가 여성혐오에 관심을 갖는 학교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 번째 주제인 '총여학생이 사라지고 성평등 위원회가 설치된 중앙대에서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 해보는 시간이 됐다.

이 시간에는 안성에서 수업을 마치자마자 3시간을 달려 서울캠퍼스로 온 중앙대 안성캠퍼스 학생들이 안성캠 총여 졸속폐지와 학내 여성혐오적인 문화를 비판했다.

한 성평등위원회 위원은 모든 사안을 여성에 중점적으로 맞춘 총여와 달리 성평등위원회는 여성 문제만을 다루기엔 활동에 제약이 있으며 현재 다음 성평등위원회장 자리도 공석이라는 열악한 현실속에 장기적으로는 총여의 부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 미투 당사자는 용기 내 공론화했지만 학교에서는 어떤 연락도 오지 않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어떤 연락체계도 전무했다며 자신이 자발적으로 나서 대책위를 꾸릴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이야기하고 성평등 위원회보다 강력하고 활동적인 추가적 기구의 설립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뒤이어 자신을 중앙대 대학원생이라고 밝힌 발표자는 2017년 중앙대 학내신문에서 조사한 중앙대 여성 전임교원의 비율이 고작 21.35%라며 전체 교원간의 성비 불균형과 중앙대의 성적 불평등간에 관련이 있음을 주장했다.

마지막 토의 주제는 '제도 내 유일한 인권센터'였다. 중앙대 인권센터에 대한 참가자들의 전반적인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한 대책위 위원은 교내 인권센터 직원들을 이 자리에 초청했지만 단 한 명도 오지 않았으며 자신이 경험해본 바로 인권센터는 굉장히 형식적인 단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인권센터 내 규정 중에는 가해자가 공개 사과문을 붙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잠깐 붙였다 떼도 해도 제재할 수 없는 등의 규범 자체에 허점이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여기서 이야기하는 비판들을 정리해 성명서를 발의해 인권센터에 전달하는 게 좋다는 방안도 제시됐다.

또한 간담회에 유일하게 참여한 교수인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인권센터의 만성적 인력부족과 적은 여성 교직원 수가 학내 성차별적인 분위기를 고착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학내 페미니즘 수업 수료를 학교가 의무화해야하며 이 수업이 폐지되지 않도록 학생들이 지켜 나가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 여학생들이 학교에 가지고 있는 불만은 옛날부터 있어왔지만 모두 졸업하고 나면 문제의 제기부터 다시 하는 악순환의 연속이었으며 교내 페미니즘 운동을 기록하고 유지, 계승할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마지막으로 자신을 멀리 있는 섬에서 온 페미니스트라며 소개한 한 학생은 페미니스트들이 소수라지만 서울에 있는 페미니스트 학생들은 다른 지방보다 훨씬 많다며 당신들의 존재가 자신에겐 무척 큰 힘이 된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이 길은 힘들지만 이미 페미니즘에 대해 알아버린 이상 지나온 강은 다신 돌아갈 수 없기에 계속 함께 싸우겠다고 발언했다.

간담회는 각 과에 설치된 여성주의 단체들의 연합 결성을 중앙대 강간연대 대책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시작하겠다고 홍보하고, 교내에 부착된 영어영문학과 성폭력 가해 교수를 지지해 피해자에게 2차가해를 주는 대자보에 포스트잇을 붙여 피해자들을 응원하자는 의견을 마지막으로 참가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참여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성폭력 피해자를 도와야할 인권센터와 총학생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대학가에서 피해자들 스스로 주변의 2차 가해와 사이버불링에도 지지 않고 뜻을 함께하는 학생들을 모아 중앙대학교 미투간담회를 성황리에 열었다.

앞으로 중앙대 학생들은 강간문화에 맞서 지금의 뜨거운 공감과 연대를 일시적인 성토 대회로 소비하지 않고 여성혐오에 맞서 싸우는 강력한 페미니즘 공동체를 형성해 이 소중한 정신과 가치를 다음 세대의 학생들에게 전해줄 것이다.

그 작지만 큰 한걸음을 통해 한국사회와 대학교 속 남성 연대와 강간문화를 타파하고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공동체 속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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