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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즐기는 시골여행... '상생상회'가 뜬다

11월에 문 연 상생상회, 판로 개척하려는 청년농부들에게 인기

등록|2018.12.11 09:07 수정|2018.12.11 09:21

▲ 농업회사법인 둘래야의 천새미 팀장이 12월 1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마련된 상생상회 매장에서 고객들에게 거제 유자차 시음을 권하고 있다. ⓒ 손병관


"혹시 약제 성분이 들어있지 않나요? 제가 알레르기가 있어서..."
"전혀 없으니 안심하고 드세요."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앞을 지나는 외국인 관광객이 천새미(38)씨가 작은 종이컵에 담아 건네는 유자차 한 잔을 들이켰다. 경남 거제에서 유자차를 팔기 위해 서울에 온 천씨의 매대는 유난히 외국인들로 북적였다.

거제는 전남 고흥, 완도와 함께 중국의 유자가 처음 전래돼 재배된 곳으로 알려져있다. 천씨는 이곳에서 4대째 유자를 재배하는 후계농이다.

천씨는 "증조할머니 때부터 유자 강정을 만들어서 집안 어른들이 알음알음 아는 경로로 내다 팔았는데, 어느 순간 어른들이 다 돌아가셨다. 판로가 계속 이어졌다면 서울까지 직접 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로 말고도 또 다른 고민이 있었다. 천씨의 유자 농장은 농약과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자연농법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농장에서 재배한 유자는 모양이 예쁘지 않아서 서울 가락동이나 부산 엄궁동 농산물 도매시장의 경매사들에게 좋은 값을 받기 어렵다고 한다.

전북 장수의 해발 500m 고지에서 4년째 농사를 짓는 임시원, 김성애 부부의 고민도 비슷하다. 비대제와 제초제, 착색제를 전혀 안 쓰고 사과를 재배하는 이 부부는 자신들의 이름을 따서 농원 이름(시원애농원)을 지을 정도로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이들은 올해부터 직거래 장터를 많이 다니기 시작했다. 김성애(37)씨는 "청과물 시장에 물건을 내놓으면 들쑥날쑥 하는 시세에 따라 값이 매겨지기 때문에 제 값을 받지 못한다. 직거래 장터에서는 청과물 시장에 비해 20~30% 정도 더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11월 3일 서울 종로구 안국동 상생상회 개관 행사에서 매장을 둘러보고 있다. ⓒ 박원순 페이스북


지난달 3일 서울 종로구 안국빌딩 신관에 문을 연 상생상회는 이들처럼 도시 소비자들을 직접 만나려는 농촌 생산자들에게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1층 매장에서는 전국 기초지방정부 100여 곳에서 나는 가공식품과 건강식품·차 등 농특산물을 주로 팔고, 지하 1층에는 지역 특산물을 전시·홍보하고 세미나 등을 할 수 있는 이벤트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상생상회는 이윤을 고려하지 않고 10% 안팎의 낮은 판매수수료만을 받고 직거래 장터를 제공하기 때문에 생산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주말 행사를 기획한 서울시 관계자는 "귀농해서 재배한 농산물을 팔 곳이 마땅치 않은 청년농부들이 많다. 그런 분들을 위해 매대를 10곳 정도 만들었는데,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로부터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입지 선정 과정에서는 시민과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편의성 등이 주로 고려됐다. 동쪽에 창경궁과 종묘, 서쪽에 경복궁, 남쪽에 인사동 문화의 거리, 북쪽에 북촌 한옥마을이 있는 중간 지점에 상생상회가 있다. 시내 나들이 나온 시민들이 지하철(3호선 안국역)로 쉽게 방문할 수 있고, 외국인들이 주요 관광지를 돌다가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입지 조건을 갖춘 셈이다.

우리나라는 2007년 12월 국회에서 '도농교류촉진법'이 제정되고, 2년 만에 농식품부가 '도농교류 5개년 계획'을 발표하는 등 10여 년 전부터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움텄다. 그러나 인구 1000만의 대도시 한복판에 오프라인 매장을 마련하는 등 실질적인 첫발을 떼는 것은 상생상회가 사실상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상생상회는 일본의 지방정부가 지역 홍보 및 특산물 판매를 위해 도쿄 등 대도시 중심부에 세운 '안테나숍'을 벤치마킹해서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1994년 오키나와현이 도쿄 긴자거리에 '긴자 와시타숍'과 '긴자 구마모토관'을 연 이래 도쿄도 내에만 56곳의 안테나숍이 성업 중이다(2018년 9월 현재).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복고' 바람이 불면서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간접적으로 달랠 수 있는 안테나숍의 등장이 성공 요인으로 풀이됐다.

특히 도쿄에 있는 가고시마 유라쿠관은 지역 특산물 판매를 넘어 매장의 일부를 특산물 요리(흑돼지 샤부샤부)를 내놓는 레스토랑으로 이용하는 단계까지 진화했다. 현마다 기업 유치와 이주 안내를 해주는 직원이 점포에 상주하고 2020년 도쿄올림픽을 겨냥해 외국어 능력자를 직원으로 충원했다.
 

▲ 서울 종로구 안국동 상생상회의 매장 내 모습. 차와 건강식품, 음료 등 1000여 종에 달하는 농특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 손병관


일본의 안테나숍에 비해 한국의 상생상회는 이제 걸음마를 뗀 상태. 그러나 먹거리를 매개로 해서 서울과 지방을 연결하고, 마치 '여행을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들도록 도시 소비자들을 유치한다는 기본적인 컨셉은 동일하다.

강태웅 서울시 기획조정실장은 "지역 주민들 입장에서는 농특산물 판매 이외에도 서울에 지역을 알릴 채널 자체가 없다는 갈증이 있다. 지역을 알리고 서울과의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려는 역할을 상생상회가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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