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후손을 찾습니다"
열린사회희망연대, 신문에 광고... 마산 출신 사회주의계열 독립투사
▲ 열린사회희망연대는 독립운동가였던 김명시 장군의 후손을 찾는 광고를 신문에 냈다. ⓒ 윤성효
"사람을 찾습니다.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 장군의 형제자매 후손(친족)을 찾습니다."
창원마산에 있는 시민단체인 열린사회희망연대가 김명시(金命時, 1907-1949년) 장군의 후손을 찾고 있다. 이 단체는 12월 12일 신문에 "사람을 찾습니다"는 제목으로 광고를 냈다.
최근 이 단체는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 항일독립운동가 명도석(1885~1954,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선생과 함께 김명시 장군의 흉상(동상)을 세워야 한다고 창원시에 요구했다.
특히 내년 3·1독립만세(3·1혁명) 100주년을 앞두고 있어 항일독립운동가의 기념물 건립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창원에 세워진 독립운동가의 흉상이나 동상은 없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중국 화북지방에서 조선의용군 지휘관으로서 일본군과 총을 들고 싸운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렸던 게 김명시 장군이다"며 "이곳에 기념조형물을 세우는 일은 이 광장에 역사성을 부여하고 공간 미학적으로도 광장과 어울릴 것"이라고 했다.
김명시 장군은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을 벌였고, 정부는 아직 아무런 훈장을 추서하지 않았다.
이 단체는 "김명시 장군은 대다수 시민들에게 생소한 분이다. 그 이유는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을 한 탓"이라며 "그러나 지금 남북관계는 냉전의 시대에서 평화의 시대로 급속히 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오직 조국의 광복과 민족을 위해 일제와 목숨 걸고 싸웠건만 이데올로기로 인해 우리의 기억과 역사 속에서 잊히고 감춰진 김명시 장군 같은 분들도 이제는 합당한 재평가를 통해 명예회복이 되어야 한다. 다른 도시에서는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열린사회희망연대는 "앞으로 김명시 장군의 독립운동 공적이 인정되어 반드시 서훈이 추서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며 "이런 시도들은 민주성지라고 자부하는 우리 고장을 더욱 싱그럽고 활기 넘치는 시민 합창의 장이 되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나온 김명시 장군은 조선의용군으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고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었다.
김명시 장군에 대한 기록을 보면, "정말 여성으로서는 초인적인 의지와 기개", "불굴의 독립투쟁을 펼쳐나간 당대 최고의 여투사", "여성임에도 직접 조선의용군의 선봉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용감하게 이끌었던 여장부"라 표현하고 있다.
김명시 장군은 사회주의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오빠 (김형선)의 영향을 받고 자랐고, 서울 배화고등여학교에 입학했다가 중퇴했다.
그녀는 1925년 오빠가 가입해 있던 고려공산청년회에 들어가 활동하였고, 그 뒤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 유학생으로 가서 공부하다 1927년에 상해로 파견되었다. 김명시 장군은 중국 일대에서 항일무장투쟁에 앞장섰고, 대표적으로 하얼빈의 기차역과 경찰서, 일본영사관을 습격했다.
1932년 귀국해 인천지역 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을 교육했던 그녀는 활동이 발각되어 중국으로 피하려다 신의주에서 일본경찰에 체포되었다. 징역 7년을 살다 1939년 신의주형무소에서 만기 출소한 김명시 장군은 만주로 건너가 조선의용군 여자부대 지휘관으로서 항일무장투쟁에 나섰다.
김명시 장군이 해방 이후 서울로 돌아오자 시민들이 몰려와 "김명시 장군 만세"를 연호할 정도였다고 한다. 그녀는 해방후 좌익계열의 조선부녀총동맹 지도부로 활동했고, 남한 정부 수립 이후인 1949년 10월 부평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망했다.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고문은 "김명시 장군은 당시 경찰서 유치장에서 사망했다. 자살인지 타살인지 밝혀지지 않았다. 어떻게 하든 당시 형제자매들이 살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며 "형제나 후손들이 당시 시신을 인도 받았을 것으로 추정이 된다. 김명시 장군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도 아직 모른다"고 밝혔다.
그는 "형제자매의 후손이든 친척들이 있을 것이다. 무덤이라든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후손들을 통해 알 수도 있기에 찾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창원시가 기미년 독립만세 100주년을 앞두고 '독립운동 명문가'를 찾는 사업도 벌이고 있다. 김명시 장군의 어머니는 1919년 3월 독립만세운동에 가담했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기록이 있고, 오빠도 항일독립투쟁을 벌였다. 그의 가족이 독립운동을 벌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영만 고문은 "사회주의계열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 추서가 꼭 있어야 한다"며 "후손이거나 후손에 대해 알고 있는 분들의 연락을 당부 드린다"고 밝혔다.
▲ 열린사회희망연대는 12월 4일 창원마산 오동동 문화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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