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은행·경로당에서 명함 뿌리는 이 사람, 경찰 맞습니다

[보이스피싱의 모든 것 ⑦]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 인터뷰

등록|2018.12.31 10:09 수정|2019.01.08 11:03
개그 소재로도 종종 쓰이는 보이스피싱,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오마이뉴스>는 총 일곱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고, 범죄조직의 실체를 분석하는 한편, 현장에서 보이스피싱과 대면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봤다. 이 기사는 마지막회다.[편집자말]

▲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이 경로당을 찾아 보이스피싱 예방 강연을 하고 있다. ⓒ 서울 동작경찰서


보이스피싱 수사만 11년. 잔뼈가 굵은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은 올해 두 달 동안 관내 은행 89개 지점을 돌았다. 그는 '세일즈맨'으로 은행원들을 만났고, 대부업 광고 같은 디자인 명함에 보이스피싱 예방법을 적어 돌렸다. 쌈짓돈을 빼앗기는 노인들이 안타까워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 주민센터나 노인정에서 강연을 하기도 했다.

지난 6일 동작서 사무실에서 만난 신 과장이 건넨 명함은 독특했다. 이름 석 자와 휴대폰 번호가 있는 앞면과 달리 뒷면에는 붉은색 글씨로 '이런 전화는 100% 전화사기 의심'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로 '안전한 계좌로 이체', '싼 이자로 대출', '돈을 찾아서 냉장고·사물함 보관' 등 해당 항목이 눈에 띄었다. 신 과장은 "명함이 대출광고 같다"는 말에 "이런 명함은 아마 대한민국에 나밖에 없을 것"이라며 웃었다.

"명함에는 개인번호까지 있으니까 함부로 안 버리잖아요. 밤늦게 쓸데없는 전화가 오는 경우도 많아요. (보이스피싱이 아닌) 다른 사안으로 상담하는 사람도 꽤 있고요. 그래도 그런 것까지 감수해서 하나라도 예방하면 엄청난 일 아니겠어요? 한 400~500장 정도 인쇄해서 뿌린 것 같아요."

신 과장은 1986년 경찰 제복을 입었다. 우리나라에 보이스피싱 범죄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건 2006년. 그는 초창기인 2007년도부터 보이스피싱 수사에 뛰어들었다. 신 과장은 "보이스피싱 범죄는 초기부터 지금까지 거의 지켜봐온 것 같다"라며 "살인·폭력·강간 등 다른 강력 범죄는 줄어드는 추세지만, 유독 보이스피싱 범죄가 급증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보이스피싱 예방 문구가 담긴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의 명함. ⓒ 배지현


동작서는 이런 경향을 반영해 지난해 9월 '전화금융사기검거 TF(전담팀)'를 만들었고, 그 결과 검거가 두 배 이상 늘었다. 올해에는 용산·마포·영등포·서초경찰서에도 전담팀이 생겼다.

신 과장은 보이스피싱 흐름을 보면 1년 6개월에서 2년 간격으로 증감이 반복되고, 범죄 유형도 유행을 탄다고 했다. 최근에는 '대출사기형'이 급증했다. 그는 "주로 20~30대 피해자들이 걸려든다"라며 "돈이 필요한 절박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거래실적을 높여 신용등급을 올려야 한다고 속인 뒤 돈을 이체받는다"라고 설명했다.

요즘에는 정부가 초강력 대출규제를 실시하면서 앞으로 대출이 어려워진다는 보도가 나오자, 저금리 대출빙자 사기가 늘었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이다.

"해커가 신용정보를 사서 중국(보이스피싱 기업)에 건당 파는 거예요. 제2금융권, 제3금융권만 이용 가능한 절실한 사람들은 3~4배가량 더 비싸죠. 안 그래도 절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두 번 울리는 짓이에요."

KT 통신장애 사건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었다. 화재지역에 거주하는 고객에게 무작위로 전화를 걸어 피해보상 설명을 들으려면 '0번'을 누르게 하는 등 금융정보를 빼내는 식이다. 보이스피싱 기업은 과거 억양이 강한 목소리로 어설프게 내뱉던 조선 동포 대신 국내 대학생을 고용하고,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특정 대상을 공략하면서 전문적으로 탈바꿈했다.

신 과장은 "사기 유형이 그때그때 사회적 흐름에 맞게 변화한다"라고 설명했다.

수백 장씩 명함 뿌리며 '보이스피싱 예방' 홍보
   

▲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이 보이스피싱 예방 문구가 담긴 자신의 명함을 은행 직원에게 건네고 있다. ⓒ 서울 동작경찰서



고전적인 수법이지만, 납치빙자형도 꾸준히 있다. 지난달에도 70대 노인 두 명에게 아들을 납치했다며 1700만 원을 받아내려 한 '수금책' 말레이시아인이 경찰에 검거됐다. 여아무개씨는 이틀에 걸쳐 피해자들에게 "아들이 친구 보증을 섰는데 수천만 원이다, 지금 아들을 데리고 있는데 돈을 보내지 않으면 죽이겠다"라고 속였다. 지난해에는 자식이 무사한 걸 확인한 피해자가 은행에서 혼절한 경우도 있었다.

"납치빙자형은 주로 학부모나 노인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져요. 아무래도 노인들을 속이는 게 쉬우니 노인들의 피해가 더 많은 편이에요. 당신 자식이 내 돈 3천만 원을 빌렸는데 이자도 갚지 않아서 지금 폭행하고 있고, 장기라도 팔겠다는 거죠. 옆에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리게 해요. 워낙 놀란 상황이라 자식 목소리로 착각해 어떻게든 돈을 뽑아 건네요."

신 과장이 은행과 노인정을 돌며 예방법을 전파하기 시작한 계기는 이런 노인들을 향한 안타까움이었다. 그는 "그 돈이 대부분 어디서 나왔겠나, 자식이나 손자에게 받은 용돈을 조금씩 모아둔 건데 한 번에 다 날리면 피해자들은 앓아눕는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서울 구로구 오류지구대장으로 근무하는 동안에는 주민센터나 경로당을 돌아다녔다. 신 과장은 '어르신'이 모이는 곳이면 찾아가 20분만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미리 준비한 PPT 자료로 실제 보이스피싱 피해 사례를 소개했다.

어르신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대부분 "나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다", "내 친구도 당할 뻔했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신 과장은 "이게 별것 아닌 듯해도 교육을 한번 받은 분들은 절대 피해를 안 본다"라며 "교육을 들었던 분이 가족이나 다른 노인에게 얘기하면 전파도 되는 효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동작경찰서에 온 후부터는 은행까지 돌았다. 신 과장은 지난 3월과 4월에 거쳐 관내 은행 89곳을 매일 두 시간씩 돌았다. 처음에는 '경찰이 왜 여기에 오나'라는 반응이었다. 그래도 5분만 시간을 내달라며 지점장을 설득하고, 은행원들에게는 새로 만든 명함 600장을 창구에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은행용 명함에는 '현금 인출자 중 112 신고 대상자'로 ▲ 당황하거나 겁먹은 표정으로 서둘러 인출하는 자 ▲ 현금 인출기에서 수회에 걸쳐 다액을 인출, 전화를 끊지 않고 인출하려는 자 등이 적혀 있었다.

"보이스피싱은 (은행이 쉬는) 토요일, 일요일, 그리고 공휴일에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요. 특히 직접 돈을 인출해 건네는 대면편취형 사건이 늘고 있는데 피해자들이 현금을 찾기 위해서는 은행에 가야 하잖아요. 그렇기에 은행 직원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가 절실했어요.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다녀와서 감기로 일주일 동안 앓기도 했어요. 그래도 은행이 그만큼 중요하니 내가 세일즈맨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은행원들을) 설명하고 이해시켰죠."

"전화 한 통으로 노후자금 날아가... 국가도 손실"

은행과 경로당을 돌아다닌 성과도 분명 있었다. 은행을 한 바퀴 돈 후 두 달 동안 은행 관계자로부터 9건의 전화를 받았다. 지난 3월에는 신 과장의 휴대폰으로 직접 전화가 와 출동한 현장에서 1800만 원 피해 사건을 미리 잡아냈다. 최근에는 한 은행에서 2~3번 신고한 사례도 나왔다고 한다.

신 과장은 "콜센터 90% 이상은 해외에 있다고 보면 된다, 과거보다 더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라며 "다른 나라와의 공조가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국가 간 이해관계가 있다 보니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폴이나 파견 주재관을 통한 깊이 있고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보이스피싱 사기가 점조직으로 발전하면서 검거가 어려워지는 만큼 가장 중요한 건 예방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신 과장은 "검거도 중요하지만, 가장 좋은 대책은 예방"이라며 "모든 범죄가 예방이 중요하지만, 보이스피싱은 특히 나만 조심하면 된다, 그렇기에 (국민에게) 많이 알리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또 "언론에서도 보도를 많이 해주고, 인기 드라마 사례로 넣는다면 상당히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사나 경찰은 전화를 걸어 추궁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신 과장은 "기관사칭형 범죄는 피해자를 추궁해 긴장감을 높이고 전화를 끊지 않게 하는데, 경찰이나 검사는 전화상으로 범죄와 관련해 자세히 묻지 않는다"라며 "사회 초년생이 유독 놀라는데 (공공기관은) 강압적으로 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마지막까지 그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자들 대부분이 서민층이고, 특히 노인분들은 노후자금을 전화 한 통으로 날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리고 일단 피해가 발생하면 그 피해금이 외국으로 송금되기 때문에 회복이 어려워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입니다. 그렇기에 보이스피싱 범죄에 대대적인 예방 활동과 검거 활동이 계속 잘 이뤄졌으면 합니다." 
 

▲ 신동석 동작경찰서 수사과장. ⓒ 배지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