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도 소용없는 안전줄...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단독 인터뷰]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 "나도 비정규직... 아들의 꿈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
▲ 연기가 나오지 않은 두 굴뚝최근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근무했던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의 18일 오후 모습. 사진에 보이는 왼쪽의 굴뚝 2기에서는 발전소 가동이 중단 되어 연기가 나오지 않고 있다. ⓒ 이희훈
"너무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의 목소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김씨는 지난 13일 아들이 사망한 태안화력발전소 현장조사에서 목격한 광경을 전하며 분노했다. 용균씨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숨진 지 이틀 후에 들어간 사고현장이었다.
18일 오후 충남 태안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김미숙씨는 태안화력 작업환경에 대해 "계단도, 작업로도 다 위험하고 열악했다"며 "아들이 일한 9, 10호기만 멈춰 있는데 나머지 1~8호기도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고 당시 상황에 대해 김씨는 "경찰이 병원으로 와달라고 하긴 했지만 병원 응급실에 있는 줄 알았다"며 "응급실에서 몇 번이나 명단을 확인하다가 영안실로 갔다"고 전했다. 또 서부발전은 물론 용역업체 등 회사 측은 사고를 알리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고도 밝혔다.
또 "회사 이사라는 분이 찾아와 '죄송하다'면서도 '용균이는 착한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고, 고집도 세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회사 관계자가 처음부터 사고 원인을 고인에게 전가하려한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어머니 김씨는 "최근 3개월이 늦둥이 외아들과 유일하게 떨어져 산 날"이라며 "용균이만 안 아프고 오랫동안 같이 있기만 바란 게 전부인데 왜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느냐"고 울먹였다. 고인은 "카톡 아이디가 '가정 행복'이었고, 부모가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좋아했다"고 회상했다.
다음은 고 김용균씨의 빈소에서 고인의 부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용균이 죽은 후 들어간 화력발전소, 그곳엔
▲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이희훈
▲ 최근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가 18일 오후 충남 태안군에 마련된 장례식장에서 인터뷰 도중 아들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 용균씨의 죽음 이후 지난 13일 직접 둘러본 태안화력 내부는 어땠나?
"(용균이의) 사고 지점에 팽팽한 안전줄(비상 정지 장치)이 있었다. 위험이 감지될 때 안전 줄을 당기면 기계가 자동으로 멈추게 돼 있단다. 그런데 평소에는 안전줄이 느슨하게 늘어져 있었다고 한다. 일을 하다 안전줄을 건드려 기계가 멈추면 원청에서 책임을 묻는다고 해서 느슨하게 해 놓았단다. 보여주기식 안전줄이었던 거다. 너무 화가 나 짐승처럼 울었다.
한 마디로 아들이 오가던 계단도, 작업로도 다 위험했다. 열악했다. 석탄가루가 깔린 내리막길을 내려가다 옆 난간을 잡으려 하자 관계자가 '잡으면 안 된다'고 했다. 지금은 가동 중이 아니라 상관없지만 원래 발전소가 가동을 할 때는 떨어질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철문과 철문을 지나 한참을 들어갔는데 바닥은 지저분하고 아휴... 컨베이어 벨트에 떨어진 석탄을 주워 올리는 일을 했다는 데 그 양이 엄청났다. 그 일을 밥 먹는 시간 빼고 자기 돈으로 컵라면 사 먹으면서 약 2킬로미터를 오가며 밤새도록 한 거다. 막노동도 이런 막노동이 없구나 하는 생각에..."
▲ 최근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근무했던 충남 태안군 한국서부발전 태안발전본부의 18일 오후 모습. 발전소 건물 사이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 이희훈
- 현재 태안화력 9, 10호기가 멈춘 상태인데.
"아들이 일한 9, 10호기만 멈췄다. 하지만 1~8호기도 같은 위험에 노출돼 있다. 나머지 1~8호기도 지금 당장 멈춰야 한다."
- 사고 소식은 언제 어떻게 전해 들었나?
"(12월 11일) 아침 6시가 넘어 태안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용균이 일로 경찰서로 와달라'고 했지만, 생사가 엇갈린 문제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태안에 거의 도착할 즈음 경찰서에서 다시 태안의료원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병원 응급실에 있는 줄 알았다.
응급실에서 두 번 세 번 확인했는데 '김용균'이란 환자는 없다고 했다. 설마 옆에 있는 영안실은 아니겠지 했는데... 영안실에서 용균이 얼굴을 보는 순간 그냥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탄 가루가 얼굴에 잔뜩 묻어 있었다(눈물). 믿기지 않았다.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들의 다른 몸을 보려고 하자, 관계자들이 못 보게 막았다. 이유를 묻자 '훼손이 심해 충격을 받을 것 같아 보여드릴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상태인지 알아야겠다고 버티자 '머리와 몸이 분리되고 등은 갈려 타버린 상태'라고(울음)...
비참하고 끔찍했다. 가진 것 없지만 착하게만 살아온 아들인데 왜 이렇게 험악한 꼴을 당해야 하나, 용균이만 안 아프고 오랫동안 같이 있기만 바란 게 전부인데 왜 이런 일이..."
조문 온 이사 "용균이는 착한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 최근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아버지 김해기씨. ⓒ 이희훈
- 사고 직후 서부발전에서는 연락이 안 왔나?
"(사고 후에도) 경찰이 연락을 해왔고 회사와 병원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경찰이 연락한 때도 사고가 난 지 3시간 정도 지난 아침 6시가 넘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된다."
- 용균이가 속한 협력업체 측은 처음 만났을 때 뭐하고 했나?
"회사 이사라는 분이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했다. 이어 '용균이는 착한데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고, 고집도 세다'고 했다."
- 어떻게 구미에서 먼 서부발전 태안화력 협력업체에 취업하게 됐나?
"(용균이를) 떼어 놓고 싶지 않았다. 매일 보고 싶었다.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었는데 경북 김천에 있는 관련 업체에 취업이 확정됐다. 그런데 업체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이후 연락이 안 왔다. 마침 태안에 일자리가 있다고 해 어쩔 수 없이 멀리 이곳까지 오게 됐다."
- 취업 후 3개월간 용균씨가 회사 생활을 어떻게 얘기했나?
"처음엔 회사 생활 어떻냐고 하면 '괜찮다'고 했다. 그래서 여느 직장하고 비슷한 줄만 알았다. 그런데 일한 지 한 달 반쯤 지나 예비군훈련을 받으러 왔는데 '힘들다'고 했다. '어떤 일이 힘드냐'고 물었지만 자세히 얘기하지 않아, 그냥 배우는 과정이고 야간 일이라 힘드나 보다 생각했다. 용균이는 부모 걱정할까 봐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고 힘들어도 웃는 아이였다(한숨). 그렇지만 이렇게 힘들고 위험한 막노동을 하는 줄은 정말 몰랐다."
- 첫 월급 타고 보내온 선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첫 월급 타고 양손에 홍삼이랑 영양제, 비타민 화장품을 사 가지고 왔다. 엄마 아빠 생일을 잊지 않았고, 지난 어버이날에도 카네이션 상자 안에 편지를 써 마음을 전했다. 아들이지만 딸 역할까지 해왔다."
"용균이 카톡 아이디는 '가정 행복'... 아들 뜻 찾아 살 것"
▲ 최근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아버지 김해기씨가 18일 오후 충남 태안군에 마련된 아들의 장례식장에서 영정 앞을 지나고 있다. ⓒ 이희훈
- 아들 용균씨는 어떤 아이였나?
"늦둥이 외아들인데 태안화력발전소 일을 하기 전까지 줄곧 같이 살았다. 최근 3개월이 유일하게 떨어져 산 날이다. 용균이는 부모가 웃고 행복해 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용균이 카톡 아이디가 '가정 행복'일 정도였다. 한번도 속 썩인 적 없었다. 더운 날이면 꼭 아이스크림을 사와서 부모에게 먼저 비닐을 벗겨주고 맨 마지막에 먹는, 어른을 공경하는 그런 아이였다."
- 고인이 가졌던 꿈은?
"한국전력에 취업하고 싶어 했다. 관련 자격증 공부도 하면서 꿈을 키웠다."
-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는데 누가 처벌받아야 한다고 보나?
"원청사장, 하청업체에 무리하게 일을 시킨 사람들, 원청의 요구를 받아준 하청업체 책임자와 관리자 다 엄벌에 처해야 한다."
- 서부발전에 하고 싶은 말은?
"원청업체 직원들도 자식이 있을 것 아니냐. 자기 자식이 귀한 만큼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내 자식이 일한다는 심정으로 일을 시켰으면 한다."
- 문재인 대통령 면담을 요청했는데, 만난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나?
"우리 아들이 생전에 팻말을 들으며 했던 그 뜻(비정규직 철폐)을 같이 하고 싶다. (대통령께) 공공기관을 어떻게 운영할 건지, 어떤 식으로 책임을 지게 할 건지, 재발방지 대책 등을 내놓으라고 말하려 한다."
- 지난 17일 정부가 현장조사 결과와 대책을 발표했는데.
"노력하는 건 보이는데 구체적이지 않고, 비정규직에 대한 정규직화 방안도 들어 있지 않다. 대충 넘어가려는 것다. 현장 동료 직원들 얘기가, 정규직이 말하면 바로 시정이 되는데 비정규직이 요구하면 2~3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더라. 이번 일은 알고도 가만 있어서 생긴 인재다. 사람이 일회용이 아니지 않나."
- 빈소에서 세월호 가족협의회 관계자와 고 이민호군 아버님과 만났는데.
"같은 아픔을 가진 분들이라 가슴에 와닿았다. '자식을 잃고 어떻게 살아갈까' 막막했는데 이분들을 만나 살아야 할 목표가 생겼다. 대통령을 만나 아들의 소망을 전하고 억울한 누명 벗겨주고 목숨을 앗아가는 외주화를 막기 위해 싸우고 싶다."
-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머니) "너무 감사하다. 엎드려 절하고 싶은 심정이다. 유가족도 시민대책위도 힘이 없다.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실어 달라. (용균이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달라. 주변에 위험한 일터가 굉장히 많다. 도와주셔서 앞으로 미래의 청춘들이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
(아버지) "사회에 만연해 있는 나쁜 관행이 청산돼 안전하고 밝은 사회가 되도록 도와달라."
- 아들 용균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어머니) "너 많이 보고 싶어. 너는 갔지만 엄마는 네가 원했던 그 뜻을 찾아 살 거야. 아들 사랑한다."(눈물)
(아버지)"아들아! 좋은 세상에서 함께 다시 만나..."(울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는 질문에 어머니 김미숙씨는 "엄마는 네가 원했던 그 뜻을 찾아 살 거야"라고 말했다. 좀더 구체적으로 "우리 아들이 생전에 팻말을 들으며 했던 그 뜻을 같이 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 '아들의 뜻'은 '비정규직의 철폐'였다. 그렇게 아들의 뜻을 따라 엄마는 비정규직을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그 엄마 역시 비정규직이다.
▲ 최근 태안화력발전소 컨베이어벨트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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