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 세월호를 겪고도 나아진 게 없다면...
민언련 신문 모니터 보고서
12월 18일 오후, 강릉의 한 펜션에 놀러 갔던 고등학생 열 명이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죽거나 다친 채 발견됐습니다. 갑작스런 사고에 기자들은 즉시 전방위 취재에 나섰습니다. 일산화탄소가 왜 유출된 것이며 학교의 책임은 없었는지 등 다양한 질문과 문제의식에 대한 답이 속속 전파됐습니다. 여기까지는 기자들이 제 역할을 해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의 도를 넘어선 취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피해자와 같은 반 학생의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그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에 찾아가 "대성고 학생인 거 알아요"라며 길 가던 학생에게 사고에 관한 취재를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4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 언론의 몰상식한 행태가 떠오르는 순간입니다. 취재윤리는 매번 지켜지지 않지만, 민언련은 그저 귀에 못이 박히도록 거듭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이크 댄 그 사람, 소중한 이를 잃었을 수도...
이번 사건이 터지자 기자들은 피해자 학생들이 다녔던 연신내 대성고등학교 인근을 직접 방문해서 취재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대성고 페이지)에 제보된 내용들에는 취재진이 대성고와 인근 지역까지 찾아와 취재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있습니다.
주변 학생 취재는 상황에 따라 가능한 영역입니다. 피해자들이 평소 어떤 학생이었는지 혹은 다른 드러나지 않은 정황은 없는지 취재함으로써 공익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취재진의 행태는 그 도가 지나칩니다.
익명 사이트라는 한계는 있지만 대성고 페이지에 올라온 몇몇 제보에 의하면, 해당 고등학교를 찾은 기자들이 죽은 사람에 대한 취재를 하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래 제보에는 기자가 대성고 학생이 아니라는 학생에게 "학생증 까보라"며 대성고가 아님을 입증하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취재와 단독에 눈이 멀어서 인권이나 취재윤리 따위는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또 이번 사고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어떤 기자들은 피시방과 음식점, 근처 학원까지 들어가 피해 학생에 대해 묻거나 심지어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학생의 사진까지 보여주고는 "이 학원 다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해당 페이지가 익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모든 제보를 다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복수의 제보가 학생들에 대한 기자들의 무리한 취재라는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고, 4년 전 세월호 사고 때 기자들이 보여준 취재행태가 겹쳐지는 만큼 이번 사고에서도 기자들이 막무가내식 취재를 벌인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취재는 한층 더 조심해야
많은 기자들이 해당 사안을 취재하면서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포함해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사용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취재 의향을 묻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텍스트만으로 이뤄지는 소셜미디어 취재 특성상, 기자가 제아무리 선한 의도로 접근했어도 대상자는 거부감과 오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A사 이아무개 기자는 재학생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밝혀도 그는 재차 연락처를 요구했습니다.
B사 최아무개 기자와 C사 이아무개 기자의 취재시도 정황입니다. 이들은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일지 모르는 상대를 취재하면서도 피해자의 이름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찬가지로 조심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 취재'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2017년 12월 내놓은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제1장 제3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면이나 유선 취재가 아닌 인터넷 취재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최대한 주의하며 예의를 차리라는 겁니다. 아래 해당 내용을 첨부합니다.
그나마 D사 박아무개 기자는 상대방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였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며,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고 이 취재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설명했습니다. 또한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중한 요청이라 하더라도, 과연 고인이 어떤 학생이었는지, 어떤 친구였는지를 알아서 전해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기자라면 최소한 재난보도준칙을 숙지하라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계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 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재난보도준칙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피해자 주변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 기자들이 취재를 시도한 이들 중에는 평소 피해자들과 각별한 관계였던 학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짜고짜 취재를 시도하며 취재원을 사람 아닌 정보원으로만 간주하는 태도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취재 기자를 위한 재난보도 매뉴얼>(데보라 포터, 셰리 릭카르디 저) 105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행동지침이 나옵니다. 부디 이번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이 아래 내용을 숙지하고 다음 번에는 같은 실수를 벌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당 내용을 첨부합니다.
한 번의 참사를 겪고도 나아진 것이 없다면
죽음을 취재하는 것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면서, 기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고역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노력과 고충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강릉 펜션 사고로 피해자 주변의 학생들은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겪었습니다. 이 부분을 취재할 때 기자들이 최대한의 조심성과 예의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배려가 결여된 취재 행위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2차 피해로까지 변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고 때 같은 비판을 겪고도 막무가내식 취재관행을 극복하지 못한 언론사와 선배 기자들 역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혹시 막내 기자들에게 취재 내용을 빨리 보내라고 독촉해 과도한 속보 경쟁을 유발하지 않았는지, 더 자극적인 내용을 가져오라고 채근하지 않았는지 자성하길 바랍니다. 이런 보도행태는 기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고 '기레기'라는 명칭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꼴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일부 기자들의 도를 넘어선 취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으로 해당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피해자와 같은 반 학생의 연락처를 물어보거나, 그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에 찾아가 "대성고 학생인 거 알아요"라며 길 가던 학생에게 사고에 관한 취재를 시도했다는 것입니다.
마이크 댄 그 사람, 소중한 이를 잃었을 수도...
이번 사건이 터지자 기자들은 피해자 학생들이 다녔던 연신내 대성고등학교 인근을 직접 방문해서 취재에 나섰습니다. 실제로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대성고 페이지)에 제보된 내용들에는 취재진이 대성고와 인근 지역까지 찾아와 취재를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 있습니다.
주변 학생 취재는 상황에 따라 가능한 영역입니다. 피해자들이 평소 어떤 학생이었는지 혹은 다른 드러나지 않은 정황은 없는지 취재함으로써 공익적 목표를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드러난 일부 취재진의 행태는 그 도가 지나칩니다.
익명 사이트라는 한계는 있지만 대성고 페이지에 올라온 몇몇 제보에 의하면, 해당 고등학교를 찾은 기자들이 죽은 사람에 대한 취재를 하려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드는 수준이었습니다. 아래 제보에는 기자가 대성고 학생이 아니라는 학생에게 "학생증 까보라"며 대성고가 아님을 입증하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취재와 단독에 눈이 멀어서 인권이나 취재윤리 따위는 잊어버린 것은 아닌지, 또 이번 사고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또 다른 제보에 따르면, 어떤 기자들은 피시방과 음식점, 근처 학원까지 들어가 피해 학생에 대해 묻거나 심지어는 피해자로 추정되는 학생의 사진까지 보여주고는 "이 학원 다니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물론 해당 페이지가 익명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만큼 모든 제보를 다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복수의 제보가 학생들에 대한 기자들의 무리한 취재라는 하나의 지점을 가리키고 있고, 4년 전 세월호 사고 때 기자들이 보여준 취재행태가 겹쳐지는 만큼 이번 사고에서도 기자들이 막무가내식 취재를 벌인 것은 아닌지 충분히 의심해볼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한 취재는 한층 더 조심해야
▲ 18일 강릉 펜션에서 참변을 당한 고교생들이 서울 은평구 소재 대성고등학교 학생들로 확인된 가운데 닫힌 교문 앞은 취재진으로 북적였다. ⓒ 정대희
많은 기자들이 해당 사안을 취재하면서 페이스북 페이지 '서울대성고등학교 대신 전해드립니다'를 포함해 다양한 소셜미디어를 사용했습니다.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취재 의향을 묻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텍스트만으로 이뤄지는 소셜미디어 취재 특성상, 기자가 제아무리 선한 의도로 접근했어도 대상자는 거부감과 오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A사 이아무개 기자는 재학생에게 페이스북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상대방이 거절 의사를 밝혀도 그는 재차 연락처를 요구했습니다.
B사 최아무개 기자와 C사 이아무개 기자의 취재시도 정황입니다. 이들은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일지 모르는 상대를 취재하면서도 피해자의 이름을 언급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마찬가지로 조심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인터넷 취재'에 대해서는 조선일보가 2017년 12월 내놓은 윤리규범 가이드라인 제1장 제3조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대면이나 유선 취재가 아닌 인터넷 취재에서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 최대한 주의하며 예의를 차리라는 겁니다. 아래 해당 내용을 첨부합니다.
제3조. 인터넷 취재
② 메일이나 스마트폰의 문자 및 채팅 서비스 등을 이용한 취재는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
③ 메일과 문자 메시지 및 채팅 서비스를 통한 취재에서는 표현이나 단어 사용에 예의를 다한다.
그나마 D사 박아무개 기자는 상대방이 피해자와 가까운 사이였을지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며, 상대방에게 공감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고 이 취재를 통해서 무엇을 전하고 싶은지 설명했습니다. 또한 전화번호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번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정중한 요청이라 하더라도, 과연 고인이 어떤 학생이었는지, 어떤 친구였는지를 알아서 전해줄 필요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기자라면 최소한 재난보도준칙을 숙지하라
세월호 사고 이후 언론계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를 담아 언론진흥재단에서 발간한 재난보도준칙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피해자 주변 사람들의 심리적 안정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 기자들이 취재를 시도한 이들 중에는 평소 피해자들과 각별한 관계였던 학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다짜고짜 취재를 시도하며 취재원을 사람 아닌 정보원으로만 간주하는 태도가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수 있는 것입니다.
▲ 재난보도준칙 ⓒ 민주언론시민연합
또한 <취재 기자를 위한 재난보도 매뉴얼>(데보라 포터, 셰리 릭카르디 저) 105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상세한 행동지침이 나옵니다. 부디 이번 사건을 취재한 기자들이 아래 내용을 숙지하고 다음 번에는 같은 실수를 벌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해당 내용을 첨부합니다.
▲ 취재 기자를 위한 재난보도 매뉴얼 ⓒ 민주언론시민연합
한 번의 참사를 겪고도 나아진 것이 없다면
죽음을 취재하는 것은 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면서, 기자들 입장에서는 가장 고역일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의 노력과 고충은 존중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강릉 펜션 사고로 피해자 주변의 학생들은 직·간접적으로 죽음을 겪었습니다. 이 부분을 취재할 때 기자들이 최대한의 조심성과 예의를 발휘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배려가 결여된 취재 행위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2차 피해로까지 변질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세월호 사고 때 같은 비판을 겪고도 막무가내식 취재관행을 극복하지 못한 언론사와 선배 기자들 역시 비판받아 마땅합니다. 혹시 막내 기자들에게 취재 내용을 빨리 보내라고 독촉해 과도한 속보 경쟁을 유발하지 않았는지, 더 자극적인 내용을 가져오라고 채근하지 않았는지 자성하길 바랍니다. 이런 보도행태는 기자들이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깎아먹고 '기레기'라는 명칭을 스스로 뒤집어쓰는 꼴임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박철헌님은 민주언론시민연합 인턴입니다. 이 기사는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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