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 카풀 최대 피해자는 택시기사가 아니다
[공유인가 약탈인가 ②] 위험에 처한 시민
▲ 카카오모빌리티는 기사와 승객을 모집하면서도 회사와 사용자의 책임과 권리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 카카오모빌리티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허구의 세계만이 아니다. 이 시간 사회 속에 펼쳐지는 냉엄한 현실조차 이야기의 형태로 제시되고 소비된다.
현실의 이야기판에서는 무수히 많은 '작가'가 등장해 제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호소한다. 여기서 주요 작가들은 정부, 기업, 언론 등 힘깨나 쓰는 주체들로, 이들은 서로 치고받으며 싸우다가도 어느 순간 끌어안으며 연대하기도 한다. 독자에게 현실을 어떻게 인식시키느냐에 따라 얻어낼 '고료'가 달라지는 탓이다.
그런 점에서 담론은 현실에 대한 왜곡된 이야기가 되기 쉽다. 현실을 보여주기보다 가로막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의 중심에 선 카카오 카풀은 어떤 '이야기'로 제시되고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누구의 이야기를 지지하는가?
현재 널리 유통되는 이야기 속에는 3명의 주요 인물이 등장한다. 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 택시기사, 정부. 그리고 이 관계를 엮는 것은 '혁신(또는 창의성)'과 '저항', 또는 '불가피한 변화' 대 '생존권 싸움'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대상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바로 시민이다. 현재, 그리고 앞으로 카카오 운전자로 차를 몰거나 그 차에 승객으로 몸을 싣게 될 시민들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될까? 핵심 주체를 빼놓고 혁신과 불가피한 변화를 주장하는 것이 제대로 된 이야기일 수는 없다.
고용 아닌 고용의 확산
▲ 많은 우버 파트너들은 기대했던 것만큼 수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 UBER
나는 '우버의 나라' 미국의 대학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런 내 눈에 비친 카카오 카풀은 혁신과 거리가 멀다. 모바일 플랫폼을 활용한 자가용 유상운전의 허용이 혁신이라면, '짝퉁 우버'보다 '원조 우버'를 들여오는 게 더 확실한 혁신이고 세계적 흐름에도 맞는 일이 아닐까?
카카오 카풀을 창의나 혁신으로 볼 수 없는 까닭은 단지 외국 서비스를 그대로 베껴왔기 때문만이 아니다. 우버 모델의 확산 자체가 전세계로 번지고 있는 '비정규직 플랫폼 노동'과 '디지털 약탈 경제'의 심각한 징후이기 때문이다.
최근 출간된 알렉스 로센블라트의 <우버랜드>는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책은 패스트푸드 체인에서 일하면서 틈나는대로 우버 운전을 하는 남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우버 기사와 간이식당 종업원 사이를 오가면서 가끔 친척 집에 들러 샤워를 한다. '잠은 어디서 자냐'는 질문에 그는 뒷좌석을 돌아보며 답한다.
"손님이 앉아있는 자리가 바로 제 침대예요."
우버 서비스가 일상화된 지역에는 이렇게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꽤 있다. 이들은 택시처럼 줄을 지어 손님을 태우고, 공항 주차장에 차를 세운 채 새우잠을 잔다. 물론, 일자리가 말라가는 현실에서 우버 운전조차 감지덕지한 게 사실이다. 택시 기사들 10만 명이 모여 카카오 카풀을 성토하는 상황에서, 일반 시민들 사이에 카풀 서비스에 대한 반감이 크지 않은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잠깐 운전하고 용돈이라도 몇 푼 벌면 좋지…" 하는 생각 말이다.
우버나 카카오 카풀이 기존의 고용주와 다른 점이 있다면, 퇴직금, 의료보험, 산업재해 등 기존의 기업주가 져야 할 최소한의 책임마저 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식의 새로운 고용 아닌 고용 형태는 빠르게 다른 직종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책임회피를 마다할 고용주는 없다. 우버식 사업의 가장 큰 해악은 택시기사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게 아니라, 부당한 고용과 착취행위를 합법화한다는 점이다. '4차산업혁명'과 '공유경제'의 모범사례라는 사회적 지원까지 받아가며 말이다.
'4차산업혁명'이라는 허상
▲ 여의도에 집결한 택시 수천대‘불법 자가용 카풀 근절’ ‘카풀 금지 여객법 즉각 국회 통과’ 등을 요구하는 ‘전국 30만 택시종사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리는 가운데, 전국에서 모인 택시 수천대가 여의도공원 주변에 집결해 있다. 이날 집회는 택시 4개단체 (전국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 비대위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카카오 카풀 베타서비스 개시 후 소셜미디어에서 사용자 후기를 찾아보았다. 첫날 '7천 얼마 벌었다'는 글을 볼 수 있었다. 글쓴이는 이 추가 수입에 꽤 만족하는 듯했다.
만일 그가 일주일에 5일간 빠짐없이 매일 두 차례 승객을 태울 수 있다면 월 최대 30만 원 쯤 벌 수 있을 터이다. 점심값 정도가 떨어지는 셈이다. 물론, 별도의 직업과 정해진 출근시간이 있는 사람이라면 쉽지 않을 것이다. 아침에 제 출근시간도 맞추기 어렵지 않은가.
이 30만 원에는 추가 기름값, 차량 마모, 시간 사용에 대한 기회비용이 포함되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운행자의 위험부담이다. 운행시 주차, 신호, 속도위반에 대한 책임은 기본이다. 현행법에서는 자가용 유상운행을 법으로 엄격히 금하고 있으며, 자동차종합보험약관에도 유상운송 중에 사고가 났을 경우 대인배상Ⅱ(종합보험), 대물배상, 자기신체사고, 무보험자동차에 의한 상해, 자기차량손해에 대해 보험사가 면책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특히 대형 교통사고일수록 보험사로부터 지급을 거부당할 위험이 크다. 무엇보다 승객 입장에서 사고시 피해보상의 주체가 불명확하며, 운전자와 승객 사이에 발생할 수 있는 범죄 피해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현 사태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인데,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험서비스를 밀어붙인 카카오의 무책임한 행동이 첫번째이고,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의 기묘한 태도가 두번째다.
이에 대해 일부는 카카오와 현 정부의 '특수관계'를 의심하기도 한다. 카카오뱅크 특혜 주장과 정혜승 청와대 비서관이 다음(현 카카오) 부사장 출신이라는 사실이 불확실한 의혹을 부채질하는 이유가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국회 택시·카풀 태스크포스(TF)에 속해 있던 여당 의원의 보좌관이 카카오모빌리티에 입사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나는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현 정부의 '4차산업혁명' 환상이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현 정부 초기, 청와대가 박기영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에 임명했다가 거센 여론의 반대로 철회한 일이 있다. 그는 황우석 논문조작 사태에 연루되었던 학자로서 임명 석 달 전 <제4차 산업혁명과 과학기술 경쟁력>이라는 책을 냈다.
식물생리학 박사가 별안간 4차산업혁명 전문가가 될 수 있다면 이 개념의 엄밀성이 얼마나 빈약할지 알 수 있다. 경제사에서는 단 하나의 산업혁명만을 말하는 학자들이 많으며, 일부가 1, 2차로 구분할 뿐이다. 3차도 없는데 4차가 가능하느냐는 물음과 별개로, '혁명'은 결과를 지켜본 뒤 평가하는 역사적 개념이지, 미리 예견하는 마케팅 용어가 아니다.
급전 필요한 대기업의 무리수?
▲ 우버 등의 플랫폼 사업자들이 어떻게 노동과 사회를 파괴하는지 분석하는 책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왼쪽부터 <우버랜드>와 <유령노동>. ⓒ 강인규
'혁신 잃은 대기업의 벼룩 간 빼먹기.' 내가 바라보는 카카오 사태를 요약하면 이렇다. 카카오는 다음과의 합병 후 뚜렷한 사업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금융, 대리운전, 연예기획사(카카오M) 등 기술업체의 혁신과 무관한 분야의 진출이나 인수합병을 반복해 왔다.
안타깝게도 성과는 그리 좋지 못하다. 지난해 카카오는 2조 원 가까운 매출을 올려 네이버 매출의 절반에 육박했지만, 영업이익률은 8.4%에 머물렀다. 25%가 넘는 네이버의 1/3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카오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교통사업을 분리해 '카카오모빌리티'라는 별도의 자회사를 세우고 카풀 업체 '럭시'를 252억 원에 인수하도록 했다.
카카오모빌리티로서는 수익원 확보에 목을 매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여기에 5천억 원을 투자한 미국계 사모펀드의 눈치도 봐야 했다. 나는 이 상황을 카풀 서비스 강행이라는 무리수의 배경으로 이해한다. 카카오 사태에서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이윤에 눈 먼 기업이 이제 민주적 절차까지 파괴하는 지경까지 나아갔다는 점이다.
카카오 카풀에서 '창의적' 면이 있다면, 자가용 유상운전에 '카풀'이라는 이름을 붙여 법망을 교묘히 빠져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버도 못한 '혁신'을 카카오가 한 셈이다. 하지만 제3자가 나서서 운행을 중개한 뒤 수수료를 떼어가는 것이 카풀의 정의에 부합한다고 볼 수는 없다. 카카오 카풀은 기사를 모집해 자가용 유상운행을 하는 명백한 영업행위다(카카오는 이 점을 감추기 위해 '기사' 대신 '크루'라는 어울리지 않는 명칭을 쓴다).
모두가 인식하고 있듯, 한국의 택시는 많은 개선점을 안고 있다. 하지만 택시 서비스의 문제는 택시 서비스의 개선으로 해결해야 한다. 불친절, 합승, 승차거부 등 문제의 해결책은 기사의 처우개선과 교육, 적절한 법적 규제이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들여오는 것일 수 없다.
카카오의 서비스 강행으로 가장 큰 위험에 처하게 된 것은 택시기사의 생존권이 아니라 시민의 안전과 권리다. 법과 제도도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카카오가 운전자와 승객 모두를 법의 사각지대로 몰아넣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는 이를 '시범운행'으로 부르며 의미를 축소하지만, 현재 차가 도로를 달리지 않는 것도 아니고, '베타테스트'라고 운전자나 승객의 목숨이 추가로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우버가 불법 판정을 받았듯, 돈을 받고 자가용 운행을 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하루 2회'처럼 횟수를 정해서 한다고 해서 불법이 합법이 되지는 않는다. 정부는 일단 모든 운행을 중단한 후 사태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법적 책임도 불명확한 상태에서 시민을 불법과 합법의 모호한 안개 속으로 돌진시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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