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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 드라마' 만든 김연경, 라이벌팀 상대로 '대역전극' 주도

[진단] '공수 완벽' 김연경 명품 활약... 에즈기·한데 '빛나는 조연'

등록|2018.12.24 16:54 수정|2018.12.24 16:54
 

▲ 김연경 선수(192cm·에자즈바쉬) ⓒ 에자즈바쉬


또 하나의 명경기가 탄생했다. 지난 22일 펼쳐진 2018~2019시즌 터키 리그 여자배구 에즈자바쉬-갈라타사라이전은 기억에 남을 '배구 드라마'였다. 주인공은 단연 대한민국 김연경(31세·192cm)이다.

이날 경기에서 에자즈바쉬는 갈라타사라이에 세트 스코어 3-2(25-12 25-22 20-25 22-25 18-16)로 극적인 막판 역전승을 거두었다. 그러면서 터키 리그 정규리그에서 9연승을 이어가며, 단독 1위를 질주했다. 올 시즌 터키 리그에서 무패를 기록하고 있는 유일한 팀이다.

그러나 경기 내용은 연승이 거의 중단될 뻔한 위기의 연속이었다. 5세트 막판까지 여러 차례 패배 직전의 상황이 계속됐다. 특히 5세트 11-13로 뒤진 상황에서 보스코비치의 공격에 대해 심판이 아웃 판정을 내리면서 11-14가 되자 패색이 더욱 짙어졌다. 천만다행으로 비디오 판독 신청 후 터치 아웃으로 정정되면서 12-13으로 되돌려졌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곧바로 갈라타사라이의 한데 발라든이 공격을 성공시켜 12-14로 또다시 패배 직전에 몰렸다. 갈라타사라이가 1점만 더 따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이었다.

에즈기 들어오자 '김연경 쇼타임'... 공격·수비 '최고 활약'
 

▲ '김연경 포효'... 2018~2019 터키 리그 에자즈바쉬-갈라타사라이 경기 (2018.12.22) ⓒ 에자즈바쉬


에자즈바쉬 모타 감독은 팀이 13-14로 따라 붙자, 에즈기 세터를 전격 투입했다. 에즈기가 들어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김연경의 쇼타임이 시작됐다.

김연경은 13-14에서 극적인 동점 블로킹을 작렬하며 듀스로 몰고 갔다. 김연경-에즈기의 '찰떡 호흡'도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14-15 상황에서 에즈기는 라이트 위치에 있는 김연경에게 과감한 백토스를 해줬고, 김연경은 강력한 대각선 공격으로 또다시 동점을 만들었다.

16-16 동점 상황에서 에즈기는 또다시 과감하게 라이트 괴즈데에게 백토스를 쏴줬고, 괴즈데의 공격 성공으로 17-16 역전을 이끌어냈다. 마지막 피날레는 김연경의 그림 같은 수비가 장식했다.

김연경은 상대가 공격한 공이 에자즈바쉬 블로킹에 맞고 코트 밖으로 튕겨져 나가자 쏜살 같이 몸을 날려 다이빙 디그(상대방 공격을 받아내는 것)로 걷어 올렸다. 그런데 그 공은 센터에 있는 기브마이어에게 정확하게 날아갔고, 기브마이어의 토스와 라슨의 공격으로 빠르게 연결됐다. 결국 라슨의 끝내기 공격이 성공하면서 대역전극이 종료됐다.

이날 김연경은 공격과 수비 모두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공격에서는 팀 내 최다 득점(23득점)을 기록했다. 수비도 팀 내 서브 리시브 점유율이 무려 53%나 됐다. 2번째로 많은 리베로 심게의 리시브 점유율은 18%에 불과했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모여 있는 팀에서 혼자서 수비를 절반 이상 해내고, 공격까지 최다 득점을 올린 것이다. 만화나 영화에 나오는 '비현실적 캐릭터'가 아닐 수 없다.

임대로 간 한데... 친정 팀 융단폭격 '강력한 여운'

이날 경기에 흥미를 더해주는 대목은 또 있다. 상대 팀인 갈라타사라이의 한데 발라든(22세·189cm) 선수다. 한데는 양 팀 통들어 최다 득점(28득점)을 올리며 강력한 인상을 남겼다.

그런데 한데는 현재 에자즈바쉬 소속 선수다. 올 시즌 갈라타사라이에 임대로 보내졌다. 한 마디로 친정 팀을 상대로 융단폭격을 한 셈이다.

객관적 전력에서 에자즈바쉬보다 약세로 평가 받았고, 실제로 1~2세트를 먼저 내주면서 쉽게 끝날 것 같은 경기를 5세트까지 몰고 간 장본인이다.

나이는 어리지만 실력은 출중하다. 지난 10월 일본에서 열린 2018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터키 대표팀의 주전 레프트로 맹활약하기도 했다. 그러나 에자즈바쉬에는 세계 최정상급 공격수들이 즐비하다. 한데가 주전으로 들어가 뛸 자리가 없다는 뜻이다.

때문에 에자즈바쉬는 한데가 경기를 뛸 수 있도록 갈라타사라이에 임대 선수로 보내줬다. 친정 팀을 만난 한데의 눈부신 활약은 복잡한 감정선과 흥미를 배가시켰다. 이래저래 이날 경기는 멋진 한 편의 배구 드라마였다.

김연경 배구 인생 '최고 대역전극'... 상대 팀은 '에자즈바쉬'
   

▲ 에자즈바쉬 선수들... 2018~2010 터키 리그 에자즈바쉬-갈라타사라이 (2018.12.22 ⓒ 에자즈바쉬


김연경 경기 중에는 이처럼 배구팬들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명경기가 적지 않다. 특히 지난 2016~2017시즌 김연경이 페네르바체에서 터키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과정에서 역대급 대역전 드라마가 펼쳐진 바 있다. 바로 터키 리그 포스트시즌 4강 플레이오프(PO) 페네르바체-에자즈바쉬 경기였다.

공교롭게 그 명경기도 김연경-에즈기의 '찰떡 호흡'이 만들어낸 작품이었다. 그 이후 에즈기는 현존 세터 중 김연경 입맛에 가장 잘 맞는 토스를 하고, 김연경을 가장 잘 활용할 줄 아는 세터로 정평이 났다.

당시 김연경과 페네르바체의 4강 PO 상대 팀이었던 에자즈바쉬는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로 구성된 초호화 군단이었다. 보스코비치(193cm·세르비아), 라슨(188cm·미국), 네슬리한(187cm·터키), 한데(189cm·터키), 아담스(188cm·미국), 뷔쉬라(188cm·터키), 오그네노비치(183cm·세르비아) 등 쟁쟁한 멤버들이 포진해 있었다.

두 팀은 4강 PO 2차전에서 골든 세트(챔피언결정전 진출자를 가리기 위한 추가 세트)까지 가는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골든 세트에서도 에자즈바쉬가 페네르바체에 14-10으로 앞서갔다. 에자즈바쉬가 한 점만 더 따면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하고, 김연경과 페네르바체는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승패는 결정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에자즈바쉬가 내리 6점을 내주며 14-16으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대역전극을 주도한 선수는 김연경, 에다(188cm·터키), 에즈기(170cm·터키)였다.

'명품 콤비' 김연경-에즈기... 대역전 드라마 '단골 주역'

특히 김연경의 막판 3연속 득점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김연경은 13-14로 뒤진 상황에서 결정적인 동점 블로킹을 성공시켰고, 이후 2연속 강력한 공격 득점으로 경기를 끝내버렸다. 김연경이 연속 득점을 내도록 토스를 쏴준 세터가 바로 에즈기였다.

에즈기는 11-14로 뒤진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눗사라(태국) 세터와 교체로 들어갔다. 그리고 김연경과 찰떡 호흡을 과시하며 빛나는 조연이 됐다. 에즈기는 백업 세터였지만, 교체 멤버로 코트에 들어갈 때마다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해줬다.

극적으로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한 페네르바체는 갈라타사라이와 우승을 다투게 됐다. 갈라타사라이도 4강 PO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인 바크프방크를 꺾고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이변을 일으켰다.

당시 바크프방크도 에자즈바쉬 못지않은 초호화 멤버였다. 주팅(198cm·중국), 슬루티어스(191cm·네덜란드), 킴벌리 힐(193cm·미국), 라시치(191cm·세르비아), 나즈(186cm·터키) 등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즐비했다. 바크프방크는 그 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챔피언결정전은 페네르바체의 일방적 압승으로 끝났다. 김연경, 나탈리아, 에다 3인방이 공격과 블로킹을 주도하며 3경기 연속 3-0으로 완승을 거두었다. 결국 최종 우승의 주인공은 김연경과 페네르바체였다. 어떤 드라마나 영화 못지않은 흥미진진한 '배구 실화 드라마'였다.

에자즈바쉬 최대 적은 '자기 자신'

김연경과 에자즈바쉬는 앞으로도 많은 경기를 남겨 두고 있다. 그리고 터키 리그로 복귀한 이유를 증명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고, 에자즈바쉬가 김연경을 영입하면서 달성하고자 하는 가장 큰 목표이기도 하다.

바로 터키 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과 유럽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욕심을 더 내자면 터키 컵까지 우승해서 트레블(Treble·3관왕)을 달성하는 것이다. 아직 갈 길이 많고,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에자즈바쉬가 김연경-보스코비치-라슨으로 이어지는 세계 최강의 공격 삼각편대를 갖추면서 모든 대회의 강력한 우승 후보라는 평가가 많다.

그러나 2018 클럽 세계선권 대회 준결승에서 미나스(브라질)에 패해 결승 진출에 실패한 사례에서 보듯, 중요한 국면에서 또다시 발목이 잡힐 수 있다. 갈라타사라이전도 마찬가지다. 전력이 우세해도 라이벌 팀과 경기는 '방심과 안일함'이 패배를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다시 일깨워 줬다.

에자즈바쉬 팀 내부적으로도 감독의 선수 기용과 전술, 주전 세터인 감제의 토스워크와 경기 운용 등 더 보완해야 할 난제들이 존재한다.

그럼에도 김연경이 있기에 팬들은 비관보다 기대감을 더 갖는다. 위기 상황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여줬기 때문이다. 또 어떤 배구 드라마를 써내려 갈지 주목되는 이유이다.

한편, 김연경과 에자즈바쉬는 25일 오후 8시(한국시간) 아이딘 팀과 터키 리그 정규리그 경기를 갖는다. 이 경기도 국내 스포츠 전문 채널인 SPOTV가 생중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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