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이 되어버린 해월 최시형 생가... 동학공원으로!
천도교 2대 교조, 올해 사망 120주년... 22일 사업회 창립대회 열려
▲ 창립대회에 앞서 최경남 경주문화유산활용연구원장이 살풀이 춤을 추고 있다. ⓒ 경주포커스
천도교 2세 교조이자 위대한 사상가로 추앙받고 있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가터를 동학공원화 하려는 움직임이 경북 경주시민들을 중심으로 본격화하고 있다.
22일 해월 최시형 선생 생가주변 동학공원화 추진사업회가 발족했다. 경주문화원에서 열린 창립대회에서는 해월 선생 생가터 주변을 공원화하자는 취지와 목적을 담은 정관을 확정하고, 회장 김윤근 경주문화원장, 부회장 임우남 방정환한울어린이집원장, 최영기 전신라문화유산조사단장 등 임원을 선출했다. 천도교계와 향토사학자 등 그동안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던 20여 명은 사업회 이사로 선출됐다.
선생의 생가터는 경북 경주시 황오동 227번지, 현재 천도교 경주교당 뒤편에 위치해 있다. 중앙교회가 이전한 뒤 경주시에서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한 곳이다.
천도교 경주군 교구연혁에는 해월 최시형 선생의 생가터와 관련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전한다.
포덕 51년 1월 (1910.1)
경주군 황오리 손승조 씨는 천도교중앙총부 정광조 씨로부터 전교를 수(受)한 후 동 리 229번지의 대지와 동 지상의 건물 미가(尾家) (正寢)정침 1동 5간 행랑 2동 4칸과, 동 228번지의 대지와 지상 건물 미가 정침 1동 6칸과, 동227번지 전(田)252 평(제2세교조 최해월신사 유허지)과를 천도교중앙총부로부터 매수(買受)케 하고 전기(前記)건물 229번지 상(上) 정침1동 5칸에는 남(男)전교실로 , 228번지 상(上) 정침 1동 6칸에는 여(女)전교실로 설립하다.
경구군 교구연혁에는 227번지의 전(田)252 평을 '제2대 교조 최해월신사 유허지'라고 특별히 표시했다. 1910년 황오리의 손승조씨가 최시형 선생의 생가를 포함해 현재의 경주교당 등을 매입했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선생의 생가터는 1935년 경주교당 신축을 위해 일반에 매각된다.
포덕 76년 3월(1935.3)
본 교당은 원래 고가(古家)로써 전도될 염려가 유하여 위험한 상태에 지함으로써 부득이 개축하기로 결의하고, 본원 소유 전15두락과 부인전교실과의 매각 대금 4백여 원과 일반 동덕의 희사금 백여 원 합계 5백여 원으로 본 교당을 신축하다.
- 경주군 교구연혁의 기록
경주교구의 땅과 가옥을 매입한지 25년 되는 해였던, 1935년에 228번지 부인전교실과 227번지 해월신사 생가터(전 15두락)를 팔았다는 것이 경주군 교구연혁에 기록돼 있다.
그러나 다른 주장도 있다. 경주교당에 살고 있는 신도에 따르면 선생의 생가터에는 1956년경 집이 있었고 경주교구에서 세를 받고 있었지만, 후에 어떤 교인이 팔아서 이자를 불리는 게 더 좋다하여 팔았고 다른 교인이 이자를 준다며 돈을 가져가 떼먹고 교회도 안 나왔다고도 전한다. 그때 227번지가 기독교교회에 넘어갔다는 것이다. 1950년대 말 내지는 1960대 초반까지 해월신사 생가터(227번지)를 경주교구에서 관리했다는 것으로, 경주군 교구연혁과는 다른 기억이다.
▲ 해월선생의 생가터. 경주시가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했다. 천도교 경주교당과 인접해 있다. ⓒ 경주포커스
해월 선생의 생가터가 어떠한 경위로 중앙교회를 거쳐 현재 경주시 소유 주차장 부지로 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선생의 생가터가 황오동 227번지인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교회부지를 거쳐 경주시가 공영주차장으로 조성하면서 현재는 주차장 한켠 화장실로 사용되는 곳, 제2대 천도교 교조로 칭송받는 해월 선생의 생가터를 이런 상태로는 더 이상 방치할수 없으니 생가 주변을 동학공원화하자는 운동이 천도교와 경주지역의 뜻 있는 인사들로터 올해부터 본격화됐다. 2018년은 선생이 72세를 일기로 서소문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사망한 지 120주년이 되는 해여서 더욱 의미가 깊기도 하다.
이미 상당한 진척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업회에 따르면 문화관광부에서 지난해 현장답사도 했고, 공원화를 위한 용역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지난 10월에는 천도교 중앙총부 주관으로 생가 복원을 위한 학술대회가 개최되기도 했다.
22일 생가주변 동학공원화추진사업회가 발족한 것은 이 같은 기초적인 준비작업을 거쳐 천도교뿐만 아니라 경주시민, 나아가 전 국민적인 관심과 지지 속에서 선생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하는 출발점으로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
천도교계를 대표해 이날 창립대회에 참석한 이범창 천도교 종무원장은 "2대 교조의 생가터를 보존하지 못하고 저 모양으로 방치한 한없는 아쉬움과 부끄러움, 최책감을 갖고 이 자리에 섰다"면서 "천도교 중앙총부가 하지 못한 사업을 경주시민들이 앞장서준 데 대해 감사드린다"며 감격해 했다.
▲ 추진사업회 회장으로 추대된 김윤근 경주문화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경주포커스
창립대회에서 만장일치로 회장으로 추대된 김윤근 경주문화원장은 "민초들이 그릇된 세상을 바꾸자고 외칠 수 있는 힘을 민주주의 최고의 힘이라고 한다면, 해월 선생의 명예를 되찾자는 교조신원운동이 그 뿌리이자,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뿌리로 볼 수 있다"라고 했다. 이어 "선생의 값진 삶을 기리지 않으면 그 덕을 본, 오늘을 사는 우리 후세의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이라며 '생가 주변 공원화 사업'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와 관심을 당부했다.
추진사업회는 조만간 비영리사회단체로 등록한 뒤 1월 초부터 회원 모집 등 시민들의 참여를 이끌어 내기 위한 활동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 창립대회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경주포커스
한편 동학발상지인 경주에서는 수운 최제우 선생이 득도한 용담정 일대에 오래전부터 동학발상지성역화 사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현곡면 가정리 일대에 수운 생가는 이미 복원했고, 수운기념관 및 교육수련관 건립도 한창이다.
발상지 성역화 사업과 별개로 해월 최시형 선생을 새롭게 조명하는 생가터 동학공원화 사업은 왜 필요할까? 경주 방정환한울어린이집 임우남 원장이 쓴 창립대회 취지문은그 해답을 준다.
...경주는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마다 구국의 일념을 불사르며 천 년을 지켜왔고 근대화 물결을 넘어왔다. 그렇기에 이곳 황오동 227번지를 기억해야 한다.
120여 년 전, 밖으로는 서구열강의 세력들이 물밀 듯 밀려오고 안으로는 부패정치가 극에 달하여 백성들의 삶이 피폐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때 보국안민 광제창생 지상천국의 동학깃발 아래 불같이 일어나는 민심을 하나로 모아 열강들과 맞서 싸웠던 지도자 해월 최시형 선생님 생가터이다.
그 힘은 면면히 이어져 3.1민족자주 독립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그 3.1혁명의 성공을 위한 특별기도와 치밀한 준비가 이루어진 곳도 여기 황오동이다.
이렇게 동학의 정신으로 집결된 3.1혁명의 주역은 삼백만에 이르렀다. 이곳 황오동을 되돌아 보고 찾아야 하고 반듯하게 세워야 하는 까닭이다(이하 생략).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터넷신문> 경주포커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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