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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크리스마스' 폐허에서 다시 희망을

국일 고시원 화재 현장서 성탄미사 열려... "이 땅에 가난해서 죽는 사람 없어야"

등록|2018.12.25 14:20 수정|2018.12.25 14:20

▲ 24일, 서울 종로구에서 국일 고시원 화재 참사 희생자를 위한 거리 성탄 예배가 열렸다. ⓒ 정대희


25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국일 고시원 앞에서 대한성공회 나눔집협의회와 정의평화사제단 등이 주최하는 성탄미사가 열렸다. 이날 거리 예배에 참석한 약 100여 명은 지난달 9일 발생한 국일고시원 화재 때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희생자를 추모했다.

여재훈 신부는 "국일고시원 참사에 7명이 목숨을 잃고 11명이 심한 상처를 입었으며, 아직도 30명이 제대로 된 주거공간을 찾지 못하고 있다"라며 "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화려한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수많은 노동자가 고시원과 쪽방을 돌며 불안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이어 "가난한 이들의 주거공간인 고시원에서 숨진 이들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으로 죽음에 내몰리지 않았나 생각한다"라며 "다시는 이 땅에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상임활동가도 "참사의 근본적인 원인은 열악한 고시원에 삶을 욱여넣도록 했던 주거 현실"이라며 "정부는 화재 대책이 아니라 최저 주거 기준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를 집중해야 한다"라고 했다

그는 "정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에 고시원과 쪽방 등과 같은 비주택이 2004년에 4000개소가 안 됐는데, 현재는 1만 2000개소로 3배 이상 껑충 뛰었다"라며 "반면, 국토부는 전체 주택 공급량의 15%를 임대주택으로 공급해야 하는데, 13년 동안 공급량은 6700가구 정도로 1년 물량에 불과하다"라고 지적했다.

자신을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를 겪은 생존자'라고 소개한 이도 미사에 참석했다. 조아무개(40)씨는 "교통비를 아껴 아들딸 과자라도 사주려고 일터에서 가까운 고시원에서 살다가 참사를 당했다"라며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집 문제를 해결했으면, 참사는 발상하지 않았다. 없는 사람도 인권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화재 후 트라우마로 밤새 잠을 못 이루는 등 일상생활이 어렵게 되면서 이달 초 권고사직을 당해 현재는 실직 상태라고 했다.

시민들도 차디찬 바닥에 앉아 미사에 동참했다. 서울 성북구에 사는 한동수(32)씨는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를 뉴스로 전해 들으면서 보이지 않는 어려운 이웃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라며 "따뜻한 교회에 나가는 것보다 거리에서 나와 예배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참석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경기도 포천에서 딸과 함께 현장을 찾은 김현정(42) 씨는 "크리스마스 하면 기쁘고 즐거운 날로 생각하는데, 오히려 의미 있는 일을 기억하는 날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바쁘다는 핑계로 우리 주변에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잊고 살았는데, 더는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든다"라고 말했다.

한편 '2018홈리추모제공동기획단'과 '주거권네트워크'는 오는 27일 국일고시원 화재 참사 49일째를 맞아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과 희생자를 위한 49재, 추모문화제 등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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